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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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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開元中 戶部侍郞 性精敏하고 應對辯給하더니 以治財賦 得幸於上하여 始廣置諸하여 競爲聚斂하니
24-8-가1
唐 玄宗 開元 연간 때 戶部侍郞 宇文融은 성품이 영민하고 응대할 때 언변이 뛰어났는데, 재정과 부세를 잘 관리한다는 이유로 현종에게 총애를 받아 처음으로 여러 使職을 광범위하게 두어 경쟁적으로 가렴주구를 일삼게 하였다.
由是百官 寖失其職하고 而上心 益侈하니 百姓 皆愁苦之러니
이 때문에 백관들이 차츰 제 직분을 그르치고 현종의 마음이 더욱 사치에 젖으니 백성들이 모두 이를 근심하고 괴로워하였다.
及融 旣敗而 得幸하니 於是 之徒 競以利進하여 百司有事權者 稍稍置使以領之러라
우문융이 몰락한 뒤에 楊愼矜이 현종의 총애를 받았다. 이에 韋堅과 王鉷의 무리가 앞다투어 이익을 가지고 조정으로 진출하여, 여러 관사 가운데 권한이 있는 곳을 대상으로 차츰차츰 使職을 두어 그 업무를 관장하게 하였다.
역주
역주1 24-8-가1 : 《資治通鑑》 卷213 〈唐紀29 玄宗 中之上〉 開元 17년(729), 卷215 〈唐紀31 玄宗 中之下〉 天寶 원년(742) 기사에 보인다.
역주2 唐玄宗 : 685~762(재위 712∼756). 당나라 6대 황제 李隆基이다. 睿宗의 셋째 아들로, 712년에 예종의 양위로 즉위하였다. 재위 기간 동안 括戶 정책을 실시하여 부역에서 빠졌던 戶口를 파악하게 하였으며, 조세‧조운‧법제 등을 개혁하여 중앙 정부의 재정을 증대시켰다. 그러나 天寶 연간(742∼756)으로 접어들면서 간신들을 중용하여 국정을 그르쳤다.
역주3 : 대전본에는 ‘元’으로 되어 있으나, 宋代의 시조 趙玄郞의 피휘이다.
역주4 宇文融 : ?~731. 京兆 萬年 사람으로, 隋나라 때 禮部尙書인 昌平公 宇文㢸(우문필)의 현손이다. 명석하고 언변에 능했으며 官吏 업무에 재간이 있었다. 玄宗 때 覆田勸農使가 되어 조세와 요역에서 빠진 戶口들을 파악해 稅收를 크게 늘렸다. 또 兵部員外郞 兼 侍御史가 되어서는 수십 명의 勸農判官을 파견하여 떠돌아다니는 가호들을 모아 농사를 짓게 하였다. 이후 鴻臚卿 兼 戶部侍郞이 되고 벼슬이 同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렀으나, 말년에 탄핵을 받고 巖州로 유배를 가는 도중에 죽었다.
역주5 使 : 使職을 가리킨다. 당나라 때에는 특정 업무를 담당하는 정식 관원 이외에 다른 관원을 임시로 差任하여 파견하는 使職差遣制가 있었다. 陳仲安에 따르면, 당나라 때의 사직은 형식상 임시직의 형태를 띠고 있었으나 사실상 고정적인 관직이었으며, 특정 부문에만 두지 않고 광범위하게 사직을 두었다. 당나라의 사직차견제는 현종 때 크게 발전했는데 재정 부문에 둔 사직으로는 鹽池使, 轉運使, 勸農使, 諸色安輯戶口使, 戶口色役使, 租庸地稅使, 鑄錢使, 木炭使, 出納使 등으로 다양했다. 胡三省은, 이로 말미암아 백관들이 차츰 자신의 직분을 다하지 못하고 현종의 마음이 더욱 사치에 젖었다고 설명하였다. 《資治通鑑 卷213 唐紀29 玄宗 中之上 開元 17年 胡三省注》 《陳仲安, 唐代的使職差遣制, 武漢大學學報, 1963年 第1期, 87, 91~92쪽.》
역주6 楊愼矜 : ?~747. 唐 玄宗 때의 관료로, 隋 煬帝의 현손이자 戶部尙書로 치사한 楊隆禮의 아들이다. 사람됨이 신중하고 재간이 있었는데, 현종에 의해 監察御史로 발탁되었다. 이후 御史中丞 兼 諸道鑄錢使, 戶部侍郞 등을 역임하였다. 王鉷(왕홍)과 李林甫에 의해 隋나라를 부활시키려고 했다는 모함을 받아 사사되었다.
역주7 韋堅 : ?~747. 唐 玄宗 때의 관료이다. 자는 子全으로, 京兆 萬年 사람이다. 정부의 세수를 늘린 宇文融‧楊愼矜 등을 본받아 江淮의 조세를 많이 걷어 현종의 인정을 받았다. 이후 陝郡太守(섬군태수)‧水陸轉運使가 되자 백성들을 징발하여 天寶 원년(742)에 渭水의 漕運을 개통하였다. 그 공으로 江淮南租庸‧轉運‧處置使를 겸하였다. 후에 사이가 틀어져버린 李林甫의 모함으로 폄척과 유배를 당하고 천보 6년(747)에 피살되었다.
역주8 王鉷 : ?~752. 唐 玄宗 때의 관료로, 太原 祁(기) 사람이다. 開元 10년(722)에 鄠縣尉(호현위)가 되었으며 戶部員外郞, 戶部郎中, 戶口色役使 등을 역임하였다. 현종에게 재무 능력을 인정받은 후 戶部侍郞, 京兆尹 등을 역임하고 20여 使職을 겸임하기까지 하였다. 후에 동생 王銲(왕한)의 모반에 연루되어 賜死되었다.

대학연의(4)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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