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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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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9-12-나(按)
按 此章 專爲魯而言也 自文公薨으로 殺子赤‧立宣公注+赤, 嫡也. 宣公, 庶也.而君失其政하니 至此歷
專國政으로 歷四世하여
子而爲陽虎 所執이라 夫祿去公室而政歸大夫하니 大夫之勢 宜益强也로되
而三家之子孫 乃反微弱而不振 何邪 蓋以臣僭君者 逆理亂常之事 其能久乎
善乎 先儒蘇軾之說
今諸侯‧大夫 皆陵其上則無以令其下矣 故皆不久而失之也라하니 嗚呼 其亦可爲後世人臣顓國者之戒歟인저
以上 言君臣之名分하니 分雖嚴而上下之交 不可無禮 故以君使臣之禮 繼之하노이다


原注
9-12-나(按)
[臣按] 이 장은 전적으로 魯나라 때문에 말한 것입니다. 노나라에서는 文公이 죽은 뒤로 公子 遂가 문공의 아들 赤을 죽이고 宣公을 옹립하여注+‘赤’은 문공의 적자이다. ‘宣公’은 문공의 서자이다. 임금이 그 정권을 잃었으니, 이때에 이르러 다섯 公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季孫宿이 국정을 전단한 뒤로 4대를 거쳐 季桓子에 이르러 陽虎에게 장악되었습니다. 녹을 주는 권한이 공실에서 떠나 정권이 대부에게 귀속되었으니 대부의 권세가 더 강성해져야 마땅했으나,
三家의 자손들이 도리어 미약해지고 부진했던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신하로서 임금의 권한을 참람하게 행하는 것은 이치를 거스르고 常道를 어지럽히는 일이니, 오래갈 수 있겠습니까.
다음과 같은 先儒 蘇軾의 말이 좋습니다. 소식이 말하기를, 강함은 안정에서 생기고 안정은 상하의 분수가 정해지는 데에서 생기는 법인데,
지금 제후와 대부가 모두 자신의 윗사람을 능멸하였으니 자신의 아랫사람들을 부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모두 오래지 않아 실권했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 이 또한 후세의 신하로서 국정을 전단하는 자의 경계가 될 만합니다.
이상은 군신간의 名分을 말하였습니다. 분수는 비록 엄하지만 상하간의 교제에는 禮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임금이 신하를 부리는 禮에 관한 내용으로 이어놓았습니다.


역주
역주1 公子遂 : 襄仲을 가리킨다. 기원전 609년 그는 魯 文公의 첫째 妃인 齊나라 哀姜의 소생들을 죽이고 둘째 妃인 敬嬴의 소생 俀(퇴)를 옹립하였는데, 이가 宣公이다. 《史記 卷33 魯周公世家》
역주2 五公 : 宣公‧成公‧襄公‧昭公‧定公을 말한다.
역주3 季孫宿 : ?~기원전 535. 季文子의 아들로, 숙은 이름이다. 魯 襄公 11년(기원전 562)에 노나라 公室에 소속된 上軍과 下軍을 上軍‧中軍‧下軍으로 나누어 각각 계손씨‧맹손씨‧숙손씨가 1軍씩 장악하게 하였다. 그 후 昭公 5년(기원전 562)에는 다시 중군을 폐하고 공실의 군대를 넷으로 나누어 그중 둘을 계손씨가 차지하게 함으로써 노나라의 대권을 장악하였다. 시호가 武이므로 季武子라고도 한다.
역주4 桓子 : ?~기원전 492. 季平子의 아들로, 이름은 斯이며 桓은 시호이다. 魯 定公 5년(기원전 505)부터 哀公 3년(기원전 492)까지 上卿으로 있었다. 그가 계평자의 뒤를 이었을 때, 계씨의 가신인 陽虎가 노나라의 국정을 전단하고 있었다. 양호는 계환자를 가둔 뒤 그를 죽이려 했는데, 계환자는 맹손씨에게 달아났다. 양호가 三桓을 공격하였으나 패하여 달아나자, 계환자는 다시 노나라의 국정을 관장하였다.
역주5 : 대전본에는 ‘威’로 되어 있으나, 宋代의 國諱이다.
역주6 强生……之也 : 현존하는 蘇軾의 저작에서 이 말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 말은 《論語集註》 〈衛靈公〉 제3장에 보이며, 宋나라 蔡節의 《論語集說》에서도 이 말이 蘇軾의 말이라고 하였다.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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