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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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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3-1-나(按)
按 高宗之爲太子也 學于甘盤하여 學未大成而甘盤 自河而亳하여 不知所終하니
高宗 自失甘盤으로 茫然無所於學이라가 旣得傅說하사 遂命之以續甘盤之業하시니
爾惟訓于朕志者 望說以格心之事也
酒非麴糵이면 不成이요 羹非塩梅 不和 人君 非賢者修輔 無以進其德이니 汝交修我하여 而無棄我하라
我能行汝之敎라하시니
高宗之望於說者 如彼其切하시니 其可忘言乎
原注
是惟立事而已
學必施於事然後 爲有用之學이니 不然이면 則所聞 雖多 果何爲哉리오
古訓者 古先聖王之訓이니
是也 學必求之古訓然後 有得이니 若讀非聖之書 其何益乎리오
獲者 得之於己也 學必自得然後 爲功이라
不然이면 則道自道‧我自我 猶未嘗學也
人君行事 當以古人爲師
若自任己意하여 不師古昔이요 而能長治久安者 無是理也
原注
於是 又言爲學之要 惟在遜志時敏이니
遜志者 卑遜其心하여 時敏者 하여 日新而又新也
凡人之害于學者 驕與怠而已
驕則志盈이라 善不可入이요 怠則志惰 功不可進이니
遜則不驕하고 敏則不怠 所修之道 自將源源而來하여 如井之泉 愈汲愈有矣
夫人 孰不知此리오마는
然體之不誠이면 則雖得易失이니 惟信之深‧念之篤然後 道積于厥이니이다
猶積善之積이니
今日 造一理하고 明日 又造一理하며 今日 進一善하고 明日 又進一善하여 持久不替 則道積于身이니
身卽道 道卽身이니 渾然無間矣
原注
於是 又言 斅之與學 各居其半이라 我之所敎 僅能半之
高宗 於此 尤當自力이라
必也一念終始 常在於學하여 無少間斷然後 德之所修 有不知其然而然者 曰終始라하고 不曰始終者 學無止法也
上言之積하고 下言德之修者 以理言之컨대 是謂道 以所得言之컨대 是謂德이니 非有二也니이다
論爲學之方 至矣로되 猶慮高宗 未知所法하여 則又勉之以成湯爲法하니
成湯사대 하시며 하시니 儻能視其成法이면 安得有愆이리오
君德 旣修然後 大臣 可擧其職하여 招賢能以列庶位 其敢不敬承乎
學之一 前此 未經見也러니 高宗與說 始言之하여 遂開萬古聖學之源하니 其功 亦大矣哉로소이다


原注
3-1-나(按)
【臣按】 高宗이 태자로 있을 때 甘盤에게 배워 학문이 大成하기도 전에 감반이 황야에 은둔하여 河에서 亳으로 가서, 고종은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고종은 감반을 잃은 뒤로 망연히 배울 사람이 없다가 부열을 얻게 되자 마침내 감반의 일을 잇도록 명하였습니다.
‘爾惟訓于朕志’는 傅說에게 자신의 마음을 바로잡는 일을 바란 것입니다.
그래서 술은 누룩과 엿기름이 아니면 빚어지지 않고, 국은 소금과 매실이 아니면 간을 맞출 수 없으며, 임금은 賢者가 수양시키고 보필해주는 것이 아니면 자신의 덕을 진전시킬 수 없으니, “그대는 나를 여러 방면으로 수양시켜서 나를 버리지 말라.
내가 능히 그대의 가르침을 행할 것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고종이 부열에게 건 기대가 그처럼 간절하였으니, 부열이 어찌 그 말을 잊을 수 있었겠습니까.
原注
왕이시여!
사람을 견문이 많은 이로 구하는 이유는 오직 사업을 수립하기 위해서입니다.
학문은 반드시 사업에 시행된 뒤에야 쓸모 있는 학문이 되니, 그렇지 않다면 견문이 비록 많다 하더라도 과연 어디에 쓰겠습니까.
‘古訓’은 옛 聖王의 가르침이니, 바로 《書經》의 典‧謨와 같은 것입니다.
학문은 반드시 옛 성왕의 가르침에서 구한 뒤에야 소득이 있으니, 만약 聖人이 아닌 사람의 글을 읽는다면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獲’은 자기 몸에 체득하는 것이니, 학문은 반드시 스스로 터득한 뒤에야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道는 道이고 나는 나이게 되니, 이는 학문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금은 사업을 행하는데 옛사람을 스승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여 옛 聖王들을 본받지 않고서도 장구하게 태평치세를 이어가는 것과 같은 그런 이치는 없습니다.
原注
그래서 또 학문을 하는 요체는 오직 뜻을 겸손히 가지고 때에 따라 민첩하게 행하는 데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遜志’는 자신의 마음을 낮추고 겸손하게 가져서 비록 지니고 있어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처럼 하는 것이고, ‘時敏’은 德을 진전시키고 業을 닦아서 때에 미쳐 이를 행하여 날로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무릇 사람이 학문을 하는 데 해가 되는 것은 교만과 게으름일 뿐입니다.
교만하면 뜻이 자만하게 되어 善이 들어갈 수 없고, 게으르면 뜻이 나태해져서 공부가 진전될 수 없습니다.
겸손하면 교만해지지 않고 민첩하면 나태해지지 않기 때문에 수양된 도가 저절로 샘솟듯 끊임없이 나와서, 마치 원천이 있는 샘물이 길으면 길을수록 더욱 생겨나는 것과 같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누구인들 이를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체득을 성실히 하지 않으면 비록 얻었다 하더라도 쉽게 잃게 되니, 오직 믿기를 깊이 하고 생각하기를 깊이 한 뒤에야 도가 그 몸에 쌓이게 됩니다.
‘積’은 ‘積善’의 ‘積’과 같습니다.
오늘 하나의 이치에 나아가고 내일 또 하나의 이치에 나아가며, 오늘 하나의 善에 나아가고 내일 또 하나의 善에 나아가서, 오랫동안 지속해나가 변하지 않으면 도가 자신에게 쌓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곧 도이고 도가 곧 자신이 되니, 혼연일체가 되어 틈이 없게 될 것입니다.
原注
이에 또, 가르치는 것은 배우는 것과 각각 학문의 절반을 차지하니 제가 가르치는 것은 겨우 그 반만 이루어드릴 수 있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高宗은 배우는 데 더욱 스스로 힘써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반드시 일념을 시종일관 늘 배움에 두어 잠시도 중단됨이 없게 한 뒤에야 덕의 수양됨이 수양되는 줄도 모르게 수양될 것이니, ‘終始’라 하고 ‘始終’이라 하지 않은 것은 배움에는 그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는 ‘道의 쌓여짐’을 말하고 뒤에서는 ‘德의 수양됨’을 말한 것은, 이치로 말하면 ‘道’라 이르고 얻은 것으로 말하면 ‘德’이라고 이르니, 별개의 두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傅說은 학문을 하는 방도를 논한 것이 지극했지만, 그래도 고종이 본받을 대상을 알지 못할까 염려하여 또 成湯을 모범으로 삼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성탕은 이미 聖人이었지만 덕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끄러움이 있는 것을 걱정하였으며 잘못에 대해서는 반드시 고쳐서 주저하지 않았으니, 만일 성탕이 이루어놓은 법에 비추어 볼 수 있다면 어찌 허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임금의 덕이 수양된 뒤에야 대신이 그 직분을 행하여 어질고 유능한 인재를 초치해서 여러 직위에 세울 수 있으니, 부열이 감히 임금의 뜻을 공경히 받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學’이라는 글자는 이 이전에 경전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고종과 부열이 처음으로 언급하여 마침내 만고 聖學의 근원을 열어주었으니, 그 공이 또한 큽니다.


역주
역주1 遯歸荒野하여 : 3-1-가의 懸吐에 따르면 여기에서의 ‘하여’ 吐는 ‘하며’로 바꾸어야 할 듯하다.
역주2 人所以求多聞者는 : ‘人求多聞’을 ‘人을 求多聞’으로 본 3-1-가의 현토에 근거하면, 토를 ‘人을 所以求多聞者는’으로 바꾸어야 할 듯하다.
역주3 書之典謨 : 蔡沈의 《書集傳》에 따르면 古訓은 二典이나 三謨와 같은 것이다. ‘二典’은 〈堯典〉‧〈舜典〉을, ‘三謨’는 〈大禹謨〉‧〈皐陶謨〉‧〈益稷〉을 이른다.
역주4 雖有如未嘗有也 : 이와 관련하여 《論語》 〈泰伯〉에 曾子가 顔回를 회상하면서 “능하면서 능하지 못한 이에게 물으며, 학식이 많으면서 적은 이에게 물으며, 있어도 없는 것처럼 여기며, 가득해도 빈 것처럼 여기며, 자신에게 잘못을 범하여도 따지지 않았다.[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有若無 實若虛 犯而不校]”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5 進修及時 : 이와 관련하여 《周易》 〈乾卦 文言傳〉에 “군자가 德을 진전시키고 業을 닦는 것은 때에 미쳐 이를 행하고자 함이다.[君子進德修業 欲及時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6 : 사고본에는 ‘功’으로 되어 있다.
역주7 : 대전본에는 ‘德’으로 되어 있다.
역주8 : 대전본‧사고본에는 ‘盛’으로 되어 있다.
역주9 德猶恐其有慙 : 이와 관련하여 《書經》 〈仲虺之誥〉에 “成湯이 桀王을 南巢에 유폐시키고 옛 聖王의 덕만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여, ‘나는 후세에 나를 구실로 삼을까 두렵다.’라고 하였다.[成湯放桀于南巢 惟有慙德 曰予恐來世以台爲口實]”라는 내용이 보인다. 蔡沈의 주에 따르면 ‘成湯’은 武功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 것으로, 성탕이 桀王을 정벌한 것은 비록 하늘의 뜻에 따르고 사람의 마음에 응한 것이지만 堯임금‧舜임금‧禹왕이 禪位를 통해 帝位를 이어받은 것과 달리 정벌을 통해 제위에 올랐기 때문에 자신의 덕이 옛 성왕만 못한 것을 부끄러워한 것이다.
역주10 過必改而不吝 : 이와 관련하여 《書經》 〈仲虺之誥〉에 仲虺가 성탕에게 “왕께서는 음란한 음악과 아름다운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고 재화와 이익을 증식하지 않으시며, 덕이 많은 이에게는 관직을 성대하게 내리고 공이 많은 이에게는 상을 성대하게 내리시며, 사람을 등용하되 자신의 재능과 같이 생각하고, 허물을 고치는 데 주저하지 않으시어 능히 너그럽고 능히 인자하여 드러나서 백성들에게 믿음을 받으셨습니다.[惟王不邇聲色 不殖貨利 德懋懋官 功懋懋賞 用人惟己 改過不吝 克寬克仁 彰信兆民]”라고 한 말이 보인다.
역주11 : 대전본에는 ‘事’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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