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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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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가
後魏 問博士
후위後魏의 임금 탁발규拓跋珪가 박사 이선李先에게 물었다.
天下何物 可以益人神智
“천하의 어떤 물건이 사람의 정신과 지혜에 보탬이 될 수 있겠는가?”
對曰
이선이 대답하였다.
莫若書籍이니이다
“서적만 한 것이 없습니다.”
탁발규가 물었다.
書籍 有幾
“서적이 얼마나 되는가?
如何可集
어떻게 하면 모을 수 있는가?”
對曰
이선이 대답하였다.
以來 世有滋益하여 至今不可勝計하니
서계書契 이후로 세상에 서적이 늘어나 지금은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苟人主所好 何憂不集이리오
만약 임금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어찌 모이지 않을 것을 걱정하겠습니까.”
遂命郡縣하여 大索書籍하여 悉送하다
탁발규가 마침내 군현郡縣에 명하여 대대적으로 서적을 찾아내서 모두 평성平城으로 보내도록 하였다.
역주
역주1 4-11-가 : 《資治通鑑》 卷111 〈晉紀33 安帝 丙〉에 보인다.
역주2 : 사고본에는 ‘王’으로 되어 있다.
역주3 : 371~409(재위 386~409). 北魏의 초대 황제 拓跋珪를 가리킨다. 시호는 道武帝, 묘호는 太祖이다. 鮮卑 拓跋部 출신으로, 그의 선조가 세우고 前秦에게 멸망되었던 代나라를 재건하여 代王이 되었다. 그 후 386년에 국호를 魏로 고치고 396년(皇始1)에 稱帝하였으며, 398년(天興1)에 平城으로 천도하였다. 漢人들을 등용하여 官制‧禮樂 등을 중국식으로 정비하기도 하였으나, 말년에 정치를 그르치고 아들인 拓跋紹에게 시해되었다.
역주4 李先 : 335~429. 자는 容仁으로, 中山 廬奴 사람이다. 젊어서 학문을 좋아하고 占卜과 觀相에 능하였다. 前秦의 苻堅과 西燕의 慕容永에게 벼슬을 한 적이 있으며, 후에 北魏에 귀부하여 衛王 拓拔儀의 휘하에서 左長史를 지냈다. 北魏의 초대 황제인 拓跋珪에게 유학을 숭상하도록 권하였으며, 2대 황제인 明元帝도 이선에게 제자백가와 병법을 배웠다. 뒤에 北燕 정벌에도 참가하였으며, 3대 황제인 太武帝 때는 內部大官을 지냈다. 시호는 文懿이다.
역주5 : 저본에는 없으나 대전본‧사고본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이하도 동일하다.
역주6 書契 : 漢字, 즉 글자를 가리킨다. 선진시대에는 한자를 ‘文’‧‘名’‧‘書’‧‘書契’ 등으로 불렀다. 秦나라 이후로는 한자를 ‘文字’라고 하였으며, ‘文’‧‘名’‧‘書’‧‘書契’ 등과 같은 명칭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황덕관 외, 하영삼 역, 한어문자학사, 동문선, 2000. 21쪽》
역주7 平城 : 北魏의 都城이다. 道武帝 天興 원년(398)부터 孝文帝 太和 17년(493)까지 도읍하였다가, 이후 洛陽으로 천도하면서 平城縣이 되었다. 故址는 현재 山西省 大同市 동북쪽에 있다. 《資治通鑑大辭典 平城》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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