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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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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帝渡江初 爲政이러니 陳頵 遺導書曰
所以傾 正以莊老之俗 傾惑朝廷하여 養望者 爲弘雅하고 政事者 爲俗人이라
今宜改張然後에사 中興 可冀라호대 不能從하다


13-9-가4
晉 元帝가 長江을 건너 建康으로 천도한 초기에 王導가 집정했는데, 陳頵이 왕도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中原이 전복된 원인은 바로 老莊의 풍조가 조정을 미혹시켜 은둔하여 虛名을 키우는 자를 고아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출사하여 정사에 참여하는 자를 속된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런 풍조를 개혁한 뒤에야 중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王導가 이를 따르지 못하였다.


역주
역주1 13-9-가4 : 《資治通鑑》 卷87 〈晉紀9 懷帝 中〉 永嘉 5년(311) 12월 조에 보인다.
역주2 王導 : 276~339. 자는 茂弘으로, 瑯琊 臨沂 사람이다. 위진시대의 세족인 낭야 왕씨이다. 西晉 말에 琅邪王 司馬睿(뒤의 元帝)의 安東司馬가 되어 建康으로 移鎭을 건의하였다. 뒤에 흉노 등에 洛陽이 함락되자, 화북과 강남의 세족을 결집하여 사마예를 옹립하여 東晉의 건립에 공헌하였다. 이후 司徒‧太傅를 거쳐 始興郡公에 봉해지는 등 元帝‧明帝‧成帝의 三朝에 걸쳐 재상을 지냈다. 成帝가 즉위하자 庾亮과 함께 보필했다. 咸和 2년(327) 蘇峻의 반란이 일어나자 입궁하여 成帝를 侍衛하였다. 시호는 文獻이다.
역주3 中華 : 사고본에는 ‘國家’로 되어 있다.
역주4 : 대전본에는 ‘蔽’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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