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13-8-나(按)
[臣按] 이것은 佛法이 중국에 들어온 시초입니다. 이때에 얻어온 것으로 《佛說四十二章經》은 蘭臺의 石室에 봉함해 두고,
얻어온 불상은 淸涼臺‧顯陵‧節陵에 그려놓았을 뿐이고 楚王 劉英이 비록 좋아하기는 하였지만 潔齋하고 제사를 지낼 뿐이었습니다.
유영은 얼마 뒤 죄를 지어 주살되었으니 福과 이익의 보응을 받았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 후에 靈帝가 처음으로 궁중에 祠堂을 세웠고,
魏‧晉 이후에는 불법이 점차 성해져서 五胡의 군주로, 이를테면 後趙의 石勒이 佛圖澄에게, 前秦의 苻堅이 沙門 道安에게, 姚興이 鳩摩羅什에게 때때로 스승의 예로써 존숭하였고,
元魏의 孝文帝는 현명한 군주로 불렸지만 또한 그 절에 행차하여 修齋하고 설법을 들었으니 이로부터 蕭梁에 이르기까지 불법의 성함이 극에 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근원은 永平 연간(58~75)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明帝의 책임이 아니라면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