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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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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5-13-나(按)
按 良 謂本然之善也 善出於性이라
故有本然之能 不待學而能이요 本然之知 不待慮而知
觀人之幼而愛親‧長而敬兄則可知矣
親親之心 逹之天下하니 卽所謂仁이요 敬長之心 逹之天下하니 卽所謂義
然則仁義 豈出於孝弟之外哉리오
斯理也 孟子 蓋屢言之하시니 其爲天下後世慮者 切矣로소이다
原注
以上 論天性人之善하니라
原注
或謂以此 爲人君致知之首 何也
人君之於道 所當知者 非一而性善 尤其最焉이니
蓋不知己性之善則無以知己之可爲堯‧舜이요 不知人性之善則無以知人之可爲堯‧舜이라
故孟子 於滕世子之見‧曹交之問 皆以是告焉하시니
庶幾其道 得行하여 使君爲堯‧舜之君이요 民爲堯‧舜之民也어늘
不幸邪說 하고 正理衰熄하여 當時之君 無能尊信其言者러니
未幾而荀卿氏하여 爲性惡之說이어늘 於是 李斯 本之以相秦注+斯, 荀卿弟子.하여 剗滅先王之禮敎하고 一以嚴法峻刑으로 毒天下하니 由其以人性爲惡故也
片言之誤 流禍至此하니 豈不哀哉리오
原注
或謂性固어니와 然求之天下 其能爲善者 無幾 何也
氣質之異而非性之罪也
先儒張載 嘗言之矣이라하니
蓋天之所以與人者 莫非純粹至善之理 所謂天地之性也
人之受之則所値之氣 不同하여 或淸而純하며 或濁而雜이라 故其性 亦隨而異하니
所謂氣質之性也
原注
天地之性則無不善이요 氣質之性則有善‧有不善焉하니
然苟有以反之則雖不善者 可復而善이니
然則反之之道 奈何
曰由治己而言則有學이요 由治人而言則有敎
閑邪誠‧克己復禮 治己之學也 學之功 至則己之善 可復矣
道徳齊禮‧明倫正俗 治人之敎也 敎之功 至則人之善 可復矣
若夫以己之性으로 爲不善而不以聖人之道 治其身이면 自暴者也 以人之性으로 爲不善而不以聖人之道 治其民이면 暴天下者也
故繫其說如此하노니 惟聖明 하소서


原注
5-13-나(按)
【臣按】 ‘良’은 본연의 善을 말하니, 善은 본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연의 능함이 있어서 굳이 배우지 않고서도 능한 것이며, 본연의 앎이 있어서 굳이 생각하지 않고서도 아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 어려서는 부모를 사랑하고 장성해서는 형을 공경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모를 친애하는 마음은 온 천하 사람들에게 공통된 것이니 바로 ‘仁’이라는 것이며, 연장자를 공경하는 마음은 온 천하 사람들에게 공통된 것이니 바로 ‘義’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仁과 義가 어찌 효와 공경 밖을 벗어나는 것이겠습니까.
이 이치를 孟子께서 누차 언급하셨으니, 천하와 후세를 위해 생각하신 것이 참으로 절실합니다.
原注
이상은 천성天性인심人心의 선함을 논한 것이다.
原注
혹 “천성天性인심人心의 선함을 가지고 임금이 지성知性의 힘을 극대화하는 첫 번째 일로 삼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하신다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임금이 도에 있어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한둘이 아니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은 그중에서도 더더욱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자신이 임금이나 임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길이 없고, 다른 사람들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요임금이나 순임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길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맹자孟子나라 세자를 만났을 때나 조교曹交가 물었을 때 모두 이것을 가지고 일러준 것입니다.
이는 그 도가 행해져서 임금은 요임금이나 순임금과 같은 임금이 되게 하고 백성은 요임금이나 순임금의 백성과 같은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을 바란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설邪說이 난무하고 정도正道가 무너져서 당시 임금 중에 그 말을 존숭하고 믿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뒤에 순경씨荀卿氏(荀子)가 나와 본성이 악하다는 설을 처음으로 주장하였는데, 이에 이사李斯가 이 설을 기반으로 나라의 재상이 되어서는注+이사李斯’는 순경荀卿의 제자이다.선왕先王예교禮敎를 모두 없애고 한결같이 엄격한 과 준엄한 형벌刑罰로 천하에 해독을 끼쳤으니, 이는 사람의 본성을 악한 것으로 여긴 데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잘못된 짧은 말 한마디로 인해 파급된 화가 이러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原注
또 혹 “본성은 원래 선하다 하지만 천하에서 찾아보아도 능히 선을 행하는 자가 얼마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하신다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이것은 기질이 달라서이지 본성의 탓은 아닙니다.
선유先儒 장재張載는 일찍이 이에 대해 “형체가 있은 뒤에 기질氣質이 있으니, 이를 잘 회복하면 천지天地이 그대로 보존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것이 순수하고 지극히 선한 이치 아닌 것이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천지의 성[天地之性]’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 천지의 성을 받을 때 이를 받는 사람의 가 저마다 달라서, 어떤 사람의 기는 맑고 순수하며 어떤 사람의 기는 탁하고 잡박하기 때문에 그 천지의 성도 사람의 기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이것이 이른바 ‘기질의 성[氣質之性]’이라는 것입니다.
原注
천지의 성은 선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기질의 성은 선한 것도 있고 선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이를 회복하면 비록 선하지 않은 것이라도 회복시켜 선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회복시키는 방도는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을 다스리는 입장에서 말하면 ‘배움’이라는 방도가 있으며,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입장에서 말하면 ‘가르침’이라는 방도가 있습니다.
를 막고 을 보존하는 것’과 ‘사욕을 이겨 로 돌아가는 것’은 ‘자신을 다스리는 배움’이니, 배움의 공이 지극해지면 자신의 선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으로 인도하고 로 가지런히 하는 것’과 ‘오륜五倫을 밝히고 풍속風俗을 바르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가르침’이니, 가르침의 공이 지극해지면 다른 사람의 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자신의 본성을 선하지 않다고 여겨 성인聖人로 자신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이는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본성을 선하지 않다고 여겨 성인聖人의 도로 자신의 백성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이는 천하를 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을 이와 같이 연계시킨 것이니, 부디 성명聖明한 황상께서는 깊이 힘쓰소서.


역주
역주1 : 대전본에는 없다.
역주2 : 대전본‧사고본에는 ‘放’으로 되어 있다.
역주3 : 대전본‧사고본에는 ‘則’으로 되어 있다.
역주4 : 사고본에는 ‘然’으로 되어 있다.
역주5 形而……存焉 : 張載의 《正蒙》 〈誠明篇〉과 《孟子集註》 〈告子 上〉 제6장의 朱熹 注에 보인다.
역주6 : 저본에는 없으나, 510본‧대전본‧사고본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7 深勉 : 대전본‧사고본에는 ‘詳玩’으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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