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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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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衆人 匈匈言己殺하고 恐天下學士 訕己하여
明經著節라하여 乃使人致意하여 深自結納하고 因薦禹天子하여 하고 禮事之하니
議者 於是 或稱顯以爲不라하니 顯之設變詐以自解免‧取信人主 皆此類也러라


18-13-가
처음에 석현石顯은 사람들이 자신이 전장군 소망지前將軍 蕭望之를 죽였다고 격앙되게 말한다는 얘기를 듣고 천하의 학사學士들이 자신을 비방할까 두려웠다.
그리하여 간대부 공우諫大夫 貢禹가 경학에 달통하고 절조로 알려진 자라고 하여, 이에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물음으로써 스스로 그와 깊이 교분을 맺었다. 이어서 공우를 원제元帝에게 추천하여 삼공구경三公九卿의 자리에 오르게 하고 를 다 갖추어 지극히 섬겼다.
이에 의론하는 자들 중에는 석현을 칭송하여, 석현이 소망지를 질투하여 참소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자도 있었다. 석현이 거짓을 꾸며내어 스스로 혐의를 벗고 군주의 신임을 얻은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


역주
역주1 18-13-가 : 《資治通鑑》 卷29 〈漢紀21 元帝 下〉 建昭 2년(기원전 37) 6월 조에 보인다.
역주2 前將軍蕭望之 : ‘前將軍’은 武官名으로, 後將軍‧左將軍‧右將軍과 함께 四將軍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출정하는 것 외에 조정의 관직을 겸임하였고, 諸吏‧散騎‧給事中 등의 加官을 더해 朝官으로서 조정의 논의에 참여하여 국가의 대사를 결정할 수 있었다. 蕭望之는 元帝(재위 기원전 49~기원전 33)가 갓 즉위했을 때 전장군에 임명되었다. 《漢書 卷36 楚元王傳》
역주3 諫大夫貢禹 : 貢禹(기원전 127~기원전 44)는 자가 少翁으로 지금의 산동성 諸城인 琅邪 사람이다. 당시에 경학에 달통하고 절개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였다. 원제가 이를 듣고 諫大夫에 임명하였으며, 뒤에 光祿大夫, 長信少府, 御史大夫 등을 역임하였다. 《漢書》 卷72에 열전이 있다. ‘諫大夫’는 18-10-가 ‘諫大夫’ 주 참조.
역주4 : 대전본‧사고본에는 없다.
역주5 歷位九卿 : ‘九卿’은 중앙조정의 아홉 개 중요한 관원과 관서를 이른다. 종묘 의례와 占卜祭祀 등을 담당하는 太常(秦代의 奉常), 황제의 侍從武官長인 郎中令 또는 光祿勳(漢 武帝 이후), 각 궁문의 守衛를 담당하는 衛尉, 황제의 수레와 말을 관장하는 太僕, 형벌과 獄訟을 담당하는 최고 사법관인 廷尉, 外夷나 藩國의 來朝를 관장하는 典客, 황족 종실의 사무와 종실의 범죄를 관장하는 宗正, 국가의 穀帛租賦를 관장하는 治粟內史 또는 大司農(漢 武帝 이후), 전국의 山海池澤의 세를 받아 황제의 私用에 공급하는 일을 담당하는 少府를 가리킨다. 여기에서는 貢禹가 三公의 하나인 御史大夫와 九卿의 하나인 少府에 임명된 것을 이른다. 《陰法魯‧許樹安, 中國古代文化史(3), 北京:北京大學出版社, 2005, 263~264쪽》
역주6 : 대전본에는 ‘其’로 되어 있으나, 오자이다.
역주7 妬譖望之 : 石顯이 蕭望之를 무고하여 자살하게 한 일은 18-10-가 참조.

대학연의(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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