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가2 《시경》 〈杕杜〉는注+‘杕杜’는 《시경》 〈晉風〉의 편명이다. 당시의 임금을 풍자한 시이다.注+晉 昭公을 풍자하였다. 임금이 자신의 종족을 친히 대하지 못하자 골육이 이반하고 흩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홀로 살며 형제가 없어서 曲沃에 병합되게 되었다는 것이다.注+‘沃’은 曲沃이다.
홀로 서 있는 팥배나무여注+‘杕’는 홀로 자라는 모습이다. ‘杜’는 赤棠(팥배나무)이다.有杕之杜
나의 동성만은 못하니라不如我同姓 라고 하였다.注+그 뒤에 昭公은 과연 晉人에게 시해되었고, 曲沃武公은 晉나라를 차지하여 제후가 되었다.
역주
역주18-7-가2 :
《詩經》 〈唐風 杕杜〉에 보인다. 모두 2장으로, 杕杜는 ‘홀로 서 있는 팥배나무’라는 뜻이다. 眞德秀는 당시 晉 昭公을 풍자한 것으로 본 毛序를 따른 반면, 朱熹는 형제가 없는 자가 스스로 그 외로움을 서글퍼하여 남에게 도움을 구하는 시로 보았다. ‘晉 昭公’은 晉 昭侯 姬伯(재위 기원전 745~기원전 739)으로, 晉나라의 12번째 임금이다. 즉위한 뒤 숙부 姬成師를 진나라의 도읍인 翼보다도 큰 曲沃에 봉하고 桓叔이라고 불렀다. 曲沃桓叔은 당시 58세로 덕을 좋아하여 晉나라 백성들 중 곡옥환숙에게 歸附하는 자가 많았다. 진 소후 7년(기원전 739)에 진나라의 대신 潘父가 소후를 죽인 뒤 곡옥환숙을 맞이하려 하였으나, 곡옥환숙은 진나라 도성에 들어가려다가 진나라 군대에 패하여 다시 곡옥으로 돌아갔다. 진나라 사람들은 소후의 아들 平(晉 孝侯)을 옹립하고 潘父를 죽였다. 그 뒤 곡옥환숙의 손자 曲沃武公(기원전 754~기원전 677), 즉 훗날의 晉 武公이 기원전 716년에 곡옥의 임금이 되었는데, 기원전 708년에 晉 哀侯를 죽이고, 기원전 705년에는 晉 小子侯를 죽였으며, 기원전 678년에는 진나라를 멸망시킨 뒤 진나라의 寶器를 周 僖王에게 뇌물로 바치고서 진나라의 임금에 봉해졌다. 《史記 卷39 晉世家》
역주11아……않는가 :
朱熹의 《詩集傳》에서는 眞德秀와 달리, “길 가는 사람들은 어찌 내가 홀로 가는 것을 가엾이 여겨 친근히 대해주지 않으며, 내가 형제가 없는 것을 불쌍히 여겨 도와주지 않느냐고 탄식한 것이다.[嗟嘆行路之人 何不閔我之獨行而見親 憐我之無兄弟而見助乎]”라는 뜻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