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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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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22-3-나(按)
按 費無極 以無寵之故而譖太子할새 其始則勸平王爲納室焉하고 旣娶秦女矣 又勸王自納焉하고
父子之疑隙 旣開하얀 又勸王大城城父而寘太子하여 以通北方焉하니
父子之勢隔而情不通하고 且其居 近北方하니 可以交通齊‧魯 於是 以叛譖之而倂及伍奢焉하니
其搖之有漸하며 其發之有機어늘 平王之心 往往以爲忠於己
而不知奪子之室 曾鳥獸之不如하며 無罪殺子 又虎狼之弗若하니 皆無極 實陷之也
又無極 實基之也 嗚呼 讒人之 一至此哉인저


原注
22-3-나()
[신안臣按] 비무극費無極이 태자의 총애를 받지 못한 이유로 태자를 참소할 적에, 처음에는 평왕平王에게 며느리를 들이자고 권했고 이미 나라의 여인을 며느릿감으로 맞아들이고 나서는 또 평왕에게 평왕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이라고 권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자간에 의심이 싹트고 나서는 또 평왕에게 성보城父에 크게 성을 쌓고 태자를 머물게 하여 북방北方과 통교할 것을 권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여희驪姬이오二五(양오梁五동관폐오東關嬖五)가 신생申生을 내보내 곡옥曲沃에 살게 했을 때 썼던 낡은 수법입니다.
부자간의 형세가 서로 떨어져 있어 마음이 서로 통하지 않고, 또 태자의 거처가 북방과 가까우므로 나라‧나라와 통교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비무극이 태자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며 참소하고 아울러 오사伍奢까지 연루되게 하였습니다.
비무극이 점차적으로 흔들고 결정적인 순간을 노려 말을 꺼내자, 평왕의 마음에는 언제나 비무극이 자기에게 충성한다고만 생각했지,
아들의 배필감을 빼앗는 것이 금수만도 못하며 무고하게 아들을 죽이는 것이 또 범이나 이리만도 못한 줄은 알지 못했으니, 모두 비무극이 실로 그 지경에 빠뜨린 것입니다.
그리고 오사가 죽고 나서 아들 오원伍員(오자서伍子胥)이 나라로 달아나 마침내 훗날 나라의 군대가 나라의 도성인 으로 쳐들어오는 재앙을 불러와서 초 소왕楚 昭王이 달아나고 초나라가 거의 망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또 비무극이 실로 기초를 놓은 것입니다. 아, 슬픈 일입니다. 참소하는 사람의 폐해가 한결같이 이러한 지경에까지 이른다는 것은.


역주
역주1 此卽……智也 : 21-7-가1 참조.
역주2 子員……幾亡 : 기원전 506년(吳王 闔閭9, 楚 昭王10) 겨울에 오왕 합려와 伍員이 唐나라‧蔡나라와 연합하여 초나라로 쳐들어갔다. 이때 응전하러 나온 楚나라의 子常을 격파하고 다섯 번을 이긴 끝에 초나라의 도성인 郢(영)까지 진격하였다. 이에 겁을 먹은 楚 昭王이 도성을 빠져나가자 이튿날 영이 함락되었다. 위의 ‘伍員’ 주석 참조. 《史記 卷40 楚世家》
역주3 : 대전본에는 ‘志’로, 사고본에는 ‘患’으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4)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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