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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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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所白遣八人하여 詐爲郡國造歌謠頌功德하니 凡三萬言이러라
17-12-가1
왕망이 앞서 아뢰어 파견했던 風俗使者 여덟 사람이 돌아와 거짓으로 郡國들이 노래를 만들어 왕망의 공덕을 칭송하고 있다고 하니, 그 노래가 총 3만 자였다.
泉陵侯劉慶 言 周成王 幼小하여하시고 周公 居攝이러시니 今帝 富於春秋하시니 宜令安漢公行天子事이니이다
泉陵侯 劉慶이 말하였다. “周 成王은 나이가 어려 孺子로 칭하고 周公이 섭정 자리에 있었습니다. 지금 황제께서는 춘추가 어리시니 安漢公으로 하여금 천자의 일을 행하게 해야 합니다.”
平帝注+之也.커시늘 選宣帝玄孫中最幼子嬰하니 年二歲 託以卜相最吉이라하더라
平帝가 붕어하자注+왕망이 독살한 것이다. 왕망이 宣帝의 玄孫 가운데 가장 어린 아들인 劉嬰을 선택하였는데 나이가 두 살이었으므로, 점을 쳐보니 유영이 가장 길하다고 둘러대었다.
是月 謝囂長孟通 浚井이라가 得白石有丹書하니 文曰 告安漢公莽 爲皇帝라하니 之起 自此始하다
이달에 前輝光의 謝囂가 아뢰기를, 武功 縣長 孟通이 우물을 파다가 흰 돌을 얻었는데 “안한공 왕망이 황제가 될 것임을 고하노라.[告安漢公莽爲皇帝]”라는 丹書가 쓰여 있었다고 하였다. 符命의 출현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使群公以白太后曰 莽 非有 但欲稱攝以重其權하여 服天下耳니이다
왕망이 여러 公을 시켜 태후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게 하였다. “왕망이 딴마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저 ‘攝(대리)’을 칭함으로써 그 권한을 무겁게 하여 천하를 鎭服시키려고 할 뿐입니다.”
太后 許之하여 乃令居攝踐阼 如周公故事하다 明年 改元居攝이라하고 立嬰爲皇太子하고 號曰孺子라하다
태후가 허락하여 마침내 居攝하여 천자의 자리에 오르기를 周公의 고사처럼 하도록 하였다. 이듬해(6)에 居攝으로 改元하고 劉嬰을 세워 황태자로 삼고서 孺子라고 불렀다.
又稱符命하여 卽眞天子位하고 定有天下之號曰新云이러라
후에 또 符命을 칭탁하여 진짜 천자로 즉위하고 천하를 소유한 칭호를 ‘新’이라고 정하였다.
역주
역주1 17-12-가1 : 관련 내용이 《前漢書》 卷99 〈王莽傳〉, 《資治通鑑》 卷36 〈漢紀28 平帝 下〉 元始 5년(5) 기사에 보인다. 원시 5년에 泉陵侯 劉慶은 왕망이 주공처럼 천자의 일을 섭행하게 해야 한다고 상서하고 신하들도 유경의 말에 동조하였다. 이듬해 居攝 원년(6) 3월에 宣帝의 玄孫 劉嬰을 태자로 삼았으며 5월에 태후가 왕망에게 조서를 내려 왕망이 假皇帝를 칭하도록 하였다. 2년 뒤인 始初 원년(8) 11월에 국호를 新으로 바꾸고 정식 황제로 등극하였다.
역주2 風俗使者 : 漢 武帝 때 처음 두었는데 매년 정월과 10월에 여러 國‧郡州‧鄕邑들을 순행하면서 풍속을 널리 살피고 가요들을 채집하며 관리들의 잘잘못을 규찰하고 인재를 추천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인원은 10명 미만에서 20명 이상에 이르기까지 일정하지 않았는데, 무제부터 成帝 때까지는 官府에서 선발하고 현자들이 추천하였다. 《許繼起, 秦漢樂府制度硏究, 揚州大學博士學位論文, 2002, 72~73쪽》
역주3 孺子 : 원래는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천자나 제후 등의 후대를 계승한 사람을 일컫기도 하였다. 《漢語稱謂大詞典 孺子》
역주4 莽酖之也 : 元始 5년(5) 12월에 왕망이 臘日을 구실로 椒酒를 바칠 때 술에 독을 넣었는데 평제가 병이 나 이달에 사망하였다. 《資治通鑑 卷36 漢紀28 平帝 下》
역주5 : 대전본에는 ‘配’로 되어 있으나 오자이다.
역주6 前輝光 : 漢 平帝 元始 4년(4)에 後丞烈과 함께 설치한 郡 이름이다. 전휘광은 長安 이남의 縣들을, 후승렬은 장안 이북의 현들을 관할하였다. 《資治通鑑 卷36 漢紀28 平帝 下 胡三省注》
역주7 武功 : 현재 陝西省 郿縣 동쪽에 있었던 縣 이름이다. 《漢書辭典 武功》
역주8 符命 : 하늘이 임금에게 내린 祥瑞를 가리키는데 천명을 얻은 증거로 간주되었다. 《漢書辭典 符命》
역주9 : 사고본에는 ‘他’로 되어 있다. 통행본 《전한서》에는 ‘它’로 되어 있다.
역주10 : 대전본‧사고본에는 ‘塡’으로 되어 있다. 통행본 《전한서》에도 ‘塡’으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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