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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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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異 以廉直으로 至九卿이러니 與御史大夫張湯으로하고 問異한대
異曰 以蒼璧하나니 直數千이요이니 本末 不相稱이로소이다 天子 不悅하시고
又與有隙이러니 及人 有告異以它議어늘 事下湯治하니 與客語할새 語初令下 有不便者어늘
不應하고 微反脣이러니 奏當호대 九卿으로 見令不便하고 不入言而腹非注+非, 謂非毁時政也.라하여 論死하니
自是後注+比, 則例也, 言自是遂爲例也. 而公卿大夫 多諂取容矣러라


22-11-가
한 무제漢 武帝안이顔異가 청렴하고 정직하다는 이유로 구경九卿의 반열에 올랐다. 무제가 어사대부 장탕御史大夫 張湯과 함께 백록피폐白鹿皮幣를 만들고 안이에게 물었는데,
안이가 아뢰었다. “지금 제후왕諸侯王들이 입조하여 하례할 때 창벽蒼璧을 쓰고 있습니다. 창벽의 값은 수천 이고 피폐皮幣 깔개는 도리어 40만 전이나 되니, 본말이 서로 걸맞지 않습니다.” 무제가 기뻐하지 않았다.
장탕이 또 안이와 사이가 안 좋았다. 어떤 사람이 안이를 다른 안건으로 고발하자 무제는 이 사안을 장탕에게 내려 처결하게 하였다. 안이가 손님과 이야기를 할 때, 손님이 말하기를 “처음에 법령이 하달되었을 때 온당치 못한 데가 있었다.”라고 하자,
안이는 대답하지 않고 입술을 약간 들썩였다. 장탕이 안이의 죄를 판결한 내용을 상주하되, 안이가 구경의 반열에 있으면서 법령이 온당치 못한 것을 보고는 들어와서 말하지 않고 속으로 비방하였다고 하여注+’는 당대의 정치를 비방하는 것을 말한다. 사형으로 논죄하였다.
이 이후로 속으로 비방하는 것에 대한 판례가 생겼으므로注+’는 판례이니, ‘자시후 유복비지법비自是後 有腹非之法比’는 이로부터 마침내 판례가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공경대부公卿大夫들이 아유구용阿諛苟容(아유구용)하는 자가 많아졌다.


역주
역주1 22-11-가 : 《資治通鑑》 卷20 〈漢紀12 武帝 中之下〉 元狩 6년(기원전 117) 조에 보인다.
역주2 漢武帝 : 기원전 156~기원전 87(재위 기원전 141~기원전 87). 前漢의 황제 劉徹로, 景帝의 아들이다. 즉위한 후 제후왕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유학만을 존숭하는 등의 기조를 펴 중앙 집권을 강화하였다. 또 鹽鐵을 전매하고 均輸法, 平準法, 告緡令(고민령) 등을 시행하였으며, 算緡錢을 징수하고 五銖錢을 발행하는 등의 정책으로 중앙 정부의 재정을 증대시켰다. 그러나 대외 정벌을 자주 일으켜 국력을 크게 손상시키기도 하였다.
역주3 白鹿皮幣 : 흰 사슴 가죽으로 만든 화폐를 말한다. 기원전 140년(建元1) 漢 武帝가 즉위한 이후로 국가의 재용이 부족하여 민간에서 불법으로 만든 私鑄錢이 유행하고 물가가 치솟자, 元狩 4년(기원전 119)에 有司가 무제에게 皮幣를 사용하자고 건의하였다. 이에 흰 사슴 가죽으로 피폐를 만들었는데, 크기는 사방 1자로 만들고 오색 실로 가장자리를 수놓았으며 그 가치는 40만 錢으로 정하였다. 《史記 卷30 平準書》
역주4 今王侯朝賀 : 西漢 초기의 법에 따르면, 제후왕은 총 4차례에 걸쳐 천자를 朝見(현)한다. 첫 번째로는 제후왕이 도성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뵙는 小見(현)을 행하고, 두 번째로는 정월 초하루 아침에 제후왕이 가죽 깔개에 얹어놓은 璧玉을 바치고 정월 초하루를 하례하면서 정식으로 뵙는 法見을 한다. 그로부터 사흘 뒤에 천자가 제후왕을 위해 주연을 베풀면서 돈과 재물을 하사할 때 세 번째로 뵙고, 또 이틀 뒤에 제후왕이 입궁하여 다시 소현으로 하직 인사를 함으로써 네 번째로 뵌다. 이때 제후왕이 長安에 머무는 기간은 20일을 넘을 수 없다. 武帝 때에는 제후왕 한 명이 侯를 네 명까지만 데리고 와서 정월 초하루를 하례했는데 그것도 10여 년에 한 번 꼴로 왔었다. 韓兆琦에 따르면, 이때의 ‘후’는 제후왕의 아들을 가리킨다. 《史記 卷58 梁孝王世家》 《韓兆琦, 史記箋證 世家6, 南昌:江西人民出版社, 2005, 3631쪽》
역주5 其皮薦反四十萬 : 皮幣의 가치가 40만 錢인 것은 위의 각주 ‘白鹿皮幣’ 참조. 武帝 元狩 4년(기원전 119)에 백록피폐를 만들고 나서 제후왕과 侯, 宗室들이 朝覲(근)이나 聘享을 행할 때 반드시 백록피폐를 璧 아래에 깔아서 올리도록 규정하였다. 《史記 卷30 平準書》
역주6 腹非之法 : 비방하는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비방하는 죄를 말한다. 《박기수 외, 사료로 읽는 중국고대사회경제사, 청어람미디어, 2005, 139쪽》
역주7 : 대전본에는 ‘𧧅’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4)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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