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武帝
가 卽位
하여 尤敬鬼神之祀
하더시니 이어늘 上
이 尊之
러시니
少君
이 自謂七十
이로되 能使物卻老
라하고 善爲巧發奇中
하여
言 上
이 祠竈
면 皆可致物
注+物, 謂鬼.而丹砂
를 可化爲黃金
이니
成
이어든 以爲飮食器則益壽而海中蓬萊
者
를 迺可見之
라 以
則不死
하리니 黃帝
가 是也
라하여늘
於是에 天子가 始親祠竈하시고 遣方士하여 入海求蓬萊而事化丹砂諸藥爲黃金矣러라
文成이 言 上이 卽欲與神通인대 宮室被服을 非象神이면 神不至라하여늘 迺作畫雲氣車하고
又作
하여 中爲臺室
하고 畫
諸鬼神而置祭具
하여 以致天神
하더니
居歲餘
에 其方
이 益衰
하여 神不至
하니 迺爲帛書以飯牛
하고 陽不知
하여 言 此牛腹中
에 有奇
라하여늘
殺視得書
하니 天子
가 識其
注+所書.하시고 於是
에 誅文成
하고 隱之
하시다 其後
에 又
人掌之屬
하다
者
는 故與文成同師
라 求見言方
이어늘 天子
가 旣誅文成
하고 後悔其方不盡
이러시니 及見欒大
하얀 大說
하시니
大
가 爲人
이 多方略
하고 敢爲大言
하여 言 臣之師
가 曰 黃金
을 可成
이요 不死之藥
을 可得
이요 人
을 可致
라하여늘
大
가 數月
에 貴震天下而海上燕‧齊之間
이 莫不搤掔
注+搤, 與扼同. 掔, 與腕同.하여 自言有禁方能神僊矣
러라
成
에 有龍
이 垂胡
하여 下迎黃帝
하니 後世
가 因名其處曰鼎湖
라하니이다
於是
에 天子
가 曰 嗟乎
라 誠得如黃帝
인댄 吾
가 視去妻子
를 如脫屣耳
라하더시다 五利
하여 不敢入海而之泰山祠
어늘
上
이 使人隨驗
하니 實無所見
이로되 五利
가 妄言見其師
라하고 其方
이 盡多不讎
注+不讎, 無騐也.어늘 上
이 迺
하시다
天子가 親幸緱氏하사 視迹하시고 問卿하사대 得無效文成‧五利乎아
卿
이 曰
者
가 非有求人主
라 人主者
가 求之
니 其道
가 非寬
면 神不來
니 言神事
가 如迂誕
이나 積以歲
면 乃可致
니이다
於是에 郡國이 各除道하고 繕治宮館‧名山神祠하니 所以望幸矣라
迺益發船하여 令言海中神山者數千人으로 求蓬萊神人하시고
注+太山邑名.하사 封泰山
하시니 無風雨而方士
가 更言蓬萊諸神
을 若將可得
이라하니
於是
에 上
이 欣然庶幾遇之
하사 復東至海上
하사 望焉
하시고 러라
人
을 可見
이언마는 上往常遽
라 以故不見
이니 今陛下
가 可爲館
을 如緱氏城
注+依其制度.하여 置脯‧棗
하면 神人
을 宜可致
요
且
人
이 好樓居
라하여늘 於是
에 上
이 令長安
에 作飛廉‧桂館
注+二館名.하고 甘泉
에 作益壽‧延壽館
하여
使卿
으로 持節設具而候神人
하고 迺作
하여 置祠具其下
하여 將招來神
之屬<주석명>公孫……之屬주석명>이러라
方士之候神‧入海求蓬萊者
가 終無驗
이로되 公孫卿
이 猶以大人之迹
으로 爲解
한대 天子
가 縻不絶
하여 幾遇其眞
注+幾, 與冀同.이러시다
에 上
이 하시고 還幸泰山
하사 修封禪
하시며 祀
하시고 見群臣
하사 乃曰
朕
이 卽位以來
로 所爲狂悖
하여 使天下勞苦
호니 不可追悔
로다 自今
으로 事有害百姓
하며 費天下者
를 悉罷之
하라
가 曰 方士言神
者
가 甚衆而無顯功
하니 請皆罷斥遣之
하소서
上曰
言
이 是也
라하시고 於是
에 悉罷諸方士候神人者
하시다 是後
에 上
이 每對群臣
에 自歎
曏時愚惑
하여 爲方士所欺
호니 天下
에 豈有
人
이리오 盡妖妄耳
라 節食服藥
이면 差可少病而已
라하시니라
13-5-가2
漢 武帝가 즉위하여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더욱 공경히 행하였는데, 李少君이 부뚜막 신에게 제사하여 늙지 않는 방술을 가지고 무제를 알현하자 무제가 이를 높이 여겼다.
이소군은 늘 스스로 말하기를 자신은 70세지만 귀신을 부려서 늙지 않도록 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기미를 보아 교묘하게 맞추는 데 뛰어났다.
무제에게 말하기를, “황상께서 부뚜막 신에게 제사하면 귀신을 오게 할 수 있어서
注+‘物’은 귀신을 이른다. 丹砂를 황금으로 변하게 할 수 있습니다.
황금이 되거든 이 황금을 가지고 먹고 마시는 그릇을 만들면 수명을 늘릴 수 있어서 바다에 있는 봉래의 신선을 볼 수 있습니다. 이로써 封禪을 행하면 죽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니, 黃帝가 바로 이렇게 했던 분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무제가 비로소 직접 부뚜막 신에게 제사하고 方士를 보내 바다에 가서 봉래산을 찾고 단사와 여러 가지 약제를 황금으로 만드는 일에 종사하도록 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이소군이 병으로 죽자, 무제는 이소군이 신선이 되어 떠난 것이지 죽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사람을 시켜 그 방술을 전수받도록 하였다. 이에 바닷가 일대 燕‧齊 지역의 괴상하고 오활한 方士들 가운데 신의 일을 말하는 자가 많게 되었다.
이듬해(기원전 119)에 齊人 少翁이 방술을 가지고 무제를 알현하자, 무제는 그를 文成將軍에 임명하고 빈객을 대하는 禮로 예우하였다.
문성장군 소옹이 말하였다. “황상께서 이왕 신과 통하고자 하신다면 궁실의 被服을 신의 형상으로 하지 않으면 신이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雲氣를 그린 수레를 만들었다.
또 甘泉宮을 지었는데, 그 가운데를 제단으로 만들고서 天一‧地一‧泰一 등 여러 신들을 그리고 祭具를 두어 天神을 오게 하였다.
그 후 1년 남짓 되었을 때 문성장군의 방술이 갈수록 쇠하여 신이 오지 않자, 문성장군은 마침내 비단에 글을 써서 소에게 먹인 뒤 짐짓 모르는 척하고 말하였다. “이 소의 뱃속에 기이한 글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소를 잡고 살펴보자 글이 나왔는데, 무제가 그 필적을 알아보았다.
注+‘其手’는 그가 쓴 필적을 이른다. 이에 문성장군을 주살하고 이 일을 비밀에 부쳤다. 그 뒤에 무제는 또 栢梁臺와 구리 기둥으로 된 承露僊人掌과 같은 것들을 만들었다.
欒大는 예전에 文成將軍 少翁과 같은 스승에게 수학하였다. 난대가 알현을 청하며 방술을 말하자, 무제는 문성장군을 죽인 뒤 그 방술을 다 쓰지 못했다고 하여 후회하고 있던 터에 마침 난대를 만나자 크게 기뻐하였다.
난대는 인물이 계책이 많고 과감하게 허풍을 칠 수 있었다. 난대가 무제에게 말하였다. “신의 스승이 말하기를, 황금을 만들 수 있고 불사약을 얻을 수 있으며 신선을 오게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그를 五利將軍에 임명하였다. 그리하여 한 달 남짓 지난 뒤에는 4개의 인장을 주게 되었고 또 衛長公主를 아내로 주었다.
난대가 무제를 알현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그 존귀함이 천하를 진동시키자, 바닷가 燕‧齊 지역에서는 팔을 휘두르며
注+‘搤’은 ‘扼(휘두르다)’과 같다. ‘掔’은 ‘腕(팔)’과 같다. 자신에게 신선이 될 수 있는 비방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 자가 없게 되었다.
齊人 公孫卿이 또 말하였다. “黃帝가 荊山에서 鼎을 주조했는데, 鼎이 완성되자 용 한 마리가 턱살과 수염을 늘어뜨리고 내려와서 황제를 맞이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후세 사람들이 그곳을 ‘鼎湖’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에 무제가 말하였다. “아, 참으로 黃帝와 같이 될 수 있다면 내가 처자를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다.” 오리장군 난대가 무제의 使者로 떠나 감히 바다에 가지 못하고 泰山에 가서 제사를 드렸다.
무제가 사람을 시켜 뒤따라가 알아보게 하니 실제로는 만나는 이가 없었는데도 오리장군이 자기 스승을 만났다고 거짓말을 하고 또 그 방술이 다하여 대부분 효험이 없자,
注+‘不讎’는 효험이 없다는 뜻이다. 무제가 마침내 오리장군을 주살하였다.
그해 겨울 公孫卿이 河南郡에서 신을 기다릴 때 緱氏城 위에서 신선의 발자국을 보았다고 말하자,
무제가 직접 구씨성에 거둥하여 그 자취를 보고 공손경에게 물었다. “文成將軍과 五利將軍처럼 기망하는 일은 없겠는가?”
공손경이 대답하였다. “신선이 임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임금이 신선을 찾는 것이니, 그 방법은 넉넉히 시간을 두지 않으면 신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신을 말하는 일이 오활하고 허탄한 것 같으시겠지만 여러 해가 쌓이면 신을 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郡國들이 저마다 길을 닦고 宮館과 명산의 신을 모시는 사당을 정비하니, 무제가 행차하기를 바란 것이었다.
뒤에 武帝가 동쪽으로 바닷가를 순수해서 禮를 행하여 여덟 신에게 제사하자, 齊人 중에 疏를 올려 신이하고 기이한 방술을 말하는 자가 만으로 헤아릴 정도였다.
이에 배를 더욱 내어서 바다에 神山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 수천 명으로 하여금 蓬萊山의 神人을 찾도록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奉高에 이르러
注+‘奉高’는 태산의 읍 이름이다. 泰山에서 封禪하자 비바람을 만나지 않게 되었다. 方士들이 또 봉래산의 신들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자,
이에 무제가 기뻐하며 혹여 신을 만날까 하여 다시 동쪽으로 가서 바닷가에 이르러 멀리 바라보았다. 다시 方士들을 보내 神人을 찾고 靈藥을 구하도록 한 사람들이 천으로 헤아리게 되었다.
公孫卿이 말하였다. “신선을 볼 수는 있지만 폐하께서 항상 급히 가시기 때문에 만나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폐하께서 緱氏城처럼
注+그 제도를 따르는 것이다. 館을 짓고 脯와 대추를 차려놓으면 신선을 의당 오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선은 누각에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에 무제가 영을 내려 長安에 飛廉館과 桂館을
注+‘飛廉’과 ‘桂’는 두 館의 이름이다. 짓고 甘泉宮에 益壽館과 延壽館을 짓도록 하였다.
그리고 공손경으로 하여금 부절을 가지고 祭物을 준비하여 신선을 맞이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通天臺를 짓고 그 아래에 제물로 바칠 물품들을 두고서 이것으로 신선 등을 부르고자 하였다.
5년 뒤에 泰山에 가서 한 번 제사하고 이후 12년 동안 五嶽과 四瀆에 두루 제사하였다.
신선을 기다리고 바다에 가서 봉래산을 찾는 方士들이 끝내 아무런 소식이 없었는데도 공손경이 여전히 대인의 발자국으로 이것을 설명하자, 무제는 이에 미련을 두고 방사들을 끊지 않고서 진짜 신선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注+‘幾’는 ‘冀(바라다)’와 같다.
太始 4년(기원전 93)에 武帝가 鉅定에서 밭을 갈고 다시 泰山에 거둥하여 封禪을 행하고 明堂에서 제사한 뒤에 신하들을 보고 말하였다.
“짐이 즉위한 뒤로 소행이 광패하여 천하의 백성들을 괴롭게 하였으니 뒤늦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부터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고 천하의 재화를 낭비시키는 일들은 모두 중지하도록 하라.”
田千秋가 말하였다. “方士들 중에 신선을 말하는 자들이 매우 많지만 드러난 공이 없으니 모두 파면하여 쫓아내소서.”
무제가 말하였다. “大鴻臚의 말이 옳다.” 이에 신선을 기다리는 방사들을 모두 쫓아냈다. 그 뒤로 무제는 신하들을 대할 때마다 스스로 탄식하였다.
“지난날 내가 미혹되어 방사들에게 속았다. 천하에 어찌 신선이 있겠는가. 모두 요망한 말일 뿐이다. 음식을 조절하고 약을 먹으면 혹 병을 조금 덜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