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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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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王之爲世子 朝於王季호대 日三이러시니 雞初鳴而衣服하사 至於寢門外하사 問內豎之御者曰 今日安否 何如注+內豎, 小臣之屬, 掌外內之通命者. 御, 如今小‧直日.
內豎曰 安이라하여든 文王 乃喜하시고 及日中하여 又至하사 亦如之하시며 及莫하여 又至하사 亦如之러시다
其有不安節則內豎 以告文王하여든 文王 色憂하사 行不能正履라가 王季 復膳然後 亦復初하더시다
食上 必在視寒煖之注+在, 察也.하시며 食下 問所膳注+問所食者.하시고 命膳宰曰 末有原注+末, 猶勿也. 原, 再也, 已進者, 勿有所再進.이라하여시든 應曰 諾然後 退하더시다
武王 帥而行之하사 不敢有加焉하더시니 文王 有疾이어시늘 武王 不說冠帶而養注+說, 與脫同.하사대
文王 一飯이어시든 亦一飯하시며 文王 再飯이어시든 亦再飯하더시니 旬有二日 乃間注+間, 猶也.하시다


7-7-가
文王이 세자로 있을 때, 王季에게 문안드리기를 하루에 세 번 하셨는데, 닭이 처음 울면 옷을 입고 침문 밖에 이르러 당직인 內豎에게 묻기를 “오늘 안부가 어떠하신가?”라고 하여,注+‘內豎’는 小臣의 등속이다. 外廷과 內廷을 다니면서 명을 전달하는 것을 맡은 자이다. ‘御’는 지금의 小吏나 直日과 같다.
내수가 “편안하십니다.”라고 대답하면, 문왕이 곧 기뻐하셨다. 한낮이 되었을 때 또 침문 밖에 이르러 역시 이와 같이 하셨으며, 날이 어두워졌을 때 또 침문 밖에 이르러 역시 이와 같이 하셨다.
음식과 체후가 편치 않을 경우에는 내수가 이를 문왕에게 고하면 문왕은 얼굴에 근심스런 기색을 띠면서 똑바로 걷지 못하다가 왕계가 평상시와 같이 회복한 뒤에야 문왕도 원래대로 회복하였다.
음식을 올릴 때에는 반드시 찬지 따뜻한지를 살피고,注+‘在’는 ‘살피다’라는 뜻이다. 음식이 물려질 때에는 드신 것을 물어보셨다.注+드신 것을 묻는 것이다. 그리고 膳宰에게 명하기를 “올렸던 음식을 거듭 올리지 말라.”라고 하셨는데,注+‘末’은 ‘勿(~하지 말라)’과 같다. ‘原’은 ‘거듭’이라는 뜻이니, ‘末有原’은 올렸던 음식을 재차 올리는 일을 못하게 한 것이다. 선재가 “예.”라고 응답한 뒤에야 물러나셨다.
무왕이 이를 그대로 따라서 행하시어 감히 이보다 더하지 못하셨다. 문왕이 병이 들자, 무왕이 관과 띠를 벗지 않고 병구완을 하셨는데,注+‘說’은 ‘脫(벗다)’과 같다.
문왕이 밥 한 술을 뜨면 자신도 밥 한 술을 뜨고, 문왕이 밥 두 술을 뜨면 자신도 밥 두 술을 떴다. 그리하여 열이틀이 되자 차도를 보였다.注+‘間’은 ‘瘳(낫다)’와 같다.


역주
역주1 7-7-가 : 《禮記》 〈文王世子〉에 보인다. 〈문왕세자〉의 편명은 처음에 “文王之爲世子”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것에서 연유한 것이다. 해당 구문은 〈문왕세자〉의 서두에 나오는 내용으로, 문왕이 王季의 세자로 있을 때의 행실 등을 서술하고 있다. 王季는 大王 古公亶父의 셋째 아들인 季歷으로, 文王 姬昌의 부친이다. 《竹書紀年》에 따르면, 계력은 재위하는 동안 餘無‧始呼‧翳徒 등 戎族을 격퇴하고 西伯이 되었으나 周나라의 강성을 견제한 殷王 文丁에 의해 죽었다. 그의 사후 西伯의 지위는 아들 昌이 계승하였다. 《史記 卷4 周本紀》
역주2 : 대전본에는 ‘史’로 되어 있다.
역주3 : 사고본에는 ‘中’으로 되어 있다.
역주4 : 대전본에는 ‘廖’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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