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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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將作圭(필규)‧靈이러니 司徒호대 宜思之意하여下民之勞하소서
欲止하여 以問侍中任芝‧樂松하신대 對曰
百里로되 人以爲小하고
齊宣 五里로되 人以爲大하니 今與百姓共之하시면 無害於政也리이다하여 遂爲之하시다


24-4-가
한 영제漢 靈帝필규원罼圭苑(필규원)과 영곤원靈昆苑을 지으려고 했는데 사도 양사司徒 楊賜가 다음과 같이 간하였다. “마땅히 나라 우왕禹王이 궁실을 낮게 지었던 뜻을 생각하여 백성들의 노고를 위로하소서.”
영제가 그만두려고 시중 임지侍中 任芝악송樂松에게 묻자, 임지와 악송이 대답하였다. “주 문왕周 文王의 동산이 100리였으나 사람들이 이를 작다고 여겼으며,
제 선왕齊 宣王의 동산이 5리였으나 사람들이 이를 크다고 여겼으니, 지금 백성들과 동산의 이익을 공유하시면 정사에 문제 될 게 없을 것입니다.” 영제가 기뻐하여 마침내 필규원과 영곤원을 지었다.


역주
역주1 24-4-가 : 《後漢書》 〈楊震列傳 楊賜〉, 《資治通鑑》 卷57 〈漢紀49 靈帝 上之下〉 光和 3년(180) 기사에 보인다.
역주2 漢靈帝 : 156~189(재위 168~189). 東漢 제11대 황제 劉宏이다. 章帝의 玄孫이자 劉萇(유장)의 아들로, 후사를 두지 못한 桓帝의 뒤를 이어 168년에 즉위하였다. 환관을 중용하여 국정을 그르쳤으며, 매관매직을 일삼고 갖가지 명목으로 세금을 거두어 백성을 착취하고 향락에 빠졌다. 재위 기간 동안 제2차 黨錮의 화와 黃巾賊의 난이 일어났다.
역주3 : 사고본에는 ‘畢’로 되어 있다.
역주4 : 사고본에는 ‘琨(곤)’으로 되어 있다.
역주5 楊賜 : ?~185. 동한 말의 명신이다. 자는 伯獻으로, 楊震의 손자이자 楊秉의 아들이다. 학문에 능통하고 직언을 잘했는데, 靈帝에게 《尙書》를 가르치고 나서 少府, 光祿勳이 되었으며, 이후 司空, 太尉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文烈侯이다.
역주6 夏禹卑宮 : 《論語》 〈泰伯〉 제21장에 “禹王은 내가 비판할 것이 없다. 본인이 먹는 음식은 검박하게 하면서도 제사를 올리는 귀신에 대해서는 효도를 다하였으며, 본인이 입는 의복은 조악하게 하였으면서도 祭服에 대해서는 아름다움을 극진히 하였으며, 본인이 사는 궁실은 낮게 지으면서도 치수 사업에는 온 힘을 다하였으니, 우왕은 내가 비판할 것이 없다.[禹 吾無間然矣 菲飮食而致孝乎鬼神 惡衣服而致美乎黻冕 卑宮室而盡力乎溝洫 禹 吾無間然矣]”라고 한 공자의 말이 보인다.
역주7 : 대전본에는 ‘尉’로 되어 있다.
역주8 文王……爲大 : 《孟子》 〈梁惠王 下〉 제2장에 “제 선왕이 질문하였다. ‘주 문왕의 동산이 사방 70리였다고 하는데, 그러한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옛 기록에 그러한 말이 있습니다.’ 선왕이 말하였다. ‘이처럼 동산이 컸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백성들은 오히려 작다고 여겼습니다.’ 선왕이 말하였다. ‘과인의 동산은 사방 40리인데도 백성들이 오히려 크다고 여기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문왕의 동산 사방 70리에 꼴을 베고 나무하는 자들이 들어갔으며 꿩 잡고 토끼 잡는 자들이 들어가서 백성들과 동산을 공유하였으니, 백성들이 작다고 여긴 것이 또한 당연하지 않습니까.’[齊宣王問曰 文王之囿 方七十里 有諸 孟子對曰 於傳有之 曰 若是其大乎 曰 民猶以爲小也 曰 寡人之囿 方四十里 民猶以爲大 何也 曰 文王之囿 方七十里 芻蕘者往焉 雉兔者往焉 與民同之 民以爲小 不亦宜乎]”라는 내용이 보인다. 주 문왕과 제 선왕의 동산 크기는 《맹자》와 《대학연의》의 내용에 차이가 있다. 당나라 때 章懷太子 李賢도 《後漢書》 〈楊賜傳〉 주석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宋나라 때 王楙(왕무)는 《野客叢書》 卷10 〈文王之囿〉에서 자신이 보았던 《世說新語》에 인용된 樂松의 말에는 제나라의 동산이 50리로 되어 있다고 하면서 《후한서》 〈양사전〉 ‘五’자 아래에 ‘十’자 하나가 빠진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단, 현행본 《세설신어》에는 제나라의 동산이 50리라고 언급된 부분이 없다.
역주9 文王之囿 : 대전본‧사고본에는 이 앞에 ‘昔’ 1자가 있다.

대학연의(4)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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