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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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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19-8-나(按)
嘗與으로 約共爭事하여 至上前而 背之어늘
19-8-나(按)
[臣按] 汲黯이 일찍이 公孫弘과 더불어 함께 사안을 간쟁하기로 약속하고서 무제의 앞에 나아갔는데 공손홍이 약속을 어기자 급암은 공손홍이 속이려는 마음을 품고서 겉으로는 아첨하는 것을 배척하였습니다.
斥其懷詐面諛하니 林甫之背九齡 亦猶之背黯也 故黯‧九齡 坐是廢斥而與林甫 皆得志而柄任焉하니
李林甫가 張九齡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 또한 공손홍이 급암과의 약속을 어긴 것과 같습니다. 이 때문에 급암과 장구령은 이로 인하여 파출되어 물러났고, 공손홍과 이임보는 모두 뜻을 얻어 요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其曰 天子用人何不可者 亦猶前所謂天子家事外人何與 凡皆導人主以自專而勿䘏人言也
이임보가 “천자가 인재를 임용하는 데 안될 것이 어찌 있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은 또한 그가 과거에 이른바 “천자의 집안일에 외부사람이 왜 관여하는가.”라고 말한 것과 같으니 모두 임금이 자기 멋대로 하고 남의 말을 돌아보지 말도록 인도한 것입니다.
夫用人得失 治亂所關이라而失이어든 大臣 所當正救
무릇 인재를 임용하는 데 잘하고 잘못하는 것은 나라의 治亂과 관계됩니다. 불행히도 잘못하게 되면 대신이 올바르게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而謂惟其所用이요 卽無不可則前古帝王 何不每事自用而乃置諫爭輔弼之臣하여 以自繩約邪리오
그런데도 “군주가 마음대로 등용하는 것이고 곧 불가한 것이 없다.”라고 말하였으니, 고대의 聖王들이 어찌하여 매사를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고 마침내 간쟁하고 보필하는 신하를 두어 스스로 검속하였겠습니까?
自昔小人 順承其主則曰 天子所爲 何所不可리오하며 激怒其主則曰 貴爲天子하여 不得自由라하니
예로부터 소인이 자신의 군주를 순종하여 받들 때에는 “천자가 행하는 데 안될 것이 뭐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며, 자기 군주의 화를 돋울 때에는 “존귀하기로는 천자가 되어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라고 하였습니다.
凡若是者 皆伐國之戈矛而迷主之酖毒也 故林甫之言 入而九齡하고 九齡 罷而治亂하니 其效 蓋可覩矣로소이다
무릇 이와 같은 자는 모두 나라를 해치는 무기이자 임금을 미혹시키는 독입니다. 그러므로 이임보의 말이 받아들여지자 장구령이 파직되었고 장구령이 파직되자 치란이 이에 갈리게 되었으니 그 증험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역주
역주1 汲黯 : 대전본에는 雙行小字로 되어 있다. 기원전 ?~기원전 112?. 자는 長孺다. 西漢 濮陽 사람이다. 景帝 연간에 蔭補로 太子洗馬가 되었다. 武帝 때 謁者, 東海 太守, 主爵都尉 등을 역임하였다. 충간을 좋아하고 廷諍을 거침없이 제기했다. 무제는 그를 ‘社稷之臣’이라고 칭찬했다. 또 흉노와의 화친을 주장하고 전쟁은 반대했다. 승상 張湯과 御史大夫 公孫弘 등을 佞巧之徒로 비난했다. 또 黃老之道와 無爲之治를 주장하며 武帝에게 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에 연루되어 면직되었다가 다시 淮陽 太守가 되었는데 재직 중에 죽었다.
역주2 公孫弘 : 기원전 200~기원전 121. 자는 季 또는 次卿이다. 西漢 菑川 薛縣 사람이다. 일찍이 薛縣의 獄吏가 되었으나 죄를 범하여 면직되었다. 40세가 넘어 胡毋生에게 《春秋公羊傳》을 전수받았다. 武帝 建元 원년(기원전 140)에 賢良에 추천되어 博士가 되었으나 匈奴에 사신으로 다녀와 복명한 것이 무제의 노여움을 사 관직에서 물러났다. 다시 元光 5년(기원전 130) 賢良對策으로 박사가 되었고 左內史가 되었다. 元朔 3년(기원전 126)에 御史大夫가 되었고 元朔 5년(기원전 124)에 丞相이 되었다. 평소 무제의 뜻을 살펴 의사를 표현하고 실마리를 진술하여 무제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였으며 의견이 다른 사람과도 논쟁을 벌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급암 등과 어떤 사안을 함께 건의하기로 하고서도 약속을 저버리고 황제의 뜻에 따라 급암의 비판을 받았다. 또 남을 시기하고 의심이 많아 主父偃을 죽이고 董仲舒를 쫓아내기도 하였다. 元狩 1년(기원전 122)에 淮南王과 衡山王이 반란을 일으키자, 사직을 청하였으나 유임되었다. 이듬해 병사하였다.
역주3 : 대전본에는 ‘洪’으로 되어 있으나, 宋代의 피휘이다.
역주4 : 대전본에는 ‘洪’으로 되어 있으나, 宋代의 피휘이다.
역주5 : 대전본에는 ‘洪’으로 되어 있으나, 宋代의 피휘이다.
역주6 : 사고본에는 ‘得’으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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