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23-2-나(안按)
[신안臣按] 무제武帝는 제왕 사마유齊王 司馬攸에 대해 일찍이 태후로부터 형제간에 우애하라는 유명遺命을 받았었는데, 아우라는 지친의 관계일 뿐 아니라 자기 어머니의 명을 받고서도 순욱荀勗과 풍담馮紞의 한마디 말에 흔들렸던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들의 말에 “백관이 안팎으로 모두 제왕을 마음으로 따르고 있으니, 폐하께서 붕어하신 뒤에 태자가 즉위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이 한번 들어가자 무제의 우애하는 마음이 이에 의심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신하들이 백번 호소하더라도 이 의심을 풀 수 있었겠습니까. 또 그들의 말에 “폐하께서 제왕에게 조서를 내려 봉국封國으로 가라고 해보시면 틀림없이 온 조정이 안 된다고 할 것이니, 신의 말이 입증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조명詔命이 내려지자 온 조정이 과연 간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무제의 의심을 더하게 한 것이었고 두 사람의 말을 입증한 것이었습니다.
原注
참소하는 간사한 무리가 계략을 꾸미는 것이 뛰어나서 군주의 뜻을 굳히며, 미리 덫을 놓고 함정을 파고서 사람들의 말을 기다리는 것이 대체로 이와 같습니다.
진晉나라가 망한 원인을 따져보면, 혜제惠帝가 어리석은 자질로 군주의 자리를 차지하고 가황후賈皇后가 악랄한 성품으로 배필이 되었기 때문이지만 순욱荀勗과 풍담馮紞 두 사람이 실로 이를 주관했으며,
가깝고 어진 사람으로는 제왕 사마유齊王 司馬攸만 한 사람이 없었고 충성스럽고 공훈이 있는 사람으로는 장화張華만 한 이가 없었는데 순욱과 풍담 두 사람이 실로 이들을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사신史臣이 비판하기를, 어리석은 태자를 끌어들여 후계자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만들어주고 나라를 망칠 여자를 추천하여 태자의 배필이 되게 한 것은 순욱의 힘이었으며,
사마유를 죽게 만들고
가충賈充의 지위를 안정시키며
注+가충賈充을 이른다. 순욱과 교분을 맺고 장화를 원수로 대적함으로써 그 마음이
초楚나라의
참신 비무극讒臣 費無極을 넘어서고
注+초楚나라의 비무극費無極이다. 그 잘못이
진晉나라의
참신 양오讒臣 梁五와
동관폐오東關嬖五를
注+양오梁五와 동관폐오東關嬖五이다. 뛰어넘었던 것은 풍담의 죄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두 사람의 실정을 거의 남김없이 기술하였다고 이를 만하기에 함께 수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