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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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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 後主 학문
후주後主의 학문
4-14-가1
以宮人有文學者 爲女學士러니
후주後主 진숙보陳叔寶가 문학에 재능이 있는 궁인을 여학사女學士로 삼았다.
僕射 雖爲宰輔 不親政務하고 日與尙書孔範等十餘人으로 侍上하여 遊宴後庭하고 謂之狎客이라하더라
복야僕射 강총江總은 비록 재보宰輔로 있었으나, 직접 정무를 보지 않고 날마다 도관상서都官尙書 공범孔範 등 10여 명과 함께 후주를 모시고 후정後庭에 나가 연회를 열었는데, 이들을 ‘압객狎客’이라고 하였다.
每飲酒 使諸妃嬪及女學士 與狎客共賦詩하여 互相贈答하고 采其尤艶麗者하여 被以新聲하고
후주가 매번 술을 마실 때마다 여러 비빈妃嬪여학사女學士들로 하여금 압객들과 함께 시를 지어 서로 주고받게 하고, 그중에서 특히 곱고 화려한 것을 골라 새로운 악곡을 입혔다.
酣歌하여 自夕達旦하여 日以爲常하더라
그리고는 임금과 신하들이 저녁부터 아침이 될 때까지 술에 취해 노래를 불러 날마다 이를 일상으로 삼았다.
其後 伐陳하고 獲叔寶以歸하여
그 후에 나라가 나라를 정벌하고 진숙보를 사로잡아 수나라의 수도로 돌아갔다.
從隋文帝飲賦詩러니 及出 目之曰
진숙보가 문제文帝를 모시고 술을 마시며 시를 지었는데, 진숙보가 나가자 문제가 그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以作詩之功으로 何如思安時事乎
“시 지을 공력으로 시국을 안정시킬 생각을 하는 것이 어떠했을까.”
역주
역주1 4-14-가1 : 《南史》 卷12 〈後主沈皇后傳〉, 《資治通鑑》 卷176 〈陳紀10 長城公 下〉, 《南史》 卷10 〈陳本紀 下 第10〉 등에 보인다.
역주2 陳後主叔寶 : 553~604(재위 582~589). 南朝 陳나라의 5대 황제이다. 자는 元秀, 小字는 黃奴로, 4대 황제 宣帝의 장남이다. 즉위 후 궁궐을 크게 짓고 문장으로 소일하면서 정치를 소홀히 하였다. 艶詞를 짓고 새 음률을 입혀 〈玉樹後庭花〉‧〈臨春樂〉 등과 같은 음악을 짓기도 하였다. 隋 文帝의 아들 楊廣이 建康을 함락시켜 陳을 멸한 뒤 그를 長安으로 압송하였는데, 그 후에도 詩作과 飮酒를 일삼았다. 문집으로 《陳後主集》이 있다.
역주3 江總 : 519~594. 자는 總持로, 濟陽 考城 사람이다. 어려서 명민하고 文才가 있었다. 梁 武帝에게 詩文을 인정받아 벼슬이 太常卿에 이르렀다. 侯景의 난 이후에 會稽로 피난갔다가 563년(天嘉4) 陳 文帝의 부름을 받고 中書侍郞이 되었다. 陳 後主 때에는 벼슬이 尙書令에 이르렀다. 陳나라가 망하자 隋나라로 들어가 開府에 올랐다.
역주4 : 저본‧대전본에는 ‘摠’으로 되어 있으나 사고본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陳書》 卷27 〈江總傳〉에도 ‘總’으로 되어 있다.
역주5 : 사고본에는 ‘群’으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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