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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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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6-8-나(按)
6-8-나(按)
按 程頤之傳 以爲子幹父蠱之道 能堪其事則爲有子而其考 得無咎 不然則爲父之累
【臣按】 程頤의 傳에 이르기를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주관하는 방도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으면 훌륭한 아들을 둔 것이 되어 아버지에게 허물이 없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누가 된다.
故必惕厲則得終吉이라하니
그러므로 반드시 두려워하고 조심하면 끝내 길함을 얻게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謂易雖通言人子之道 其在王者承祖考之業則幹蠱之尤大者也
신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周易》에서 비록 자식의 도리를 통틀어서 말하기는 하였으나 왕에게 있어 祖考의 業을 계승하는 것은 일을 주관하는 것 중에서도 더욱 큰 것입니다.
苟或忘敬畏之心而萌嫚易之志 其終凶 可知矣
참으로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잊어서 혹여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마음이 싹튼다면 끝내 흉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若唐之 始初淸明하여 中興帝業하니 祖考 有光焉이러니
唐나라의 玄宗과 憲宗이 즉위한 초기에는 정사에 법도와 조리가 있어 제왕의 업을 중흥하니 祖考가 이에 빛나게 되었습니다.
其後 志驕以怠하여 浸弗克終則反吉而爲凶矣
그러나 그 뒤에 뜻이 교만해지고 태만해져서 차츰차츰 이에 젖어들어 좋은 결말을 맺지 못하였으니, 길함을 뒤집어서 흉함으로 만든 것입니다.
吉凶之分 由敬嫚之異 其可忽哉잇가
길함과 흉함의 나뉨이 공경과 교만의 다름으로 말미암으니,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역주
역주1 玄宗 : 唐나라 제6대 황제 李隆基(685~762, 재위 712~756)를 이른다. 시호가 ‘至道大聖大明孝皇帝’이기 때문에 ‘唐明皇’이라고도 한다. 현종이 즉위한 전반기는 治世를 구가한 시기였기 때문에 그 연호인 開元(712~741)을 따서 ‘開元盛世’ 또는 ‘開元之治’라고 부른다. 그러나 재위 후반에 楊貴妃를 총애하고 국정을 소홀히 하면서 安史의 난이 발생하였는데, 후에 太上皇으로 퇴위하여 쓸쓸한 여생을 보냈다.
역주2 憲宗 : 唐나라 제10대 황제 李純(778~820, 재위 805~820)을 이른다. 처음 즉위하여서는 현자를 중용하고 弊政을 개혁하는 등 정사에 힘써 중흥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 연호인 ‘元和’를 따서 이 기간을 ‘元和中興’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재위 후반에 佛敎에 빠져 결국 환관 陳弘志 등에 의해 시해되었으며, 이후로 당나라는 환관이 실권을 잡기 시작하였다.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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