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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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虞世基 以帝惡聞賊盜라하여 諸將及郡縣 有告敗求救者어든 世基 皆抑損表狀하여 不以實聞하고 但云
鼠竊狗盜 郡縣 捕逐하여 行當殄盡하리니 願陛下 勿以介懷하소서 良以爲然하여 或杖其使者하여 以爲妄言이라하니
由是盜賊 徧海內하여 陷沒州縣호대 帝皆弗之知也러라 破降河北賊數十萬하고 列狀以聞이어늘
帝歎曰 我 初不聞賊 頓如此러니 義臣降賊 何多也
世基 對曰 小竊 雖多 未足爲慮어니와 義臣 克之하고 擁兵不少하여 久在閫外하니 此最非宜니이다
帝曰 卿言 是也라하고 遽追義臣하고 放散其兵하니 由是復盛하니라


19-1-가5
우세기虞世基는 양제가 적도의 상황에 대해 듣기 싫어한다고 여겼다. 여러 장수와 군현郡縣이 패전을 알리고 구원을 청하는 경우가 있으면 우세기가 모두 표문의 내용을 빼버리거나 줄여서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고 다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쥐와 개가 훔치는 정도의 좀도둑들이라서 군현郡縣이 체포하고 쫓아서 장차 전부 섬멸될 것이니 폐하께서는 개의치 마십시오.” 양제가 참으로 이를 옳게 여겨서 어떤 때는 그 사자使者에게 매를 쳐서 보고 내용을 헛소리라고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도적이 해내海內에 두루 퍼져 주현州縣을 함락시키는데도 양제가 이를 전혀 알지 못하였다. 양의신楊義臣이 하북의 도적 수십만 명을 격파하여 항복시키고 전황을 열거하여 보고하자,
양제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가 애초에 도적이 이처럼 어지럽힌 것을 듣지 못했는데 양의신이 항복시킨 도적이 어찌하여 많은가?”
우세기가 대답하였다. “좀도둑들이 비록 많기는 하지만 아직 우려할 만한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양의신이 도적들을 물리쳤고 적지 않은 군대를 거느리고서 오래도록 외방에 있으니 이는 매우 온당치 않은 일입니다.”
양제가 말하기를 “경의 말이 옳다.”라고 하고 대번에 양의신을 불러들이고 그가 거느린 군대를 해산시키니 도적들이 이로 말미암아 다시 많아졌다.


역주
역주1 19-1-가5 : 《資治通鑑》 卷183 〈隋紀7 煬帝 下〉 大業 12年(616) 10월 조에 보인다.
역주2 楊義臣 : ?~617. 隋의 將領이다. 本姓은 尉遲(울지)인데, 隋 文帝에게 ‘楊氏’로 賜姓되었다. 北周 代郡 사람이다. 鮮卑族이다. 부친은 儀同大將軍 秦興縣公 尉遲崇이다. 隋 文帝 때 陝州 刺使에 제수되었다. 수차례 돌궐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文帝 仁壽 원년(601)에 朔州 總管에 제수되었다. 煬帝 大業 3년(607)에 宗正卿이 되었다가 太僕卿으로 옮겼다. 이후 양제를 수행하여 여러 차례 吐谷渾‧高句麗 정벌에 종군하였다. 대업 12년(616)에 하북의 반군 張金稱‧高士達 등을 토벌하여 격파하였다. 그러나 양제의 의심을 사서 입조하여 光祿大夫‧禮部尙書 등을 역임하고 오래지 않아 병사하였다.

대학연의(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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