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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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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13-12-나(按)
按 代宗 以報應으로 爲問하니 使其時 有儒者 在相位하면
13-12-나(按)
[臣按] 대종이 報應을 가지고 질문을 하였으니, 만약 그 당시에 儒者가 재상 지위에 있었다면,
必以之理 反復啓告하여 使人主 然知天道之不可誣而自强於修德이어늘
반드시 福善禍淫과 虧盈益謙의 원리를 반복해서 이야기하여 임금으로 하여금 天道는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준엄하게 알게 하고 스스로 덕을 닦는 데 힘쓰도록 했을 것입니다.
載等 曾微一語及此하고 乃以宿植福業으로 爲言而謂國祚靈長 皆佛之力이라하니 毋乃厚誣天道乎
그런데 원재 등이 여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도리어 福業을 이전부터 심어놓아야 한다고 말하고서, 국가의 운이 오랜 세월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부처의 힘이라고 하였으니, 천도를 크게 속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夫唐之所以歷年者 以太宗濟世安民之功 不可掩也而所以多難者 以其得天下也 不純乎仁義하여 綱常‧禮法 所在有이며
대저 당나라가 오랜 세월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太宗이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 공효를 숨길 수 없었기 때문이고, 환난이 많았던 이유는 그가 천하를 얻은 것이 仁義로 보았을 때 순수하지 못하여 綱常과 예법으로 보았을 때 慚德이 있었기 때문이며,
繼世之君 克己勵善者하고 恣情悖理者 多也
대를 이은 군주들 가운데 사욕을 이기고 선에 힘쓴 자는 드물고 기분 내키는 대로 방종하여 이치를 어긴 자는 많았기 때문입니다.
原注
이라하니 此之謂矣어늘 載等 舍天道而談하니
“하늘은 분명한 도리가 있어 그 무리가 밝다.[天有顯道 厥類惟彰]”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경우를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런데 원재 등이 天道를 제쳐두고 佛果를 말하였으니,
謂灾祥之降 不在天而在佛也 爲治之道 不在修德而在於奉佛也 代宗 惟其不學이라 故載等 得以惑之하니이다
이는 재앙과 상서를 내리는 것이 하늘에 달려 있지 않고 부처에게 달려 있으며 치세를 이룩하는 방법이 덕을 닦는 데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를 받드는 데 달려 있다고 한 것입니다. 대종이 오로지 학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재 등이 대종을 미혹시킬 수 있었습니다.
且夫安‧史之禍 蠱於內하고 楊‧李 賊於外하여 醞釀而成之也
게다가 저 안녹산과 사사명이 일으킨 화란은, 안으로 太眞(楊貴妃)이 玄宗을 고혹시키고 밖으로 楊國忠과 李林甫가 현종을 망쳐놓아 그 화란이 빚어지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而所以能平之者諸人 盡忠帝室하여 驅而攘之也
그리고 그 화란을 평정할 수 있었던 까닭은 郭子儀와 李光弼 등 여러 사람이 황실에 충성을 다하여 그들을 내몰아 물리쳤기 때문이며,
其所以皆有子禍者 祿山‧思明 以臣叛君이라 故慶緖‧朝義 以子弑父하니 天道之所以類應者也
안녹산과 사사명이 모두 자식에게 살해되는 재앙을 당했던 까닭은 그들이 신하로서 임금에게 반역했기 때문에 安慶緖와 史朝義가 자식으로서 아비를 시해한 것이니, 이러한 것이 天道가 무리[類]에 따라 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回紇과 吐蕃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스스로 물러난 것은 또 곽자의가 자신을 내던져 포로가 되어 반간계를 쓴 덕입니다.
推迹本末컨대 皆由人事而載等 乃曰 此非人力所及이라하니 其欺且誣 不甚哉
본말을 따져보면 모두 사람의 행위에서 말미암은 결과인데 원재 등이 “이는 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라고 하였으니, 기만하고 속인 것이 어찌 심하지 않겠습니까.
原注
方是時 子儀 以屢立大功으로 爲大閹 所忌어늘 載等 以卻敵으로 歸之佛力하니
이 당시에 곽자의는 자주 큰 공을 세운 것 때문에 대권을 장악한 환관 魚朝恩의 시기를 받았는데, 원재 등이 적을 물리친 것을 부처의 힘으로 돌렸습니다.
旣足以排子儀 又足以媚朝恩이니 姦邪情狀 豈不灼然이리오마는 而代宗 弗之察也하여 寇至則飯僧講經하여 以禳之하고
그리하여 곽자의를 배격하기에 충분했고 또 어조은에게 아첨하기에 충분했으니 간사한 情狀이 너무도 분명했습니다. 그런데도 대종이 이를 살피지 못하고 외적이 쳐들어오면 飯僧을 하고 講經을 하게 함으로써 재앙을 물리치게 하고,
寇退則厚加賞하여 移爪牙之功하여 歸髡耏之輩하니 其不激將士之怒而速危亡之厄 直幸而已爾
외적이 물러가면 상을 후하게 얹어 장수들의 공을 가져다 중들에게 주었으니, 대종이 장졸들의 분노를 폭발시켜 멸망의 화를 재촉하지 않았던 것은 그저 요행일 따름입니다.
其後 我朝 擧兵南伐하시니 孱主 亦祖是轍하여 未終而城堞 不守矣 是豈不足爲千載之戒哉리잇고
그 후에 우리 宋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남쪽을 정벌하니, 나약한 임금 李煜이 또한 이 전철을 그대로 밟아 梵唄가 끝나기도 전에 南唐의 도성이 함락되었습니다. 아, 이것이야말로 어찌 두고두고 경계로 삼기에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역주
역주1 福善禍淫 : 天道는 선한 자에게 복을 내리고 음일한 자에게 재앙이 내린다는 말로, 《書經》 〈湯誥〉에 보인다.
역주2 虧盈益謙 : 天道는 가득 찬 것을 덜어내고 겸손한 것을 보태준다는 말로, 《周易》 〈謙卦 彖傳〉에 보인다.
역주3 : 사고본에는 ‘懍’으로 되어 있다.
역주4 慚德 : 부끄러운 덕이라는 뜻으로, 唐 太宗은 부자‧형제 사이에 부끄러운 덕이 많았다. 예를 들면 隋나라 말엽에 아버지 李淵이, 거사하자는 자기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자 晉陽宮人을 이용하여 위협하였고, 형인 李建成과 아우 李元吉을 죽였으며, 그 후 李元吉의 妃를 후궁으로 맞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인 태자 李承乾을 폐하여 죽게 하고 아홉째 아들 晉王 李治를 태자로 삼았다. 《新唐書 卷1 高祖本紀, 卷2 太宗本紀》
역주5 天有……惟彰 : 《書經》 〈泰誓 下〉에 보인다. 이 말은 周 武王이 紂王의 죄를 성토한 말 가운데 보인다.
역주6 佛果 : 수행으로 이른 부처의 경지, 깨달음의 경지를 말한다. 《시공불교사전 불과》
역주7 太眞 : 楊貴妃(719~756)이다. 태진은 玄宗에 의해 잠시 道士가 되었을 때 붙여진 道號이다. 小字는 玉環으로, 蒲州 永樂 사람이다. 蜀州 司戶參軍 楊玄琰의 딸로, 처음에는 玄宗의 아들 壽王 李瑁의 妃가 되었으나, 그 미색에 반한 현종이 이모에게서 갈라놓고 도사로 삼았다. 그 뒤 天寶 4년(745) 貴妃에 봉해졌다. 그 후 일족인 楊國忠이 국정을 장악했는데, 천보 14년(755)에 安祿山이 난을 일으키자 현종과 함께 도주하였다. 馬嵬驛에서 군사들이 소요를 일으켜 양국충을 죽이고 양귀비의 목숨을 요구하자, 이에 못 이긴 현종의 명으로 자결하였다.
역주8 子儀 : 郭子儀(697~781)를 가리킨다. 華州 鄭縣 사람으로, 무예로 천거되어 天德軍使 兼九原太守가 되었다. 玄宗 때 朔方節度使로서 안록산의 반군을 토벌하여 河北의 10여 郡을 회복하였으며 史思明을 격파하였다. 肅宗이 즉위하자 關內河東副元帥가 되어 回紇 군대와 연합하여 長安과 洛陽을 수복하였다. 이 공으로 中書令이 되고, 후에는 汾陽郡王으로 봉해졌다. 代宗 때 僕固懷恩이 회흘‧토번을 끌어들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騎兵 몇 명만을 데리고 회흘로 가서 그들을 설득하여 당나라와 함께 토번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德宗이 즉위하자 尙父로 불렸으며, 汾陽王에 봉해져 郭汾陽이라고도 한다. 시호는 忠武이다.
역주9 光弼 : 李光弼(708~764)을 가리킨다. 榮州 柳城 사람으로, 契丹 추장의 아들이었다. 당나라에서 左衛親府左郎將으로 벼슬을 시작하였는데, 肅宗이 즉위하자 戶部尙書, 同中書門下平章事에 제수되었다. 전술과 군대 통솔에 능하여 郭子儀와 함께 安史의 난을 평정하였으며, 代宗 때 臨淮郡王에 봉해졌다. 廣德 원년(763) 吐蕃이 침입했을 때 대종이 陝州로 피난 갔음에도 끝내 지체하여 어가를 수행하지 못했던 일을 부끄러워하다가 병사하였다. 시호는 武穆이며, 太保에 추증되었다.
역주10 回紇……之力 : 복고회은이 끌어들였던 회흘과 토번이 연합하여 代宗 永泰 원년(765) 涇陽을 포위하였다. 이때 복고회은의 급사 소식을 듣고 회흘과 토번 사이에 내분이 생겼는데, 이를 안 곽자의가 먼저 牙將 李光瓚 등을 회흘 측으로 보내 함께 토번을 공격하자고 설득하였다. 원래 회흘은 곽자의가 죽은 줄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 제의를 거절했는데, 곽자의가 직접 몇 명의 기병만 데리고 회흘의 군영으로 가서 회흘 군을 이끄는 藥葛羅를 설득하여 맹약을 맺었다. 그리고 白元光을 시켜 정병을 이끌고 회흘과 함께 靈臺縣에서 토번을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資治通鑑 卷223 唐紀39 代宗 上之下 永泰 元年》
역주11 : 사고본에는 ‘寇’로 되어 있다.
역주12 : 대전본‧사고본에는 ‘固’로 되어 있다.
역주13 魚朝恩 : 722~770. 瀘州 瀘川 사람으로, 唐 玄宗 때 입궐하여 환관이 되었다. 肅宗 至德 연간(756~759)에 開府儀同三司가 되었으며, 代宗이 吐藩의 난을 피해 陝州로 파천할 때 군대를 이끌고 어가를 맞이하였다. 이후로 교만해져 국정을 농락하면서 재상 元載와 사이가 나빠졌는데, 결국 원재의 계책으로 周皓에 의해 絞殺당했다.
역주14 : 대전본에는 ‘賫’로 되어 있다.
역주15 李煜 : 937~978(재위 961~975). 南唐의 後主이다. 초명은 從嘉, 자는 重光, 호는 鍾隱으로, 中主 李璟의 여섯 번째 아들이다. 처음에는 吳王에 봉해졌다가 建隆 2년(961)에 태자가 되었다. 즉위하자 宋나라의 正朔을 받들면서 江南國主로 불렸다. 음률에 정통하고 詞에 능하여 예술적인 자질은 있었으나, 정치적으로는 무능하였다. 결국 975년 송나라가 남당의 수도 金陵을 함락시켰을 때 송나라의 포로가 되었다. 훗날 宋 太宗에게 살해당하였다. 그가 지었던 詞는 아버지 이경의 작품과 함께 《南唐二主詞》로 편집되었다.
역주16 梵唄 : 불교 경전의 글귀나 偈頌에 곡을 붙여 부처의 공덕을 기리는 讚歌를 말한다. 《시공불교사전 범패》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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