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臣
은 按 范祖禹
가 曰 太宗
이 不以生日宴樂
은 以爲父母劬勞之日也
라 等
이 以人主生日
로 爲節
하고 又移社以就之
하니
夫節者는 陰陽氣至之候라 不可爲也요 社者는 國之大祀라 不可移也니
明皇
이 享國旣久
에 驕心
이 寖生
이어늘 乾曜‧
이 不能以義正君
하여 每爲諂
하여 以
迎之
하니 其得爲名臣乎
아하니
臣은 謂太宗之思親은 發於眞誠하니 至今讀者가 猶爲之感愴하고
明皇君臣은 上驕下諂하여 大陳燕享하고 創立節名이어늘 後世가 沿循하여 遂成故典하니
臣子
가 以此爲尊其君
이 固已
矣
요 人主
가 亦從而忘其親
하니 其可乎哉
아
近代以來에 士大夫가 又以其尊君者而尊用事之臣하여 餽遺之珍과 歌頌之侈가 視人主之生日에 殆遠過焉하니 又何義也요
法太宗之誠하고 監開元之失而杜人臣交私黷貨之源은 其必自聖君始니이다
原注
7-9-나(按)
[臣按] 范祖禹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太宗이 생일이라고 하여 잔치를 벌여 즐거워하지 않는 것은 부모께서 고생하신 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源乾曜 등이 임금의 생일을 節日로 만들고 社제사 날을 이날로 옮겼다.
무릇 ‘節’이라는 것은 음기와 양기가 지극한 절후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이고, ‘社’라는 것은 나라의 큰 제사이기 때문에 옮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명황이 제위에 있은 지 오래되자 교만한 마음이 차츰 생겨났는데, 원건요와 張說이 義를 들어 군주를 바로잡지는 못하고서 매번 그때마다 아첨하여 영합하였으니 명신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신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태종이 부모를 그리는 것은 참된 마음에서 발로하였으니 지금까지도 독자가 여전히 이 때문에 슬퍼합니다.
명황의 군신은 윗사람은 교만하고 아랫사람은 아첨해서 크게 연향을 벌이고 ‘節日’이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후대 사람들이 이를 그대로 따라서 마침내 오랜 법도가 되었습니다.
신하가 이런 식으로 그 임금을 높인 것은 참으로 이미 지엽적인 일이고 임금도 따라서 자신의 부모를 잊었으니,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근세 이래에 사대부가 또 그 임금을 높이는 방법을 가지고 권력을 휘두르는 신하를 높여서 도에 넘치는 선물과 분에 넘치는 찬양이 임금의 생일에 견주어도 매우 크게 지나치니 또 무슨 의리입니까?
태종의 성심을 본받고 현종의 잘못을 거울삼아 신하 된 자가 사적으로 사귀어 뇌물을 주고받는 근원을 막는 것은 아마도 반드시 성군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