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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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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1-7-나3(朱)
혹자가 물었습니다.
九經之說 奈何
“아홉 가지 주요 원칙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朱熹
朱熹가 말하였습니다.
不一其內則無以制其外 不齊其外則無以養其中이요 靜而不存則無以立其本이요 動而不察則無以勝其私
“그 내면을 전일하게 하지 않으면 그 외면을 제어할 수 없고, 그 외면을 가지런하게 하지 않으면 그 내면을 함양할 수 없으며, 고요할 때 마음을 보존하지 않으면 그 근본을 확립할 수 없고, 동할 때 살피지 않으면 그 사욕을 이길 수 없다.
故齊明盛服‧非禮不動則內外 交養而動靜 不違 所以爲修身之要也
그러므로 齋戒하고 깨끗이 하며 의복을 성대하게 입고서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으면 내면과 외면이 서로 함양되어 동할 때와 고요할 때가 어긋나지 않게 되니, 자신을 수양하는 요체가 되는 까닭이다.
信讒邪則任賢 不專이요 徇貨色則好賢 不篤이니 所謂하고 佞人 用事則諍臣 杜口
참소와 간사함을 믿으면 賢人을 믿고 맡기는 것이 전일하지 않게 되고 재화와 여색을 쫓으면 현인을 좋아하는 것이 독실하지 않게 되니, 賈捐之가 이른바 ‘후궁이 여색으로 가득하면 현자가 은거하고, 아첨하는 사람이 권력을 휘두르면 간쟁하는 신하가 입을 다문다.’라는 것이다.
蓋持衡之勢 此重則彼輕 理固然也
대체로 저울질하는 형세가 한쪽이 무거우면 다른 한쪽이 가벼워지는 것은 이치가 본래 그러한 것이다.
故去讒遠色賤貨而一於貴德 所以爲勸賢之道也
그러므로 참소를 물리치고 여색을 멀리하며 재화를 천히 여겨서 덕을 한결같이 귀하게 여기는 것이 현인을 권면하는 방도가 되는 까닭이다.
原注
親之 欲其貴 愛之 欲其富
친히 여긴다면 그가 귀해지기를 바라고, 사랑한다면 그가 부유해지기를 바란다.
兄弟婚姻 欲其無相遠이라 故尊位重祿‧同其好惡 所以爲勸親親之道也
형제와 인척들이 서로 멀리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므로 지위를 높여주고 녹을 많이 주며 그 好惡를 같이하는 것이 친족을 친히 함을 권면하는 방도가 되는 까닭이다.
大臣 不親細事則以道事君者 得以自盡이라
대신이 세세한 일을 직접 하지 않으면 道로써 임금을 섬기는 자가 스스로 직분을 다할 수 있게 된다.
故官屬衆盛‧足任使令 所以爲勸大臣之道也
그러므로 관속을 많이 두어 부릴 수 있게 하는 것이 대신을 권면하는 방도가 되는 것이다.
盡其誠而恤其私則士無仰事俯育之累而樂趨事功이라
그 정성을 다하고 그 개인적인 형편을 돌보아주면, 선비는 위로 부모를 섬기고 아래로 처자를 부양할 걱정이 없게 되어 즐겁게 직무에 달려가게 될 것이다.
故忠信重祿 所以爲勸士之道也
그러므로 忠信으로 대하고 녹을 많이 주는 것이 선비를 권면하는 방도가 되는 것이다.
人情 莫不欲逸하며 亦莫不欲富
사람의 마음은 편안하고자 하지 않음이 없으며 또한 부유하고자 하지 않음이 없다.
故時使薄斂 所以爲勸百姓之道也
그러므로 철에 따라 부리고 조세를 적게 거두는 것이 백성들을 권면하는 방도가 되는 것이다.
原注
日省月試하여 以程其能하고 餼廩稱事하여 以償其勞則不信度作淫巧者 無所容이니 惰者 勉而能者 勸矣
날마다 살펴보고 달마다 시험하여 그 능력을 헤아리고 녹봉을 일에 걸맞게 하여 그 노고를 보상하면, 법도를 믿지 않고 음험한 기교를 부리는 자들이 용납될 바가 없을 것이니, 게으른 자는 힘쓰고 능한 자는 권면될 것이다.
爲之授節하여 以送其往하며 待以委積하여 以迎其來하고 因能授任하여 以嘉其善하며 不强其所不欲하여 以矜其不能則天下之旅 皆悅而願出於塗矣
가는 이를 위해 符節을 주어 그 가는 것을 전송하고 오는 이를 재물로 우대하여 그 오는 것을 맞이하며, 능력에 따라 소임을 주어 그 잘하는 이를 가상히 여기고, 그가 원치 않는 일을 강제하지 않음으로써 그 잘하지 못하는 이를 긍휼히 여긴다면 천하의 나그네들이 모두 기뻐하여 그 길로 나오기를 원할 것이다.
無後者 續之注+如周武王立夏‧商之後.하고 已滅者 封之注+公封衛國.하며 治其亂하여 使上下相安하고 持其危하여 使大小相恤하며 朝聘有時而不勞其力하고 貢賜有度而不匱其財則天下諸侯 皆竭其力하여 以蕃衛王室而無倍畔之心矣
제사 지내줄 후손의 나라가 없는 경우에는 대를 이어주고注+예를 들면 周 武王이 夏나라와 商나라의 후사를 세워준 경우이다. , 이미 멸망한 나라는 다시 봉해주며注+예를 들면 齊 桓公이 衛나라를 봉해준 경우이다., 어지러운 나라를 안정시켜 상하가 서로 편안하게 하고 위태로운 나라를 붙들어주어 큰 나라와 작은 나라가 서로 돌보게 하며, 朝會와 聘問은 일정한 시기를 두어 그 힘을 수고롭게 하지 않도록 하고 공물과 하사는 법도를 두어 그 재정이 고갈되지 않게 한다면 천하의 제후들이 모두 그 힘을 다하여 왕실을 보호하고 배반하려는 마음이 없게 될 것이다.
原注
凡此九經 其事 不同이나
이 아홉 가지 주요 원칙은 그 일이 같지 않다.
然總其實컨대 不出乎修身‧尊賢‧親親而已
그러나 그 실제를 총괄해보면 단지 자신을 수양하고 현인을 존숭하고 친족을 친히 하는 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敬大臣‧體群臣 則自尊賢之等而推之也 子庶民‧來百工‧柔遠人‧懷諸侯 則自親親之殺而推之也
대신을 공경하는 것과 신하들을 자기 몸처럼 돌보는 것은 현인을 존숭하는 데 차등을 두는 것으로부터 미루어 나간 것이며,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는 것과 百工을 오게 하는 것과 먼 지역 사람을 어루만지는 것과 제후들을 그리워하게 하는 것은 친족을 친히 하는 데 차등을 두는 것으로부터 미루어 나간 것이다.
至於所以尊賢而親親 亦曰 修身之至然後 有以各當其理而無所悖耳
현인을 존숭하고 친족을 친히 하는 방법에 이르러서는, 또한 자신을 수양함이 지극한 연후에 각각 그 이치에 합당하여 어그러진 바가 없게 될 뿐이라고 하겠다.”
原注
혹자가 말하였습니다.
親親而不言任之以事者 何也
“친족을 친히 하면서도 일을 맡긴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朱熹가 말하였습니다.
親親尊賢竝行不悖之道也
“이것이 친족을 친히 하는 것과 현자를 존숭하는 것이 병행되면서도 서로 어긋나지 않게 하는 방도이다.
茍以親親之故 不問賢否而輕屬任之라가 不幸而或不勝焉이어든 治之則傷恩하고 不治則廢法이라
만약 친족을 친히 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賢否를 따지지도 않고 가벼이 일을 맡겼다가 불행하게도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그때 그를 治罪하면 은혜를 손상하게 되고 치죄하지 않으면 법을 무너뜨리게 된다.
是以富之貴之親之厚之而不曰任之以事하니
이 때문에 부유하게 하고 귀하게 하고 친히 하고 후하게 하면서도 일을 맡긴다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是乃所以親愛而保全之也
이는 바로 그들을 친히 하면서도 온전히 보전하는 방법이다.
若親而賢則自當置之大臣之位而尊之敬之矣 豈但富貴之而已哉리오
만약 친척으로서 현명하다면 당연히 대신의 지위에 두어 그를 존숭하고 공경해야 할 것이니, 어찌 단지 부유하게 하고 귀하게 만들어주는 데에서 그치겠는가.
觀於管‧蔡監商而周公 不免於有過 及其致辟之後則則聖人之意 亦可見矣로다
管叔과 蔡叔에게 商나라를 감독하게 하여 周公이 허물이 있게 됨을 면치 못하였고, 그들의 죄를 물어 죽인 이후에는 오직 康叔과 聃季만이 함께 왕실을 보좌하였을 뿐, 五叔은 봉토만 있고 관직이 없었던 사례에서 살펴보면, 聖人의 의도를 또한 알 수 있다.”
原注
혹자가 말하였습니다.
信任大臣而無以間之 故臨事而不眩이니 使大臣而賢也則可어니와
“대신에게 믿고 맡기면 임금과 대신을 이간질할 수 없으므로 임금이 일에 임하여 현혹되지 않으니,
其或不幸而有之徒焉則所謂偏聽 生姦이요 獨任 成亂이며
만약 대신이 현명하다면 괜찮겠지만 간혹 불행히도 趙高‧朱异‧虞世基‧李林甫와 같은 무리가 있다면, 鄒陽이 이른바 ‘한쪽의 말만 들으면 간사함이 생겨나고 한 사람에게 권력을 맡기면 난이 이루어지게 된다.’라고 한 경우와,
所謂妬賢疾能하며 御下蔽上하여 以成其私而主不覺悟者 亦安得而不慮邪
范睢가 이른바 ‘덕이 있는 사람을 시기하고 재능 있는 사람을 미워하며 아랫사람을 통제하고 윗사람을 가려서 자기 사욕을 채우는데도 임금이 깨닫지 못한다.’라고 한 경우를 또한 어찌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原注
朱熹가 말하였습니다.
不然也
“그렇지 않다.
彼其所以至此 正坐不知九經之義而然耳
그 임금들이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바로 아홉 가지 주요 원칙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여서 그런 것일 뿐이다.
使其明於此義而以修身爲本則固視明聽聰而不可欺以賢否矣 能以尊賢爲先則所置以爲大臣者 必不雜以如是之人矣
만약 임금이 이 의미를 분명히 알아서 자신을 수양하는 일로 근본을 삼았다면 참으로 보고 듣는 것이 밝아서 간신들이 賢否를 가지고 속일 수 없었을 것이며, 현자를 존숭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을 수 있었다면 대신으로 삼은 자들 중에 틀림없이 이러한 사람들이 섞여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不幸而或失之라도 則亦亟求其人以易之而已
불행히 혹 잘못 섞여 들어갔다 하더라도 또한 빨리 적임자를 찾아서 바꿀 뿐이다.
豈有知其能爲姦以敗國하고 顧猶置之大臣之位하여 使之姑以奉行文書爲職業하고 而又恃小臣之察하여 以防之哉리오
어떻게 그가 간악한 짓을 하여 나라를 망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오히려 대신의 자리에 두어 고식적으로 문서를 봉행하는 것을 업무로 삼게 하고는, 또 소신들의 감찰에만 의지하여 이를 막겠는가.
夫勞於賢而逸於得人하며 任則不疑而疑則不任 古之聖君賢相 所以誠意交孚하여 兩盡其道而有以共成正大光明之業也
현자를 구하는 데 애쓰고 인재를 얻으면 편안해지며, 맡기면 의심하지 않고 의심하면 맡기지 않는 것은 바로 옛날 聖君과 어진 宰相들이 성실한 생각으로 서로 믿어서 양쪽이 모두 자신의 도리를 다함으로써 함께 光明正大한 위업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인 것이다.
如其不然이면 將恐上之所以猜防畏備者 愈密而其爲眩 愈甚하고 下之所以欺罔蒙蔽者 愈巧而其爲害 愈深이니
만약 그렇지 않으면 아마도 위에서 시기해서 막고 두려워서 방비함이 치밀해질수록 그 현혹됨은 더욱 심해질 것이며, 아래에서 속이고 가리는 것이 교묘해질수록 그 해로움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不幸而臣之姦 遂則其禍 固有不可勝言者 幸而主之威 勝則夫所謂偏聽獨任‧御下蔽上之姦 將不在於大臣而在於左右
불행히도 신하의 간사함이 이루어지면 그 화는 참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며, 다행히 임금의 위엄이 압도적이면 이른바 ‘한쪽의 말만 듣고 한 사람에게 권력을 맡기는 것’과 ‘아랫사람을 통제하고 윗사람을 가리는’ 간사한 일이 장차 大臣에게 있지 않고 近臣에게 있게 될 것이다.
其爲國家之禍 尤有不可勝言者矣 嗚呼危哉
그것이 국가의 재앙이 되는 것이 더욱 이루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니, 아, 위태롭도다.”
역주
역주1 1-7-나3(朱) : 眞德秀의 《中庸集編》 卷中에 보인다. 일부 내용은 《朱子語類》 卷116 〈訓門人4〉에도 보이지만 없는 부분이 더 많다.
역주2 賈捐之 : 자가 君房으로, 賈誼의 증손이다.
역주3 後宮……杜口 : 《漢書》 卷64下 〈賈揖之傳〉에 보인다.
역주4 : 대전본‧사고본에는 ‘微’로 되어 있다.
역주5 齊桓公封衛國 : 《春秋》 閔公 원년 12월 기사에 “狄이 衛나라로 들어왔다.[狄入衛]”라는 내용이 보이는데, 이는 衛나라가 狄의 침입을 받아 멸망했음을 말한다. 그리고 《春秋左氏傳》 僖公 2년 기사에 “봄에 제후가 楚丘에 성을 쌓고 衞나라를 봉해주었다.[春諸侯城楚丘而封衞焉]”라는 내용이 보인다. 杜預는 이에 대해, “위나라의 임금이 죽고 나라가 망했기 때문에 傳에서 봉한다고 말한 것이다.[君死國滅故傳言封]”라고 주석하였다. 《春秋公羊傳》에 따르면 초구에 성을 쌓고 위나라를 봉해준 사람이 바로 齊 桓公이다. 《春秋經傳集解 僖公 上》 《春秋公羊傳 僖公 2年》
역주6 : 대전본에는 ‘威’로 되어 있으나, 宋代의 避諱이다. 이하도 동일하다.
역주7 惟康……官焉 : 《春秋左氏傳》 定公 4년(기원전 506) 조에 “武王의 同母兄弟가 여덟 사람인데, 周公은 太宰, 康叔은 司寇, 聃季는 司空이 되었고, 五叔은 관직이 없었다.[武王之母弟八人 周公爲大宰 康叔爲司寇 聃季爲司空 五叔無官]”라고 하였다. 《春秋經傳集解》에 따르면 五叔은 管叔‧蔡叔‧成叔‧霍叔‧毛叔을 가리킨다.
역주8 趙高 : ?~기원전 207. 秦나라의 환관으로, 법률에 밝아 始皇帝 때 中車府令을 지냈다. 二世(胡亥) 때 郎中令‧丞相 등을 지내고 국정을 전단하였으며 武安侯에 봉해졌다. 劉邦이 關中으로 진격하자 二世를 望夷宮에서 시해하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子嬰에게 살해되었다.
역주9 朱异 : 483~549. 자는 彦和로, 吳郡 錢塘 사람이다. 《禮記》와 《周易》에 능통하여 梁 武帝의 신임을 받았다. 太學博士‧中領軍 등을 역임하였다. 547년(太淸1) 侯景의 항복을 받아들이도록 황제에게 권했으나, 후에 후경이 주이를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거병하여 建康을 포위하자 분김에 병사하였다.
역주10 虞世基 : ?~618. 자는 茂世로, 會稽 餘姚 사람이다. 박학다식하였으며 隋 煬帝의 신임을 받아 內史侍郞이 되고 조정의 기밀을 장악하였다.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양제의 비위를 맞추어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 소식을 양제가 모르게 하였다. 총애를 믿고 매관매직을 일삼았는데, 宇文化及이 양제를 시해할 때 살해당하였다.
역주11 李林甫 : ?~752. 아명은 哥奴, 호는 月堂으로, 隴西 狄道 사람이다. 唐나라 宗室로, 玄宗 때 同中書門下平章事‧中書令‧右丞相‧尙書左僕射 등을 지냈으며 晉國公에 봉해졌다. 간계로 張九齡‧裴耀卿과 같은 어진 이를 내치게 하고 태자 李瑛 등을 폐서인시켰으며, 牛仙客‧楊國忠 등과 같은 간사한 이들을 끌어들여 국정을 농단하고 어지럽혔다.
역주12 鄒陽 : 기원전 206~기원전 129. 齊郡 臨淄 사람이다. 景帝의 동생 梁孝王의 문객으로 있다가 羊勝 등의 모함으로 하옥되었다. 이때 옥중에서 上書하여 풀려났는데, 이것이 〈獄中上梁王書〉로 ‘偏聽生姦 獨任成亂’이라는 구절도 이 글에서 나왔다. 후에 양효왕에게 上客의 대우를 받았다.
역주13 范睢 : ?~기원전 255. 자는 叔으로, 전국시대 魏나라 사람이다. 魏나라 相國 魏齊에게 모함을 당해 매를 맞고는, 張祿으로 성명을 바꾸고 秦나라로 망명하였다. 후에 昭王을 섬겨 相國이 되고 應侯에 봉해졌다. ‘妬賢疾能 御下蔽上 以成其私而主不覺悟’라는 말은 그가 昭王에게 간언했던 말에 보인다. 《史記 卷79 范睢列傳》
역주14 : 저본에는 ‘雎’로 되어 있으나, 대전본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역주15 : 대전본에는 ‘進’으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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