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13-12-나(按)
[臣按] 대종이 報應을 가지고 질문을 하였으니, 만약 그 당시에 儒者가 재상 지위에 있었다면,
반드시 福善禍淫과 虧盈益謙의 원리를 반복해서 이야기하여 임금으로 하여금 天道는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준엄하게 알게 하고 스스로 덕을 닦는 데 힘쓰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원재 등이 여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도리어 福業을 이전부터 심어놓아야 한다고 말하고서, 국가의 운이 오랜 세월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부처의 힘이라고 하였으니, 천도를 크게 속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저 당나라가 오랜 세월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太宗이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 공효를 숨길 수 없었기 때문이고, 환난이 많았던 이유는 그가 천하를 얻은 것이 仁義로 보았을 때 순수하지 못하여 綱常과 예법으로 보았을 때 慚德이 있었기 때문이며,
대를 이은 군주들 가운데 사욕을 이기고 선에 힘쓴 자는 드물고 기분 내키는 대로 방종하여 이치를 어긴 자는 많았기 때문입니다.
原注
“하늘은 분명한 도리가 있어 그 무리가 밝다.[天有顯道 厥類惟彰]”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경우를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런데 원재 등이 天道를 제쳐두고 佛果를 말하였으니,
이는 재앙과 상서를 내리는 것이 하늘에 달려 있지 않고 부처에게 달려 있으며 치세를 이룩하는 방법이 덕을 닦는 데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를 받드는 데 달려 있다고 한 것입니다. 대종이 오로지 학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재 등이 대종을 미혹시킬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저 안녹산과 사사명이 일으킨 화란은, 안으로 太眞(楊貴妃)이 玄宗을 고혹시키고 밖으로 楊國忠과 李林甫가 현종을 망쳐놓아 그 화란이 빚어지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화란을 평정할 수 있었던 까닭은 郭子儀와 李光弼 등 여러 사람이 황실에 충성을 다하여 그들을 내몰아 물리쳤기 때문이며,
안녹산과 사사명이 모두 자식에게 살해되는 재앙을 당했던 까닭은 그들이 신하로서 임금에게 반역했기 때문에 安慶緖와 史朝義가 자식으로서 아비를 시해한 것이니, 이러한 것이 天道가 무리[類]에 따라 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回紇과 吐蕃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스스로 물러난 것은 또 곽자의가 자신을 내던져 포로가 되어 반간계를 쓴 덕입니다.
본말을 따져보면 모두 사람의 행위에서 말미암은 결과인데 원재 등이 “이는 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라고 하였으니, 기만하고 속인 것이 어찌 심하지 않겠습니까.
原注
이 당시에 곽자의는 자주 큰 공을 세운 것 때문에 대권을 장악한 환관 魚朝恩의 시기를 받았는데, 원재 등이 적을 물리친 것을 부처의 힘으로 돌렸습니다.
그리하여 곽자의를 배격하기에 충분했고 또 어조은에게 아첨하기에 충분했으니 간사한 情狀이 너무도 분명했습니다. 그런데도 대종이 이를 살피지 못하고 외적이 쳐들어오면 飯僧을 하고 講經을 하게 함으로써 재앙을 물리치게 하고,
외적이 물러가면 상을 후하게 얹어 장수들의 공을 가져다 중들에게 주었으니, 대종이 장졸들의 분노를 폭발시켜 멸망의 화를 재촉하지 않았던 것은 그저 요행일 따름입니다.
그 후에 우리 宋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남쪽을 정벌하니, 나약한 임금 李煜이 또한 이 전철을 그대로 밟아 梵唄가 끝나기도 전에 南唐의 도성이 함락되었습니다. 아, 이것이야말로 어찌 두고두고 경계로 삼기에 충분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