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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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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5-8-나2(按)
按 朱熹四端之說 蓋先儒所未發이라
至論不忍人之心則曰 天地 以生物爲心而所生之物 因各得天地生物之心하여 以爲心이라
言矣 蓋天地造 無他作爲 惟以生物 爲事하니
觀夫春夏秋冬 往古来今 生意하여 何嘗一息間斷이리오
天地之心 於此可見이라
原注
萬物之生 旣從天地生意中出이라 故物物 皆具此理하니
何況人爲最靈이니 宜乎皆有不忍人之心也로다
然人有是心而私欲 間斷이라 故不能達之於用하니
惟聖人 全體本心하여 私欲 不雜하니 故有此仁心이면 便有此仁政이라 自然流出하여 更無壅遏하나니
天下 雖大 運以此이면 而有餘矣니라
原注
恐人 未能自信也 故指發見之眞切者하여 以覺悟之하시니
夫孺子 未有所知而將入于井이어든 乍見之者 無間賢愚 皆有惻怛傷痛之心하나니
方其此心驟發之時 非欲以此納交 非欲以此 又非以避不仁之名也
倉猝之間 無安排‧無矯飾而天機自動하니 所謂
賦形爲人 孰無此心이리오
苟無此心이면人矣
所謂無者 豈其固然哉리오
私欲 蔽塞而失其本眞耳
孟子 始言惻隱之心하시고 至此 乃兼羞惡‧辭‧是非而言者 蓋仁爲衆善之長이라 有惻隱則三者 從之矣
惻隱 不存則三者 亦何有哉리오
原注
夫四肢 人所必有
四端 亦然而昧者 不察하여 自謂不能이라하니 賊其身이요
又謂吾君不能이라하니 賊其君이라
之賊이니 言爲禍害之深也
然仁‧義‧禮‧智 其分量 甚大而端緖 甚微하니 苟不推廣其端이면 則何以充滿其量이리오
必也因其發見之微하여 隨加展拓하여 使人欲으로 無所障礙而天理 得以流行하여 猶始然之火 引之而煌煌하며 始逹之泉 疏之而浩浩라사 仁‧義‧禮‧智 庶幾充滿其本然之量而不可勝用矣리라
苟惟不然하여 天理 方萌 人欲 旋窒하면 乍然者而方逹者 隨堙이라
欲愈蔽而端愈微 雖有不忍人之心이나 必無不忍人之政矣리이다
原注
夫四端 在人 一也
充之則足以保四海 不充則不足以事父母
是以 帝王之治 하여 어늘 而後之人主 或以天下之大而不悅其親之心하고 或以邇聲色‧信讒邪而至於黜其配‧殺其子하니 同此四端也로되 充與不充而已耳
此章之要識本心之正하여 加推廣之功이니 至於保四海則自然之效驗也
四端之論 雖首唱於孟子하나 而條貫統紀則至朱熹而大明하니 聖明 優游玩索而力行之하시면
則天下 幸甚하리이다


原注
5-8-나2(按)
【臣按】 朱熹의 四端에 관한 설은 先儒들이 미처 發明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논할 때에는 “천지가 萬物을 낳는 것을 마음으로 삼으니, 태어나는 만물이 이로 인해 제각기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을 얻어서 마음으로 삼는다.
이 때문에 孟子가 ‘사람들이 모두 다른 사람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지극한 말입니다.
천지의 조화는 별다른 작위가 없고 오직 만물을 낳는 것을 일로 삼습니다.
살펴보면 봄‧여름‧가을‧겨울이 예로부터 지금까지 ‘낳는 뜻[生意]’이 유행하여 어찌 일찍이 잠시라도 끊어진 적이 있었습니까.
천지의 마음을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原注
만물의 태어남이 이미 천지의 ‘낳는 뜻[生意]’ 속에서 나왔기 때문에 物마다 모두 이러한 이치를 구비하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사람은 가장 靈妙한 존재이니 모두 다른 사람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 마음을 가졌어도 私欲이 끊어버리기 때문에 用에 이 마음을 두루 운용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인만이 全體가 본연의 마음이어서 사욕이 뒤섞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 仁心을 가지면 곧 그에 상응하는 仁政이 있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흘러 나와 더 이상 막힘이 없는 것입니다.
천하가 비록 크지만, 이 마음을 가지고 운용하면 운용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原注
孟子는 사람들이 스스로 믿지 못할까 염려되었기 때문에 본성이 발현된 것 가운데 참되고 비근한 것을 가리켜 일깨워준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아직 지각이 없어서 우물에 들어가려고 하면, 순간 이를 본 사람은 어진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모두 가엾게 여기고 슬퍼하는 마음이 드는 법입니다.
막 이러한 마음이 갑자기 발현될 때에는 이를 구실로 교분을 맺고자 해서도 아니고, 이를 구실로 명예를 구하고자 해서도 아니고, 또 어질지 않다는 汚名을 피하고자 해서도 아닙니다.
창졸간에 계산하는 것도 없고 꾸미는 것도 없이 타고난 본성이 저절로 발동한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참마음[眞心]’이라는 것입니다.
형체를 부여받아 사람이 됨에 누군들 이 마음이 없겠습니까.
만일 이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른바 ‘없다[無]’라는 것이 어찌 본디 그러한 것이겠습니까.
사욕이 가리고 막아서 그 본연의 참마음을 잃은 것일 뿐입니다.
맹자가 처음에는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말하고, 여기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不善을 부끄럽게 여기고 미워하는 마음, 사양하고 공경하는 마음, 옳음과 그름을 가리는 마음을 겸하여 말한 것은, 아마도 仁이 뭇 善의 으뜸이 되므로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있으면 나머지 세 가지 마음은 뒤따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있지 않으면 세 가지 마음이 또한 어찌 있겠습니까.
原注
무릇 四肢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四端도 역시 그러한 데 사리에 어두운 자는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서 스스로 ‘할 수 없다.’라고 하니, 이는 자기 자신을 해치는 것입니다.
또 ‘우리 임금은 할 수 없다.’라고 하니, 이는 자신의 임금을 해치는 것입니다.
‘賊’은 ‘賊仁(인을 해침)’ 또는 ‘賊義(의를 해침)’의 ‘賊’과 같으니, 禍가 심함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仁‧義‧禮‧智가 그 분량은 매우 크지만 단서는 매우 미미하니, 만일 그 단서를 미루어 넓혀나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분량을 가득 채우겠습니까.
반드시 그 미미한 발현을 계기로 따라서 더욱 확충하여, 人欲이 막는 것이 없고 천리가 유행할 수 있도록 하여, 마치 처음 타오르는 불을 당겨 밝게 타오르게 하듯 하며, 처음 솟아나오는 샘물을 잘 흐르게 하여 넓게 흐르게 하듯 해야만 仁‧義‧禮‧智가 거의 그 본연의 분량을 가득 채워 이루 다 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아 천리가 막 움틀 때 人欲이 바로 막는다면 이는 막 타오르는 불이 대번에 꺼지며 막 솟아나오는 샘물이 바로 막히는 것과 같이 될 것입니다.
인욕이 가리면 가릴수록 단서가 더욱 미미해지니, 비록 다른 사람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政事가 없게 될 것입니다.
原注
四端은 사람에게 있어서도 똑같습니다.
이를 확충하면 사해를 보전할 수 있고 확충하지 않으면 부모도 섬길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역대 聖王의 치세는 빛나게 천하를 안정시켜서 德이 백성들에게 크게 입혀져 바닷가까지 미쳤는데, 후세의 임금은 혹은 광대한 천하를 가지고도 그 어버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못하고, 혹은 음란한 음악과 아름다운 여색을 가까이하거나 참소하고 사특한 신하를 신임하여, 그 배필을 내쫒고 그 자식을 죽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이 四端을 가진 것은 똑같지만 단지 확충하였는가 확충하지 못하였는가에 따라 다르게 된 것입니다.
이 장의 요지는 본심의 바름을 알아서 확충하는 공부를 더하는 데 있으니, 사해를 보전하는 일로 말하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결과입니다.
四端論이 비록 孟子에게서 처음 주창되었지만 이것을 체계화한 것은 朱熹에 이르러서 크게 밝아졌으니, 바라건대 聖明한 皇上께서는 깊이 침잠하여 완색해서 힘써 행하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천하 사람들에게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역주
역주1 天地……心也 : 《孟子集註》 〈公孫丑 上〉 제6장에 보인다.
역주2 : 대전본에는 ‘物’로 되어 있다.
역주3 流行 : 대전본에는 ‘周流’로 되어 있다.
역주4 : 사고본에는 ‘仁’으로 되어 있다.
역주5 : 대전본에는 ‘人’으로 되어 있다.
역주6 : 대전본에는 ‘于’로 되어 있다.
역주7 眞心 : 《孟子集註》 〈公孫丑 上〉 제6장 朱熹의 注에 인용된 謝良佐의 말에 보인다. 사양좌는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보았을 때 깜짝 놀라는 것이 바로 참마음[眞心]이며, 이는 天理에 있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하였다.
역주8 : 대전본에는 ‘無’로 되어 있다.
역주9 : 사고본에는 이 뒤에 ‘則’이 있다.
역주10 : 대전본에는 ‘遜’으로 되어 있으나, 宋代의 피휘이다.
역주11 賊仁賊義 : 《孟子》 〈梁惠王 下〉 제8장에 보인다.
역주12 : 대전본‧사고본에는 ‘息’으로 되어 있다.
역주13 光宅天下 : 《書經》 〈虞書 堯典〉의 小序에 보인다.
역주14 丕冒海隅 : 《서경》 〈周書 君奭〉에 보인다.
역주15 : 사고본에는 이 뒤에 ‘以’가 있다.
역주16 : 대전본에는 ‘乎’로 되어 있다.
역주17 : 사고본에는 없다.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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