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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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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13-9-나(按)
按 淸談之弊 起於曹魏而終於蕭梁하니 其始 蓋宗老‧莊氏
其末 則有欲爲老‧莊氏之役而不可得者하니 彼徒見老氏謂
故何晏‧王弼之徒 設爲玄虛之論하여 하여 是非成壞 一不足介意라하여
於是 臣不必忠하며 子不必孝하며 禮法 不必事하며 威儀 不必修
惟空曠無心하여 不爲事物染라사 乃爲知道라하니 固非先王之敎之所許而於老氏本指 亦莫之究焉이라
原注
蓋老氏 謂天下之物 生於有而有 生於無라하니 始無而今有也어늘 何晏輩 乃悉歸之於無하니 是豈老氏本指邪리오
自吾儒言之컨대 形而上者 理也 形而下者 物也 有是理故有是物하고 有是物則具是理하니 二者 未嘗相離也
方其未有物也 若可謂無矣而理已具焉하니 其得謂之無邪 老氏之論 旣失之而爲淸談者 又失之尤者也
原注
若吾儒之道則不然하니 天之生物 無一之非實이요 理之在人 亦無一之非實하니
故立心 以實意爲主하며 修身 以實踐爲貴하며 講學 以實見爲是하며
行事 以實用爲功 堯‧舜‧周‧孔相傳之正法也
原注
自何晏‧戎‧衍으로 以至 雖皆高談空妙하나 然於世之名寵權利 未嘗不深留其情하니
圖台鼎하고 하고 營三窟하고 하여
卑猥貪吝 更甚庸俗하니 不知晏輩 其以名寵權利 爲有邪 爲無邪
夫旣酷嗜而深求之하니 是必以爲有矣 夫何世間萬有 一切皆無라호대 獨此 乃眞有邪
其視老氏之無爲‧無欲 超然萬物之表 莊生 於千金之聘‧三公之位 若浼焉者컨대 果何如邪
此所謂欲爲老‧莊氏之役而不可得者也
原注
其始 以之自利其身하고 其終 以之貽害於國하니
而陶景之詩 有曰 平叔任散誕注+平叔, 晏字하고 夷甫坐談空하여 不悟昭陽殿 化作單于宮이라하며
而何敬容 亦有江南爲戎之歎하니 蓋自晉及梁 其亂亡 如出一轍하니 皆學老‧莊氏而失之罪
原其本컨대 是亦老‧莊之罪也 然則有天下者 懲魏‧晉‧蕭梁之禍하여 其可不以堯‧舜‧周‧孔之道 爲師哉잇가


原注
13-9-나(按)
[臣按] 淸談의 폐단이 曹魏에서 시작되어 蕭梁에서 끝났습니다. 처음에는 老子와 莊子로 宗主를 삼았고,
종국에는 老子와 莊子를 위해 일하고자 하였으나 할 수 없었던 자가 있었으니 저들은 老氏가 “有는 無에서 생겨난다.[有生於無]”라고 한 것만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何晏과 王弼의 무리가 玄虛의 이론을 만들어서 형체가 있는 사물을 모두 芻狗처럼 여겨 옳음과 그름, 생성과 사멸을 조금도 개의할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신하는 반드시 충성할 필요가 없으며 자식은 반드시 효도할 필요가 없으며 예법을 반드시 일삼을 필요가 없으며 威儀를 반드시 강구할 필요가 없고,
오직 공허하고 얽매이는 마음이 없어 사물에 물들지 않는 자만이 곧 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선왕의 가르침에서 허여하는 것도 아니며 老氏의 本旨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原注
老氏는 “천하의 사물이 有에서 생겨나는데, 有는 無에서 생겨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처음에는 없었다가 지금은 생겼다는 것인데 何晏 등은 마침내 만물을 모조리 無로 귀착시켰으니, 이것이 어찌 老氏의 本旨이겠습니까.
우리 儒家의 입장에서 말하면, 형이상의 것은 이치이고 형이하의 것은 사물입니다. 이 이치가 있기 때문에 이 사물이 있는 것이고 이 사물이 있으면 이 이치가 갖추어져 있으니, 이치와 사물 이 두 가지는 애당초 서로 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아직 사물이 있기 전에 ‘無’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지만 이치가 이미 여기에 갖추어져 있으니 그것을 ‘無’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老氏의 설이 이미 잘못된 것인데, 청담을 하는 자들이 또 더욱 잘못된 것입니다.
原注
우리 儒家의 道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이 만물을 내는 것은 하나라도 진실하지 않은 것이 없고, 사람에게 있는 이치 또한 하나라도 진실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세우는 것은 실제로 의지를 두는 것을 위주로 하며, 자신을 수양하는 것은 실제로 시행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며, 학문을 講磨하는 것은 실제로 보이는 것을 옳은 것으로 여기며,
일을 행하는 것은 실제로 쓰는 것을 공효로 여깁니다. 이것은 堯임금‧舜임금‧周公‧孔子가 서로 전수한 올바른 법입니다.
原注
何晏‧王戎‧王衍에서부터 殷浩까지 이 모두가 비록 공허하고 오묘한 이치를 고상하게 담론하였지만 세상의 명성‧총애‧권세‧이익에 그 마음을 깊이 두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하안은 삼공의 지위를 도모하였고, 왕융은 상아로 만든 주판을 잡고서 재물을 모았고, 왕연은 영화를 누리면서도 화를 피할 궁리를 했고, 은호는 빈 서찰을 보냈습니다.
그리하여 비루하고 추잡하고 탐욕스럽고 인색한 마음이 보통 사람보다도 더욱 심하였으니, 하안의 무리가 명성‧총애‧권세‧이익을 ‘有’라고 여긴 것인지, ‘無’라고 여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그토록 좋아하여 깊이 추구하였으니 이는 틀림없이 ‘有’라고 여긴 것입니다. 어찌 세상의 만물을 전부 無라고 하면서도 유독 이것만은 참으로 ‘有’라고 한단 말입니까.
그들을 초연히 만물의 밖을 벗어난 老氏의 無爲와 無欲, 千金의 예물과 三公의 지위로 불렀을 때 자신을 더럽힐 것처럼 여겼던 莊子와 비교해보면 과연 어떻습니까.
이것은 이른바 ‘老子와 莊子를 위해 일하고자 하였으나 할 수 없었던 자’입니다.
原注
처음에는 이를 가지고 자신의 몸을 스스로 이롭게 하였고 끝에는 이를 가지고 나라에 해를 끼쳤습니다.
그러므로 桓溫이 “중원이 상실되어 백년의 기업이 폐허가 되었으니 王夷甫 등이 그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注+‘夷甫’은 王衍의 字이다.라고 하였으며,
陶弘景의 〈題所居壁〉시에 “平叔은 허탄한 말을 지껄이고注+‘平叔’은 何晏의 字이다. 夷甫는 공허한 이야기만 일삼아 昭陽殿이 선우의 궁전으로 변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네.”라고 하였으며,
何敬容 역시 강남이 戎族의 땅이 될 것이라는 탄식을 하였습니다. 晉나라로부터 梁나라에 이르기까지 그 혼란과 패망이 마치 같은 궤도에서 나온 듯하니 모두 老莊의 학설을 배우면서 잘못된 죄입니다.
그러나 그 근본을 따져보면, 이 역시 老莊의 죄입니다. 그렇다면 천하를 소유한 자가 魏‧晉‧蕭梁의 화를 감계로 삼아 堯임금‧舜임금‧周公‧孔子의 道로 스승을 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역주
역주1 有生於無 : 《老子》 제40장에 보인다. “천하의 만물은 有에서 생겨나며 有는 無에서 생겨난다.[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라고 하였다.
역주2 視事……芻狗 : 《老子》 제5장에 “천지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芻狗와 같이 여기고, 성인은 어질지 않아서 백성을 추구와 같이 여긴다.[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라고 하였다. 芻狗는 고대에 제사를 지낼 때 짚을 이용하여 개 모양으로 만든 것으로, 제사가 끝나면 그 소용이 다하여 버려지는데, 이를 두고 《莊子》 〈天運〉에서는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그 머리와 등줄기를 밟고 풀을 베어 불을 피우는 사람들이 가져다 불을 땐다.[行者踐其首脊 蘇者取而爨之而已]”라고 묘사하였다.
역주3 : 사고본에는 ‘著’로 되어 있다.
역주4 : 사고본에는 ‘非’로 되어 있다.
역주5 : 대전본에는 ‘商’으로 되어 있으나, 宋代의 피휘이다.
역주6 戎執牙籌 : 牙籌는 象牙로 만든 주판이다. 晉나라 때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王戎은 한때 재물 모으기를 좋아하여 상아로 만든 주판을 손에 쥐고 밤낮으로 돈을 계산했다고 한다. 《世說新語 儉嗇》
역주7 浩達空函 : 東晉 때 殷浩가 豫章太守로 부임하면서 建康 사람들로부터 1백 여 통에 달하는 편지 전달을 부탁받았다. 그러나 은호는 그 편지들을 전달하지 않고 石頭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모두 물에 버렸다고 한다. 《世說新語 任誕》
역주8 : 대전본에는 ‘亘’으로 되어 있으나, 宋代의 피휘이다.
역주9 神州……其責 : 《晉書》 卷98 〈桓溫傳〉에 보인다.
역주10 : 저본에는 ‘洪’으로 되어 있으나 사고본에 근거하여 ‘弘’으로 바로잡았다. 宋代의 피휘이다.
역주11 : 대전본에는 ‘惟’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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