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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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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 卷20
大學衍義 卷20
格物致知之要(二)
사물의 원리를 깊이 연구하여 知性의 힘을 극대화하는 핵심적인 방법들(2)
辨人材
人材를 구별하는 방법들
憸邪罔上之情[姦臣]
奸邪한 자들이 임금을 속인 정상[간신]
20-1-가
在肅宗朝하여하여 擢平章事注+李輔國, 宦官之用事者, .러니 할새
元載가 肅宗 때에 李輔國의 추천을 통해 平章事에 발탁되었는데,注+李輔國은 환관으로 권력을 전횡한 자이다. 일이 뒤에 보인다. 뒤에 숙종이 은밀히 이보국을 죽일 때 원재가 그 모의에 참여하였다.
董秀하여 使卓英倩으로 潛與往來하여
대종이 즉위하자 원재는 권세가 더욱 커졌으며, 또 재물을 써서 內侍인 董秀와 결탁하여 主書 卓英倩으로 하여금 동수와 은밀히 왕래하게 하였다.
上意所屬 必先知之하여 承意探微하여 意無不合하니 以是愈愛之하더시다
그리하여 대종의 뜻이 향하는 바를 원재가 반드시 먼저 알아서 그 뜻을 받들고 미세한 동정을 살펴서 대종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없자, 대종이 이 때문에 원재를 더욱 총애하였다.
역주
역주1 20-1-가 : 《資治通鑑》 권223 〈唐紀39 代宗 上之下〉 廣德 원년(763) 12월 조에 보인다.
역주2 元載……章事 : 肅宗 寶應 원년(762) 3월 29일 戊申日의 일이다. ‘平章事’는 中書侍郞同平章事를 이른다. 당나라 때 中書令은 임명하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中書侍郞이 실제적인 中書省의 장관이었으며, 여기에 同中書門下平章事의 직함을 더하면 명실상부한 재상이 되었다. ‘同平章事’는 同中書門下平章事의 약칭이다. 《資治通鑑 卷222 唐紀38 肅宗 下之下》
역주3 元載 : ?~777. 唐 代宗(726~779, 재위 762~779) 때의 재상이다. 자는 公輔이며 지금의 섬서성 鳳翔縣인 鳳翔縣 岐山 사람이다. 어려서 고아가 되었으나 책을 좋아하여 여러 서적을 두루 보아 높은 성적으로 進士에 합격하였다. 肅宗(711~762, 재위 756~762) 때 권력을 전횡했던 환관 李輔國의 처 元氏와 같은 종친이라 하여 이보국에게 중용되었다. 762년 숙종이 병이 위중하여 이보국이 권력을 전단할 때 이보국의 추천을 받아 재상의 직위인 中書侍郞同平章事에 임명되고 許昌縣子에 봉해졌다. 그러나 얼마 뒤에 숙종이 죽고 대종이 즉위하자 대종을 도와 이보국을 죽였으며, 대종 大曆 5년(770)에는 대종을 도와 환관 魚朝恩을 죽였다. 그 뒤로 권력을 전횡하여 불법을 자행하고 충신들을 배척하며 공공연히 뇌물을 받다가 777년 3월에 대종의 명을 받고 자진하였다.
역주4 李輔國 : 704~762. 唐 肅宗과 代宗 때 권력을 장악했던 환관이다. 본명은 靜忠이나, 뒤에 숙종에게 護國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가, 다시 숙종의 명을 받아 輔國으로 개명하였다. 매우 못생겼다고 한다. 唐 玄宗(685~762, 재위 712~756) 때 궁에 들어가 환관이 된 뒤 태자 李亨을 侍奉하여 심복이 되었다. 755년에 安史의 난이 일어나 현종이 서쪽으로 蒙塵가자, 처음에는 현종과 함께 서쪽으로 떠났다가 중간에 현종과 갈라져 북쪽으로 갔던 태자 李亨에게 별도로 즉위하여 민심을 달래줄 것을 권하였다. 756년 7월에 태자가 靈武에서 즉위하니 바로 숙종이다. 숙종은 현종을 太上皇으로 높이고 軍政을 모두 이보국에게 위임하였다. 757년에 숙종을 따라 長安에 돌아온 뒤 開府儀同三司에 임명되고 郕國公에 봉해졌다. 뒤이어 현종 역시 장안에 돌아오자 현종의 복위를 걱정한 이보국은 조서를 위조하여 현종을 별궁으로 옮긴 뒤 주위 사람을 모두 자신의 심복으로 채우고 현종이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철저히 막았으며 숙종마저도 현종을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 762년 4월 5일 병진일에 현종이 외롭게 病死하고 병을 앓던 숙종 역시 10여 일 뒤인 4월 18일 정묘일에 病死하자 이보국은 숙종의 비인 張皇后(?~762)를 죽이고 이틀 뒤인 4월 20일 기사일에 숙종의 장자인 代宗을 즉위시켰다. 대종 寶應 원년(762) 10월 17일 밤에 대종이 보낸 자객에게 피살되었다. 시호는 醜이다.
역주5 事見後 : 《대학연의》 권40 40-3-가에 보인다.
역주6 肅宗潛誅輔國 : 저본에는 ‘肅宗’으로 되어 있으나 ‘代宗’의 오류로 추정된다. 숙종이 이보국을 죽이려고 했다는 기록은 《자치통감》 숙종 上元 원년(760) 조에 “그 뒤에 상이 조금 뉘우치고 깨달아 이보국을 미워하여 죽이려고 하였으나 그가 병권을 쥐고 있는 것을 두려워하여 끝내 주저하고 결행하지 못하였다.[其後上稍悔寤 惡輔國 欲誅之 畏其握兵 竟猶豫不能決]”라는 내용이 보이는데, 이때에는 원재가 아직 평장사가 되기 전이었다. 《자치통감》에 따르면 代宗은 태자로 있을 때부터 李輔國이 권력을 전횡하는 것을 몹시 못마땅해했으나 즉위할 때 이보국의 공이 있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죽이지는 못하였다. 寶應 원년(762) 10월 17일 壬戌日 밤에 이보국의 집에 자객이 들어 이보국의 머리와 팔 하나를 훔쳐 달아나는 일이 발생하였는데, 대종은 이보국의 집에 中使를 보내 위로하고 나무로 머리를 깎아서 장례를 치러주었다. 그리고 太傅를 추증하였다고 한다. 《新唐書》에는 대종이 자객을 보내 죽인 뒤 그 머리를 측간에 버리고 오른팔은 잘라 唐 玄宗의 능인 泰陵에 고하였으며, 후에 梓州刺史 杜濟가 자신이 이보국을 죽였다고 말했다는 기록을 하고 있다. 이보국이 피살된 일은 《舊唐書》 〈代宗本紀〉에는 10월 22일 丁卯日로, 〈李輔國列傳〉에는 10월 18일 밤으로 되어 있다. 《資治通鑑 卷221 唐紀37 肅宗 下之上 上元 元年》 《資治通鑑 卷222 唐紀38 肅宗 下之下》 《舊唐書 卷11 代宗本紀, 卷184 宦官列傳 李輔國》 《新唐書 卷208 宦者列傳下 李輔國》
역주7 載預其謀 : 대종이 이보국을 죽일 때 원재의 역할에 대해 《新唐書》 권145 〈元載列傳〉에 “자객이 이보국을 죽일 때 원재가 몰래 그 모의에 참여하였다.[盜殺李輔國 載陰與其謀]”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8 代宗……愛之 : 唐 代宗 廣德 원년(763) 12월 조에 보인다.
역주9 內侍 : 관직명이다. 內侍省 소속으로, 환관이 담당하였다. 秩은 從4品上이다.
역주10 主書 : 문서를 주관하는 관직 이름으로, 秩은 從7品上이다.

대학연의(4)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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