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寢疾
이어늘 上
이 與
同至其第
하여 指
하여 欲以妻其子叔玉
하시고 커늘 上
이 自製碑文
하사 幷爲書石
하시다
及
이 有宰相材
러니 及正倫
이 以罪黜
하고 君集
이 謀反誅
하여는 上
이 始疑徵阿黨
이러시니
又有言 徵
이 自錄前後諫辭
하여 以示
이라하여늘 上
이 愈不悅
하여 乃罷叔玉尙主而踣所撰碑
하시다
23-6-가
위징魏徵이 병으로 드러눕자 태종은 태자와 함께 위징의 집에 가서 형산공주衡山公主를 지목하여 위징의 아들 위숙옥魏叔玉에게 하가下嫁시키려고 하였다. 그리고 위징이 죽자 태종은 직접 비문을 짓고 아울러 비석에 이 글을 직접 쓰기까지 하였다.
위징이 일찍이 두정륜杜正倫과 후군집侯君集을 재상의 재능이 있다고 천거하였는데, 두정륜이 죄를 받아 쫓겨나고 후군집이 모반으로 주벌되자 태종은 처음으로 위징이 파벌을 짓지 않았을까 의심하였다.
그런데 또 어떤 자가 위징이 스스로 그동안 자신이 했던 간언諫言을 기록하여 기거랑 저수량起居郞 褚遂良에게 보여주었다고 하였다. 이에 태종은 더욱 불쾌해져서 마침내 위숙옥에게 공주를 출가시키겠다는 언약을 파기하고 직접 글을 짓고 썼던 비석을 쓰러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