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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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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8-3-나(按)
按 王季之友伯也心之本然이니 非以其己而後友之也
8-3-나(按)
[臣按] 王季가 太伯에게 베푼 우애는 본연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자신에게 나라를 양보했기 때문에 우애한 것은 아닙니다.
昆弟至情 出於天性하니 豈有所爲而爲之乎리오 使伯未嘗有國之事라도 王季之所以友之者 亦若是而已
형제간의 지극한 정은 타고난 성품에서 나오는 것이니 어찌 어떤 이유가 있어서 우애를 하겠습니까. 설사 태백이 나라를 양보하는 일이 있지 않았다 할지라도 왕계가 형에게 우애한 것은 또한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夫王季之友 不過盡其事兄之道耳 豈有心於求福哉시리오 閨門之內 敬順休洽 固産祥隤之基也
왕계의 우애는 단지 형을 섬기는 도리를 다한 것뿐입니다. 어찌 복을 구하는 데 마음을 두었겠습니까. 규문 안이 두루 공경하고 순히 따르는 것은 진실로 길상을 낳고 복을 부르는 기반입니다.
故厚其慶而錫之光하여 受天之祿而有天下하시니 天之報施 其亦明矣로다
그러므로 그 경사를 크게 하여 양보한 영광을 줌으로써 하늘의 복을 받아 천하를 소유하게 되었으니, 하늘의 보답은 또한 분명한 것입니다.
原注
후세에 漢 顯宗 같은 이는 東海王 劉彊이 자신에게 양보했다고 하여 우애하였고, 唐 明皇은 宋王 李成器가 자신에게 양보했다 하여 우애하였으니,
其友 雖同而所以友之則異하니 蓋王季之心 無所爲而然者也 顯宗‧明皇之心 有所爲而然者也
우애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우애를 한 이유는 다릅니다. 왕계의 마음은 어떤 목적 없이 한 것이며, 현종과 명황의 마음은 목적이 있어서 한 것입니다.
天理‧人欲之分而漢‧唐之治 所以不若周之盛與인저
이는 天理와 人欲이 나뉘는 관건으로, 漢나라와 唐나라의 정치가 周나라만큼 성대하지 못했던 이유일 것입니다.
역주
역주1 : 사고본에는 ‘泰’로 되어 있다.
역주2 因其 : 사고본에는 ‘其因’으로 되어 있다.
역주3 : 사고본에는 ‘讓’으로 되어 있다.
역주4 : 사고본에는 ‘泰’로 되어 있다.
역주5 : 사고본에는 ‘讓’으로 되어 있다.
역주6 : 대전본에는 ‘阯’로 되어 있다.
역주7 漢顯……友之 : 漢 顯宗은 後漢 明帝 劉莊(28~75)으로, ‘현종’은 廟號이다. 光武帝의 넷째 아들이다. 貴人 陰麗華의 소생으로, 광무제 建武 19년(43)에 황태자에 책봉되어 광무제 中元 2년(57)에 즉위하였다. 劉彊(25~58)은 광무제의 장자이다. 郭后의 소생으로, 건무 2년(26)에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건무 17년(41)에 곽후가 폐위되자 불안을 느끼고 藩國을 자청하였으나, 건무 19년(43)에 황태자에서 폐위되고 東海王에 봉해졌다. 시호는 恭이다.
역주8 唐明……友之 : 唐 明皇은 玄宗 李隆基(685~762)로, ‘명황’은 시호인 ‘至道大聖大明孝皇帝’를 줄여서 부르는 칭호이다. 睿宗의 셋째 아들이다. 睿宗 景雲 원년(710)에 거병하여 韋后를 죽이고 동년 6월 24일에 아버지 예종을 황제에 즉위시켰다. 동년 6월 27일에 태자에 봉해지고, 2년 뒤인 712년 8월 25일에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李成器(679~742)는 睿宗의 장자이다. 예종이 즉위한 뒤 태자를 세우면서 적장자 이성기와 큰 공을 세운 이융기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나라가 편안하면 적장자를 먼저 하고 나라가 위태로우면 공을 먼저 하는 법이라며 수일간 눈물을 흘리면서 청원하여 태자 자리를 동생 이융기에게 양보하였다. 삼가고 자중하며 조정 일에 간섭하지 않아 당 현종에게 중시되었다. 追諡는 讓皇帝이다.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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