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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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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元中 從容與注+時爲相. 論卽位以來宰相曰 盧杞 忠淸彊介하니 人言杞姦邪호대 殊不覺其然호라
20-12-가
貞元(785~805) 연간에 덕종이 李泌와注+李泌는 당시 재상이었다. 함께 즉위한 이래의 재상들을 조용히 논하였다. “盧杞는 충성스럽고 청렴하며 강직하다. 사람들은 노기가 간사하다고 말하지만 짐은 그가 간사하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겠다.”
曰 人言杞姦邪而陛下 獨不覺其姦邪하시니 杞之所以爲姦邪也니이다 儻陛下 覺之하시면 豈有리잇고
이비가 말하였다. “사람들은 노기가 간사하다고 말하는데도 폐하께서는 홀로 그 간사함을 모르시니, 이것이 바로 노기가 간사한 짓을 하게 된 이유입니다. 만일 폐하께서 이를 아셨더라면 어찌 建中(780~783) 연간의 난이 있었겠습니까.”
又曰 盧杞小心하여 朕所言 無不從이러니라 對曰 杞 言無不從하니 豈忠臣乎리잇고
덕종이 또 말하였다. “노기는 소심하여 짐이 하는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비가 대답하였다. “노기는 폐하께서 하시는 말씀을 따르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어찌 충신이겠습니까.
무릇 말을 했을 때 자신의 뜻을 어기지 않는 것이 〈즐겁다는〉 것은, 바로 孔子가 이른바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는 한마디’라는 것입니다.”
역주
역주1 20-12-가 : 《唐鑑》 권15 〈德宗4〉 貞元 5년(789) 2월, 《資治通鑑》 권233 〈唐紀49 德宗8〉 貞元 4년(788) 2월 조에 보인다.
역주2 李泌 : 722~789. 唐 玄宗‧肅宗‧代宗‧德宗 때의 謀臣이다. 자는 長源이며 지금의 섬서성 西安인 京兆 사람이다. 經史를 두루 섭렵하였고 글을 잘 지었으며 특히 시에 뛰어났다. 崇山‧華山‧終南山을 유람하며 신선을 동경하였다. 현종 天寶(742~756) 연간에 翰林待詔로 태자를 모시면서 태자에게 총애를 받았다. 楊國忠에게 시기를 받자 산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安史의 난이 일어나 肅宗이 즉위하자 부름을 받고 나가 國事를 모의하였다. 幸臣 李輔國 등에게 참소를 받자 다시 衡山에 은거하였다. 代宗이 즉위하여 翰林學士로 불렀는데, 權相 元載 등에게 배척을 받아 지방으로 나가 楚州刺史, 杭州刺史가 되었다. 德宗 때 中書侍中‧同平章事에 임명되었다. 鄴縣侯에 봉해져 李鄴侯라고도 칭한다. 사후에 太子太傅로 추증되었다. 아버지 李承休가 2만여 권의 장서를 모아 책이 많았으므로 장서가 매우 많다는 의미의 ‘鄴侯書’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李泌의 ‘泌’는 자가 長源인 것에 근거할 때 ‘비[悲位反]’로 발음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시경》 〈陳風 衡門〉의 “샘물이 졸졸 흐름이여, 굶주림을 즐길 수 있도다.[泌之洋洋 可以樂飢]”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3 建中之亂 : ‘建中’은 唐 德宗이 780~783년 사이에 사용한 연호이다. ‘建中之亂’은 건중 4년(783)에 일어난 涇原兵變을 이른다. 20-11-가 ‘涇師亂’ 주석 참조.
역주4 言而……者也 : 《논어》 〈子路〉 제15장에 魯 定公이 “한마디 말로 나라를 잃어버릴 수 있다 하는데 그러한 것이 있습니까?[一言而喪邦 有諸]”라고 묻자, 孔子가 “사람들의 말에 ‘나는 군주 된 것은 즐거울 것이 없고, 오직 내가 말을 하면 어기지 않는 것이 즐겁다.’라고 합니다. 만일 임금의 말이 선한데 아무도 어기는 이가 없다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만일 임금의 말이 선하지 못한데도 아무도 어기는 이가 없다면 한마디 말로 나라를 잃게 됨을 기약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人之言曰 予無樂乎爲君 唯其言而莫予違也 如其善而莫之違也 不亦善乎 如不善而莫之違也 不幾乎一言而喪邦乎]”라고 대답한 내용이 보인다.
역주5 : 사고본에는 이 뒤에 ‘而’가 있다.

대학연의(4)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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