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15-5-나(안按)
[신안臣按] 이는 재여宰予가 낮잠을 잔 것을 계기로 말한 것입니다. 재여의 됨됨이는, 말은 잘하지만 행실은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공자가 스스로 “처음에는 남의 말을 듣고서 곧 그의 행실을 믿었는데, 이제는 남의 말을 듣고서 반드시 그의 행실을 살펴보게 되었으니 재여로 인하여 이 잘못을 고치게 되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도 “말을 기준으로 사람을 취하면 재여 같은 경우에서 잘못하게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공자가 문인門人 중에서도 뛰어난 제자에 대해서는 조석으로 함께 거처하였으니 그들의 바름과 간특함, 어질고 어질지 못함이 어찌 성인聖人의 눈을 피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반드시 그 행실을 살펴본 뒤에 참과 거짓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존귀한 임금이 그 신하들과 만나는 것은 본래 정해진 때가 있는데 한번 응대하는 잠깐 사이에 신하들의 마음을 살펴보아 알고자 하니 또한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치적治績을 아뢰는 것은 반드시 말로 하고 명확하게 상고하는 것은 반드시 공적으로 하는 것은 요堯임금과 순舜임금 이래로 불변의 법입니다.
생황의 혀처럼 교묘한 말은 시인詩人이 풍자하였고 말 잘하는 입이 나라를 전복시키는 것은 성인聖人이 미워한 것이니, 훌륭한 말을 하는 자가 반드시 덕이 있는 것은 아니며 말재주 있는 자가 인仁한지는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原注
그러므로
한 문제漢 文帝가
색부嗇夫의 대답에 기뻐하여
상림령上林令에 제수하자,
장석지張釋之가 간쟁하기를 “
강후絳侯와
注+‘강후絳侯’는 주발周勃이다. 동양후東陽侯는
注+‘동양후東陽侯’는 장상여張相如이다. 장자長者로 일컬어졌지만 이 두 사람은 일을 말할 때 일찍이 제대로 말하지 못했으니,
어찌 재잘거리며 말 잘하는 이 색부를 본받게 하십니까. 지금 그의 말재주 때문에 등급을 뛰어넘어 승진시키시니 신은 천하 사람들이 바람에 따라 쏠리듯 다투어 본받을까 염려됩니다.”라고 하니 문제文帝가 마침내 중지시켰습니다.
이 당시에 장상將相 등 대신들이 모두 문식文飾이 적고 질박함이 많아서 의론議論은 진실하고 순후한 데 힘썼고 남의 과실을 말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마침내 순후한 풍속을 이루었습니다.
그 뒤 한 무제漢 武帝가 강충江充에 대해서, 당 문종唐 文宗이 이훈李訓에 대해서 그들이 모두 응대應對가 민첩하다는 것으로 기뻐하여 신임해서 무고巫蠱의 화禍와 감로甘露의 화가 거의 나라가 망하는 데까지 이르게 하였습니다.
신이 이 때문에 재여의 일을 통해 이를 언급하여 말을 듣고 행실을 살피라는 가르침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