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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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寢疾이어늘同至其第하여하여 欲以妻其子叔玉하시고 커늘 自製碑文하사 幷爲書石하시다
23-6-가
魏徵이 병으로 드러눕자 태종은 태자와 함께 위징의 집에 가서 衡山公主를 지목하여 위징의 아들 魏叔玉에게 下嫁시키려고 하였다. 그리고 위징이 죽자 태종은 직접 비문을 짓고 아울러 비석에 이 글을 직접 쓰기까지 하였다.
有宰相材러니 及正倫 以罪黜하고 君集 謀反誅하여는 始疑徵阿黨이러시니
위징이 일찍이 杜正倫과 侯君集을 재상의 재능이 있다고 천거하였는데, 두정륜이 죄를 받아 쫓겨나고 후군집이 모반으로 주벌되자 태종은 처음으로 위징이 파벌을 짓지 않았을까 의심하였다.
又有言 徵 自錄前後諫辭하여 以示이라하여늘 愈不悅하여 乃罷叔玉尙主而踣所撰碑하시다
그런데 또 어떤 자가 위징이 스스로 그동안 자신이 했던 諫言을 기록하여 起居郞 褚遂良에게 보여주었다고 하였다. 이에 태종은 더욱 불쾌해져서 마침내 위숙옥에게 공주를 출가시키겠다는 언약을 파기하고 직접 글을 짓고 썼던 비석을 쓰러트렸다.
역주
역주1 23-6-가 : 《資治通鑑》 卷196 〈唐紀12 太宗 中之中〉 貞觀 17년(643) 1월, 卷197 〈唐紀13 太宗 中之下〉 貞觀 17년(643) 7월 조에 보인다.
역주2 魏徵 : 23-5-가 ‘魏徵’ 주석 참조.
역주3 太子 : 李承乾(619~644)이다. 唐 太宗의 장자로, 자는 高明이다. 承乾殿에서 태어나 이를 따라 이름을 지었다. 처음에는 恒山王에 봉해졌다가 다시 中山王에 봉해졌다. 태종이 즉위하고 두 달 뒤에 8세의 나이로 황태자가 되었다. 매우 총명하여 태종에게 사랑받았으나 장성한 뒤에는 聲色에 빠져 황음무도하였다. 뒤에 대립하던 아우 李泰의 살해를 기도하다가 발각되어 태종 貞觀 17년(643) 4월 6일 乙酉日에 庶人으로 강등되었으며, 동년 9월 7일 癸未日에 黔州로 유배되고, 이듬해 12월 2일 壬人日에 그곳에서 죽었다. 시호는 愍이다.
역주4 衡山公主 : 634~663. 당 태종의 막내딸이다. 新城公主라고도 한다. 태종 정관 16년(642)에 衡山郡公主에 봉해지고 이듬해에 魏徵의 장자 魏叔玉과 혼인하기로 되었다가 위징이 죽은 뒤 취소되었다. 정관 23년(649)에 長孫無忌의 從父 長孫操의 아들인 長孫詮(?~659)에게 下嫁하였으나 태종의 죽음으로 혼례식은 중지되었다. 高宗 永徽 3년(652)에 新城郡長公主에 봉해지고 중지되었던 혼례식을 거행하였다. 고종 顯慶 4년(659)에 장손전이 武后의 무고를 받아 모반죄로 유배된 뒤 살해되자 다시 韋正矩(?~663)에게 개가하였다. 663년에 30세의 나이로 病死하였다.
역주5 徵薨 : 唐 太宗 貞觀 17년(643) 1월 17일 戊辰日의 일이다.
역주6 徵嘗……撰碑 : 唐 太宗 貞觀 17년(643) 7월의 일이다.
역주7 杜正倫 : ?~659. 당나라 초기의 재상이다. 相州 洹水 사람이다. 隋 文帝 때 秀才로 발탁되었으며 글을 잘 짓고 불경에 조예가 깊었다. 당나라에 들어와 齊州總管府錄事參軍이 되고 秦王府 文學館에 들어갔다. 태종 때 魏徵의 천거로 兵部員外郞이 되었으며 이어 給事中, 中書侍郞, 太子左庶子 등을 역임하고 南陽縣侯에 봉해졌다. 태종 정관 17년(643)에 태자 李承乾의 모반에 연루되어 驩州로 유배되었다. 高宗 顯慶 원년(656)에 黃門侍郞, 同中書門下三品에 임명되어 재상이 되었고, 현경 2년(657)에 中書令에 임명되었다. 현경 3년(658)에 李義府와 불화하여 무고를 받고 橫州刺史로 폄적되었다가 얼마 뒤 그곳에서 病死하였다.
역주8 侯君集 : ?~643. 당나라 초기의 名將으로 凌煙閣 24공신 중의 한 사람이다. 豳州 三水 사람이다. 처음에는 학문을 모르고 무용으로 자부하였으나 당나라에 들어와서 태종의 신임을 받아 관직이 높아져가자 학문을 시작하였다. 右衛大將軍, 兵部尙書, 吏部尙書 등을 역임하였으며 陳國公에 봉해졌다. 副將으로 李靖을 따라 吐谷渾(토욕혼)을 평정하였으며, 交河道行軍大總管이 되어 高昌國을 멸망시키고 비석에 공을 새기고 돌아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사로이 재물을 탐하다가 하옥되었는데, 태종이 죄를 묻지 않고 바로 석방시켰으나 원한을 품고 태자 李承乾에게 모반을 권하였다. 이 일이 발각되어 참수되었다.
역주9 起居郞 : 관직명이다. 당나라 때 처음 설치되었으며 門下省에 속하였다. 종6품上이다. 천자의 기거 법도를 기록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천자가 正殿에 나오면 기거랑은 왼쪽에, 起居舍人은 오른쪽에 위치하여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해두었다가 季冬에 史官에게 주었다.
역주10 褚遂良 : 대전본‧사고본에는 이 뒤에 ‘者’가 있다. 저수량(596~658 또는 597~659)은 太宗‧高宗 때의 정치가이자 歐陽詢‧虞世南‧薛稷과 함께 당나라 초기 4대 서법가 중 한 사람이다. 자는 登善이며, 杭州 錢塘 사람이다. 太宗 때 起居郞, 諫議大夫, 中書令 등을 역임하였다. 태종 貞觀 23년(649)에 長孫無忌와 함께 고종을 보좌하라는 태종의 遺詔를 받았다. 高宗이 즉위한 뒤 尙書右僕射에 임명되고 河南郡公에 봉해져 褚河南으로 불렸다. 고종이 武則天을 황후로 삼는 것에 극력 반대하다가 潭州都督으로 폄적되었고, 武后가 즉위한 뒤에는 다시 桂州都督, 愛州刺史로 폄적되어 애주에서 죽었다. 세상에 전하는 墨跡으로 〈孟法師碑〉, 〈雁塔聖敎序〉 등이 있다.

대학연의(4)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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