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16-10-나(안按)
[신안臣按] 이덕유가 문종조文宗朝에 이종민李宗閔과 번갈아 재상이 되었는데 이덕유가 마침내 이종민에 의해 기울어졌으니 문종이 간사함과 올바름을 분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종武宗 때 재상이 되어서는 이 두 가지의 분변을 심도 있게 아뢰어 무종이 들어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덕유가 자신의 충성스러운 계책을 아뢸 수 있어서 회창會昌 연간(841~846)의 업적이 원화元和 연간(806~820)에 가까웠으니, 무종이 그 간사함과 올바름을 분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덕유가 군자와 소인을 송백松栢과 등라藤蘿에 비유하여 분변했던 것이 좋은 비유입니다. 올바른 사람은 올곧은 방법으로 스스로 이끌어 비록 임금에게라도 환심을 사는 것이 없는데 하물며 다른 것에 기대어 조정에 나오려고 하겠습니까.
간사한 사람은 간사한 방법으로 영합하기를 추구하므로 권신權臣이 권세를 휘두르면 권신에게 붙고 근신近臣이 득세하면 근신에게 붙으며 비빈妃嬪이 총애를 받으면 비빈에게 붙어,
비루하고 천박하여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이덕유의 이 말에서 올바름과 간악함의 정상을 판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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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의 명신 장준張浚이 또 이를 미루어 확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제 자신을 사사롭게 여기지 않아 개연慨然하게 천하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 사람은 군자이며,
제 자신을 도모하는 계책은 매우 치밀하지만 천하 백성의 이해를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은 소인입니다.
도道를 행하는 데에 뜻이 있어 명성을 추구하지 않지만 명성이 저절로 따르는 사람은 군자이며,
이익을 도모하는 데에 뜻이 있어 거짓 명성을 훔치고 허명虛名을 꾀하는 사람은 소인입니다.
그 말이 강정剛正하여 흔들리지 않아 아부하고 굴종하는 바가 없는 사람은 군자이며,
말이 부드럽고 알랑거려 임금의 뜻을 표정과 안색에서 살살 엿보는 사람은 소인입니다.
남의 선을 말하기 좋아하고 남의 악을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군자이며,
남이 선을 행하면 기어이 드러나기 전에 공격하여 덮어버리고 남이 잘못을 저지르면 마치 큰 보배라도 얻은 것처럼 기뻐하고 득의양양하여 두루 끌어들이고 샅샅이 짜 맞추어 기어이 임금 앞에서 떠벌리고자 하는 사람은 소인입니다.
조정에 출사出仕하기를 어려워하고 조정에서 물러나기를 쉽게 여기는 사람은 군자이며, 작록爵祿을 탐내고 염치를 모르는 사람은 소인입니다.
신이 일찍이 이러한 기준으로 탐구해보니 군자와 소인의 구분을 거의 대체로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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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임금이 신하들의 간사함과 올바름을 알고자 할 경우 오로지 이덕유와 장준의 말을 참조하여 살펴보면 또한 변별하기 어려울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덕유가 말한 “간사한 사람은 경쟁적으로 붕당을 만든다.”라고 한 것은, 유독 군자에게 동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붕당을 짓는다고 소인을 비판하면 소인 또한 장차 붕당을 짓는다고 나를 비판할 것이니,
반드시 배도가 “군자의 무리는 덕을 함께하고 소인의 무리는 악을 함께한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해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이덕유가 배도에 미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