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大學衍義(3)

대학연의(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대학연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唐高宗 義府이러니 爲長孫無忌所惡하여 奏斥壁州司馬러니
詔未下 義府 問計於舍人王德儉하니 德儉者 許敬宗이라 多智善揣事하더니
因曰 武昭儀 方有寵이라 欲立爲后호대 畏宰相議하사 未有以發之하시나니 君能建白하면 是轉禍爲福也라하여늘
義府 卽叩上表하여 請廢后立昭儀한대 帝悅하사 召見與語하사 賜珠一斛하시고 復侍하다
武后 已立 義府與敬宗等 相推轂하여 濟其姦詐하여 棄骨肉大臣이라 故后 得肆意하여 攘取威柄하니 天子러시다
義府 貌柔恭하여 與人言 嬉怡微笑而陰賊褊忌 著于心注+著, 直略反, 謂其姦惡根著于心也.이라
凡忤意者 皆中傷之하니 時號義府笑中刀라하며 又以柔而害物이라 號曰人猫라하더니 未幾注+唐宰相名也.하다
又主選事하니 無品鑑才 谿壑之欲 惟賄是利 母妻諸子 賣官市獄하니 門如沸湯하더라


19-4-가
당 고종唐 高宗이 즉위하자 이의부李義府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전직轉職되었다. 장손무기長孫無忌에게 미움을 받아서 장손무기가 그를 벽주사마壁州司馬로 폄척하도록 아뢰었다.
조명이 아직 내려지지 않았을 때, 이의부가 사인 왕덕검舍人 王德儉에게 방법을 물었다. 왕덕검은 허경종許敬宗의 생질로 꾀가 많고 사리파악에 능했다.
물음에 답하였다. “무소의武昭儀가 한창 총애를 받아서 황상께서 그녀를 세워서 황후로 삼고자 하는데, 재상들의 비판을 두려워하여 아직 이를 거론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이 건의할 수 있다면 이는 전화위복이 될 것입니다.”
이의부가 즉시 합문閤門을 두드려서 표문을 올려 왕황후를 폐출하고 무소의를 황후로 세우기를 청하자, 고종이 기뻐하여 그를 소견召見하고서 이야기를 나누고 진주珍珠 1섬을 하사하고 조정에 머물러두어 다시 입시하도록 하였다.
무후武后가 황후가 되자, 이의부李義府허경종許敬宗 등이 서로 협력하여 그 간교한 계략을 이루어 골육과 같은 대신을 축출하였다. 이 때문에 무후가 마음대로 하여 권력을 훔칠 수 있었으니 천자는 고분고분히 넘겨주었다.
이의부가 외양은 유순하고 공손하여 타인과 이야기할 적에 기쁜 낯빛으로 미소를 지었지만 음험하고 잔인하며 속 좁고 시기하는 생각이 마음속에 있었다.注+’은 ‘’과 ‘’의 반절이니, 그 간악함이 마음에 뿌리내려 붙어 있음을 이른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을 모두 남몰래 해치니 당시 사람들이 이의부를 ‘소중도笑中刀(웃음 속에 칼이 들었다.)’라고 불렀으며, 또 유순해 보이면서도 남을 해쳤기 때문에 ‘인묘人猫(사람 고양이)’라고 불렀다. 얼마 안 되어 중서시랑中書侍郞동중서문하삼품同中書門下三品에 임명되었다.注+중서시랑中書侍郞동중서문하삼품同中書門下三品’은 나라 때 재상宰相을 맡는 관직의 명칭이다.
뒤에 또 전선銓選하는 일을 주관하였는데 인재를 품평하는 재주는 없으면서 채울 수 없는 골짜기같이 깊은 탐욕은 오직 뇌물만을 이익으로 여겼기 때문에, 모친과 처와 자식들이 돈을 받고 관직을 팔거나 처벌을 면하게 해주니 그의 집 문 앞이 물 끓듯 시끌벅적했다.


역주
역주1 19-4-가 : 《新唐書》 卷223上 〈姦臣列傳 李義府〉에 보인다.
역주2 中書舍人 : 隋唐 시기에는 省名의 변화에 따라 內史舍人‧內書舍人 등으로 개칭되기도 하였다. 唐 高祖 武德 3년(620)에 다시 중서사인으로 환원되었다. 정원은 6명이며 품계는 정5품상이다. 조회를 시종하고 정무 논의에 참여했다. 황제의 조칙 초안을 작성하여 검토하고 황제의 재가를 받아 절차대로 시행하는 일을 맡았다. 또한 6명이 상서 각 부를 담당하여 表章의 상주와 검토를 진행하였다. 조칙의 작성은 현종 이후에 翰林學士가 담당하여 閑職이 되었다.
역주3 : 대전본‧사고본에는 ‘閣’으로 되어 있다.
역주4 : 대전본에는 없다.
역주5 : 대전본에는 ‘衽’으로 되어 있다.
역주6 中書侍郞 : 隋唐 시기 中書省의 次官이다. 중서령이 주로 명예직으로 바뀌면서 실질적인 중서성의 장관으로 중서성의 제반 업무를 관장하고, 아울러 기밀에 참여하고 朝政을 의결하는 재상의 지위에 있었다. 省名의 변화에 따라 內史侍郞‧內書侍郞‧西臺侍郞‧鳳閣侍郞‧紫微侍郞 등으로 개칭되기도 하였다. 정원은 2명이고 품계는 정4품이었다.
역주7 同中書門下三品 : 同東西臺三品‧同鳳閣鸞臺三品‧同紫微黃門三品이라고도 한다. 唐初에 확립된 제도에는 中書省‧門下省‧尙書省의 3성의 장관인 中書令‧侍中‧尙書左僕射‧尙書右僕射가 재상이 되었다. 다만 尙書左僕射‧尙書右僕射의 경우에는 ‘平章事’를 더하였다. 그러나 太宗 연간부터는 해당 관직을 함부로 제수하지 않고 他官에게 재상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였는데, 이때 ‘同中書門下三品’의 명호를 더하였다. 이는 중서성과 문하성의 장관인 중서령과 시중이 3품관이었기 때문으로, 자급이 3품 이하인 자에게는 同中書門下平章事를 더하였다. 貞觀 17년(643)에 太子太保 蕭瑀와 詹事 李靖에게 同中書門下三品을 제수한 것이 시초였으며, 肅宗 乾元(758~760) 연간 이후에 ‘中書門下平章事’를 통용하여 관함으로 삼으면서 同中書門下三品의 명호가 마침내 폐해졌다.

대학연의(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9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