原注
22-12-나(안按)
[신안臣按] 여태자戾太子가 화를 당한 일이 강충江充의 참소에서 비롯되었으니 이 점은 맞지만, 강충의 참소를 불러일으킨 원인을 따져보면 무제에게 네 가지 잘못이 있습니다.
여태자가 태어났을 때 무제가 여태자를 매우 사랑했는데, 뒤에 와서는 후궁과 총신들이 많아지고 왕부인王夫人 등이 모두 아들을 낳자 위황후衛皇后와 여태자는 총애가 점점 시들어갔습니다.
이에 법을 운용하는 대신들이 여태자를 헐뜯고 황문黃門의 환관들이 또 여태자를 헐뜯었으며 그 마지막에는 강충이 무고巫蠱 사건을 일으켜서 여태자를 함정에 빠뜨려 죽게 하였습니다.
대저 참소하는 사람이 참소를 할 때 반드시 먼저 임금의 의중을 엿보아 임금의 뜻이 향하는 쪽을 참소하는 사람도 따라서 향하며, 임금의 뜻이 돌아선 곳을 참소하는 사람도 돌아섭니다.
오로지 무제가 여태자에 대하여 은총이 먼저 옮겨간 뒤에 신하들이 바람에 따라 쓰러지듯이 추종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제의 첫 번째 잘못입니다.
原注
태자는 달리 맡은 일이 없으며 문안하고 어선御膳을 살피는 것뿐입니다. 친한 부자 사이에 어찌 하루라도 서로 만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위황후衛皇后에 대한 총애가 줄어든 뒤로 여태자가 무제를 거의 알현할 수 없었는데, 상융常融이 참소를 할 때에도 오히려 무제가 그 속마음을 은밀하게 살펴 여태자를 위해 상융을 주살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부자간의 정이 그때까지만 해도 다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무제가 감천궁甘泉宮에 거둥하면서 여태자가 따라가지 않았고 황후의 가리家吏가 문안을 여쭈었음에도 무제가 회답을 주지 않아 부자지간이 이렇게까지 끊어졌으니, 참소와 이간질이 먹히지 않기를 바라더라도 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무제의 세 번째 잘못입니다.
原注
강충이 조 태자趙 太子의 은밀한 일을 고발한 것으로 무제의 총애를 얻었으니 이는 그 사특함이 평소에 있던 것이며, 또 일찍이 태자의 심부름꾼이 일으킨 거마車馬 사건을 이유로 삼아 그를 법리法吏에게 회부하고 무제에게 상주하였으니 이는 그 원한을 평소에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제가 무고巫蠱 사건의 처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강충에게 맡겼으니, 이는 사특한 사람으로서 원한의 뜻을 가졌다면 그가 여태자에게 해악을 끼칠 것이 틀림없었을 텐데도 무제가 이 점을 살피지 않았으니,
이는 도끼를 빌려주어 국본國本을 베어내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제의 네 번째 잘못입니다.
原注
비록 그렇지만 네 가지는 현상적으로 나타난 일일 뿐 근원은 실로 마음 하나에서 나왔습니다.
무제가 오직 욕망이 많았기 때문에 애첩들이 많고 서자들이 많아서 사랑과 미움의 마음이 이미 표면에 드러났으니, 태자의 자리가 어떻게 안정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무제가 오직 미혹됨이 많았기 때문에 방사方士와 무격巫覡이 하는 말에 빠져서 정신과 사려가 오래전에 이미 혼란해졌으니, 나이가 들고 기력이 쇠해지자, 온갖 간사한 자들이 그 틈을 탔습니다.
그리하여 요망한 말이 밖에서 선동시키고 요사스러운 꿈이 안에서 미혹시켰으니,
무고巫蠱 사건이 여기에서 생긴 것입니다.
獸環盂
가령 동중서董仲舒의 “마음을 바로잡는다.”라고 했던 말을 반盤과 우杅에 새겨두고서 아침저녁으로 경계했더라면 어떻게 이러한 일이 있었겠습니까.
강충은 남을 참소하여 해치는 소인이므로 그 마음은 논할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오직 무제가 범한 잘못의 근본을 따져서 후세 사람들이 경계하는 바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