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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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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論曰 人君之德 莫大於至明하니 至明以照姦則百邪 不能蔽矣 漢昭帝是也
16-6-나1(李)
唐나라의 李德裕가 다음과 같이 논하였습니다. “임금의 덕은 지극히 명철한 것보다 큰 것이 없다. 지극한 명철함으로 간악함을 살피면 온갖 사악함이 은폐될 수 없을 것이니 漢 昭帝의 경우가 그렇다.
周成王 有慙德矣로다 成王 聞管‧流言하고 使周公而東하니
周 成王은 부끄러운 덕이 있었다. 성왕이 管叔과 蔡叔의 유언비어를 듣고 周公을 진퇴양난에 빠뜨려 동쪽으로 가게 하였으니,
所謂 使昭帝得伊‧呂之佐則成‧康 不足侔矣니라
이른바 ‘의심하는 마음을 가지면 헐뜯는 말을 부른다.’라는 것이다. 만약 소제가 伊尹이나 呂望(姜太公)과 같은 이의 보좌를 받았다면 성왕과 康王에 비견되는 수준 이상이었을 것이다.”
역주
역주1 16-6-나1(李) : 李德裕의 《會昌一品集》 〈外集〉 卷1 〈漢昭論〉에 보인다.
역주2 李德裕 : 787~850. 자는 文饒로 趙郡 사람이다. 御史大夫를 지낸 李栖筠의 손자이자 재상을 지낸 李吉甫의 아들이다. 德宗 貞元 14년(798)에 監察御史가 된 이후 翰林學士‧屯田員外郞‧中書舍人 등을 역임하였다. 文宗 大和 7년(833)에 兵部 尙書‧同中書門下平章事가 되고 贊皇伯에 봉해졌는데 이듬해에 興元 節度使로 나갔다. 開成 5년(840)에 武宗이 즉위하자 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가 되었으며, 會昌 원년(841)에 尙書左僕射를 겸하고 4년 후에 衛國公에 進封되었다. 宣宗이 즉위하자 牛僧孺‧李宗閔이 이끄는 牛黨이 득세하면서 東都 留守로 나갔다가 大中 2년(848)에 崔州 司戶로 폄적된 후 최주에서 죽었다. 저서에 《會昌一品集》이 있다.
역주3 : 대전본에는 ‘叔’으로 되어 있다.
역주4 狼跋 : 곤경에 처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 〈豳風 狼跋〉에 “이리가 앞으로 나아가자니 턱살이 밟히고 뒤로 물러나자니 꼬리가 밟히네.[狼跋其胡 載疐其尾]”라는 내용이 보인다. 朱熹의 《詩集傳》에 따르면, 〈狼跋〉은 周公이 비방과 의심을 받았음에도 떳떳함을 잃지 않은 것을 찬미한 시이다.
역주5 執狐……之口 : 《漢書》 卷36 〈楚元王傳〉에 보인다.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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