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
가 前數言關東盜
가 無能爲
라하더니 及
注+邯, 亦秦將.하고
하고 自關以東
이 大抵盡畔秦吏‧應諸侯
하니 諸侯
가 咸率其衆西鄕
하고 注+.이어늘
高가 恐二世가 怒誅及其身하여 乃謝病不朝見하고 使其壻咸陽令閻樂等으로 引兵入望夷宮하고
高
가 入告曰 山東群盜兵
이 大至
하고 引璽而佩之
左右百官
이 莫從
이어늘 乃
한대 子嬰
이 卽位
하여 하다
18-6-가
조고趙高는
관동關東의 도적이 무슨 난을 일으킬 리 없다고 자주 말했었다. 그런데
항우項羽가
진秦나라 장수
왕리王離 등을
거록鉅鹿에서 포로로 잡고
장한章邯 등이 여러 번 퇴각하며,
注+장한章邯은 왕리王離 등과 마찬가지로 진秦나라 장수이다.
연燕나라‧
조趙나라‧
제齊나라‧
초楚나라‧
한韓나라‧
위魏나라가 모두 왕으로 자립하고
관동關東이 대체로 모두 진나라 관리들을 배반하고 제후들에게 호응함에, 제후들이 모두 자신의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향하고
패공沛公이 이미
무관武關을 도륙하는 데에까지 이르자,
注+한 고제漢 高帝는 당시 패공沛公으로서 군사를 일으켰다.
조고는 이세二世가 노하여 죽이는 것이 자신에게까지 미칠까 두려워서 이에 병을 핑계로 조현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위인 함양령 염락咸陽令 閻樂 등으로 하여금 군사를 끌고 망이궁望夷宮에 들어가도록 하고서
조고 자신은 들어가 고하기를 “산동의 도적떼가 일으킨 군사가 대거 몰려왔습니다.”라고 하여 이를 이용해 이세를 겁박하여 자살하게 하고 옥새를 가져와서 자신이 찼다.
그러나 좌우의 백관 중에 따르는 사람이 없자 이에 자영子嬰을 불러 진왕秦王으로 옹립하였다. 자영이 즉위하여 계책을 써서 조고를 죽이고 삼족을 멸하였다.
자영이 즉위한 지 3개월이 되었을 때 패공의 군사가 무관으로 들어오자 자영이 항복했는데, 항우가 이르러 자영을 죽이니, 진나라가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