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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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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年 諸呂 擅權用事하니 陳平 患諸呂호대 力不能制하여 嘗燕居深念이러니 見平曰
天下 注意相이요 天下 注意將이라 將相 和調則士 豫附하고 豫附則天下 雖有變이나 權不分하나니 何不交驩太尉
用其計하여 兩人 深相結하니 呂氏謀益衰러라


16-3-가
고후高后 7년(기원전 181)에 여씨들이 정권을 전단專斷하여 권력을 휘둘렀다. 진평은 여씨들을 근심하였지만 힘으로 제압할 수 없어 일찍이 연거燕居할 때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육가陸賈가 진평을 만나 말하였다.
“천하가 평안할 때에는 관심이 재상에게 모이고 천하가 위태로울 때에는 관심이 장수에게 모입니다. 장수와 재상이 화합하면 선비들이 흔쾌히 따르고 선비들이 흔쾌히 따르면 천하에 변란이 생기더라도 권력이 분산되지 않는 법입니다. 께서는 태위와 교분을 맺어 환심을 얻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진평이 그 계책에 따라 두 사람이 깊이 서로 교분을 맺으니 여씨呂氏들의 계획이 더욱 약화되었다.


역주
역주1 16-3-가 : 《前漢書》 卷43 〈陸賈傳〉, 《資治通鑑》 卷13 〈漢紀5 高皇后〉 7년(기원전 181) 기사 등에 보인다.
역주2 陸賈 : ?~?. 楚 사람으로 언변에 능하였는데 劉邦의 천하 통일에 크게 공헌하였다. 사신으로 南越에 가서 南越王 趙佗가 稱臣하도록 하였으며, 돌아와 太中大夫가 되었다. 高帝가 秦나라가 멸망한 까닭을 질문하자 《新語》를 지어 올렸다. 惠帝가 즉위한 뒤 呂后가 여씨들을 왕에 봉하려고 하자 병을 핑계로 사직하였다. 이후 여씨들이 권력을 휘두르자 陳平을 찾아가 周勃과 잘 지낼 것을 권하였다. 文帝가 즉위하자 다시 태중대부가 되었으며, 남월에 재차 사신으로 가서 조타가 칭신하게 하였다.
역주3 : 16-2-가의 원주① ‘面折……如臣’ 참조.

대학연의(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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