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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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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詔質子閤羅鳳 亡去어늘 帝欲討之하신대 國忠仲通爲蜀郡長史하여 率兵六萬討之러니
19-20-가1
南詔의 質子인 閤羅鳳이 도주하자 현종이 그를 토벌하고자 하였다. 그러자 楊國忠이 鮮于仲通을 천거하여 蜀郡 長史로 삼아 6만 군사를 이끌고 토벌하게 하였는데,
戰瀘川하여 擧軍沒하고 獨仲通 挺身免이어늘 國忠 匿其敗하고 更叙戰功하여 使白衣領職하니라
瀘川에서 싸워 전군이 전몰하고 오직 선우중통만이 빠져나와 죽음을 면하였는데 양국충은 그의 패배를 숨기고 반대로 戰功을 서술해서 白衣로 領職하도록 하였다.
역주
역주1 19-20-가1 : 《新唐書》 卷206 〈外戚列傳 楊國忠〉에 보인다.
역주2 鮮于仲通 : ?~?. 이름은 向이다. 漁陽 사람이다. 중년에 進士로 출사하였다. 劍南節度使 章仇兼瓊의 심복이 되어 劍南道 采訪支使가 되었다. 天寶 연간 초에 章仇兼瓊에게 楊國忠을 추천하였다. 이후 양국충이 득세한 뒤에 양국충의 비호를 받아 출세하였다. 천보 9년(750)에 검남절도사가 되었고, 천보 10년(751)에 남조 토벌을 지휘하였으나 대패하였다. 이후 京兆尹까지 승진하였다. 천보 12년(753)에 상서성의 문에 ‘銓綜之能碑’를 세워 양국충을 칭송하였다. 천보 14년(755) 양국충의 죽음과 함께 실각하였다.
역주3 : 대전본에는 ‘子’로 되어 있으나, 오자이다.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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