莽
이 先所白遣
八人
이 還
하여 詐爲郡國造歌謠頌功德
하니 凡三萬言
이러라
泉陵侯劉慶
이 言 周成王
이 幼小
하여 稱
하시고 周公
이 居攝
이러시니 今帝
가 富於春秋
하시니 宜令安漢公行天子事
이니이다
平帝
가 崩
注+之也.커시늘 莽
이 選宣帝玄孫中最幼子嬰
하니 年二歲
라 託以卜相最吉
이라하더라
是月
에 謝囂
가 奏
長孟通
이 浚井
이라가 得白石有丹書
하니 文曰 告安漢公莽
이 爲皇帝
라하니 之起
가 自此始
하다
莽
이 使群公以白太后曰 莽
이 非有
라 但欲稱攝以重其權
하여 服天下耳
니이다
太后가 許之하여 乃令居攝踐阼를 如周公<확인 chi="周公故事" key="" kor="주공고사" 비고="태깅범위 아님">故事확인>하다 明年에 改元<확인 chi="居攝" key="" kor="거섭" 비고="연호?">居攝확인>이라하고 立嬰爲皇太子하고 號曰孺子라하다
後에 又稱符命하여 卽眞天子位하고 定有天下之號曰新云이러라
17-12-가1
왕망이 앞서 아뢰어 파견했던 풍속사자風俗使者 여덟 사람이 돌아와 거짓으로 군국郡國들이 노래를 만들어 왕망의 공덕을 칭송하고 있다고 하니, 그 노래가 총 3만 자였다.
천릉후 유경泉陵侯 劉慶이 말하였다. “주 성왕周 成王은 나이가 어려 유자孺子로 칭하고 주공周公이 섭정 자리에 있었습니다. 지금 황제께서는 춘추가 어리시니 안한공安漢公으로 하여금 천자의 일을 행하게 해야 합니다.”
평제平帝가 붕어하자
注+왕망이 독살한 것이다. 왕망이
선제宣帝의
현손玄孫 가운데 가장 어린 아들인
유영劉嬰을 선택하였는데 나이가 두 살이었으므로, 점을 쳐보니 유영이 가장 길하다고 둘러대었다.
이달에 전휘광前輝光의 사효謝囂가 아뢰기를, 무공 현장 맹통武功 縣長 孟通이 우물을 파다가 흰 돌을 얻었는데 “안한공 왕망이 황제가 될 것임을 고하노라.[고안한공망위황제告安漢公莽爲皇帝]”라는 단서丹書가 쓰여 있었다고 하였다. 부명符命의 출현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왕망이 여러 공公을 시켜 태후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게 하였다. “왕망이 딴마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저 ‘섭攝(대리)’을 칭함으로써 그 권한을 무겁게 하여 천하를 진복鎭服시키려고 할 뿐입니다.”
태후가 허락하여 마침내 거섭居攝하여 천자의 자리에 오르기를 주공周公의 고사처럼 하도록 하였다. 이듬해(6)에 거섭居攝으로 개원改元하고 유영劉嬰을 세워 황태자로 삼고서 유자孺子라고 불렀다.
후에 또 부명符命을 칭탁하여 진짜 천자로 즉위하고 천하를 소유한 칭호를 ‘신新’이라고 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