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大學衍義(2)

대학연의(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대학연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原注
9-12-나(按)
按 此章 專爲魯而言也 自文公薨으로 殺子赤‧立宣公注+赤, 嫡也. 宣公, 庶也.而君失其政하니 至此歷
9-12-나(按)
[臣按] 이 장은 전적으로 魯나라 때문에 말한 것입니다. 노나라에서는 文公이 죽은 뒤로 公子 遂가 문공의 아들 赤을 죽이고 宣公을 옹립하여注+‘赤’은 문공의 적자이다. ‘宣公’은 문공의 서자이다. 임금이 그 정권을 잃었으니, 이때에 이르러 다섯 公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專國政으로 歷四世하여
子而爲陽虎 所執이라 夫祿去公室而政歸大夫하니 大夫之勢 宜益强也로되
季孫宿이 국정을 전단한 뒤로 4대를 거쳐 季桓子에 이르러 陽虎에게 장악되었습니다. 녹을 주는 권한이 공실에서 떠나 정권이 대부에게 귀속되었으니 대부의 권세가 더 강성해져야 마땅했으나,
而三家之子孫 乃反微弱而不振 何邪 蓋以臣僭君者 逆理亂常之事 其能久乎
三家의 자손들이 도리어 미약해지고 부진했던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신하로서 임금의 권한을 참람하게 행하는 것은 이치를 거스르고 常道를 어지럽히는 일이니, 오래갈 수 있겠습니까.
善乎 先儒蘇軾之說
다음과 같은 先儒 蘇軾의 말이 좋습니다. 소식이 말하기를, 강함은 안정에서 생기고 안정은 상하의 분수가 정해지는 데에서 생기는 법인데,
今諸侯‧大夫 皆陵其上則無以令其下矣 故皆不久而失之也라하니 嗚呼 其亦可爲後世人臣顓國者之戒歟인저
지금 제후와 대부가 모두 자신의 윗사람을 능멸하였으니 자신의 아랫사람들을 부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모두 오래지 않아 실권했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 이 또한 후세의 신하로서 국정을 전단하는 자의 경계가 될 만합니다.
以上 言君臣之名分하니 分雖嚴而上下之交 不可無禮 故以君使臣之禮 繼之하노이다
이상은 군신간의 名分을 말하였습니다. 분수는 비록 엄하지만 상하간의 교제에는 禮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임금이 신하를 부리는 禮에 관한 내용으로 이어놓았습니다.
역주
역주1 公子遂 : 襄仲을 가리킨다. 기원전 609년 그는 魯 文公의 첫째 妃인 齊나라 哀姜의 소생들을 죽이고 둘째 妃인 敬嬴의 소생 俀(퇴)를 옹립하였는데, 이가 宣公이다. 《史記 卷33 魯周公世家》
역주2 五公 : 宣公‧成公‧襄公‧昭公‧定公을 말한다.
역주3 季孫宿 : ?~기원전 535. 季文子의 아들로, 숙은 이름이다. 魯 襄公 11년(기원전 562)에 노나라 公室에 소속된 上軍과 下軍을 上軍‧中軍‧下軍으로 나누어 각각 계손씨‧맹손씨‧숙손씨가 1軍씩 장악하게 하였다. 그 후 昭公 5년(기원전 562)에는 다시 중군을 폐하고 공실의 군대를 넷으로 나누어 그중 둘을 계손씨가 차지하게 함으로써 노나라의 대권을 장악하였다. 시호가 武이므로 季武子라고도 한다.
역주4 桓子 : ?~기원전 492. 季平子의 아들로, 이름은 斯이며 桓은 시호이다. 魯 定公 5년(기원전 505)부터 哀公 3년(기원전 492)까지 上卿으로 있었다. 그가 계평자의 뒤를 이었을 때, 계씨의 가신인 陽虎가 노나라의 국정을 전단하고 있었다. 양호는 계환자를 가둔 뒤 그를 죽이려 했는데, 계환자는 맹손씨에게 달아났다. 양호가 三桓을 공격하였으나 패하여 달아나자, 계환자는 다시 노나라의 국정을 관장하였다.
역주5 : 대전본에는 ‘威’로 되어 있으나, 宋代의 國諱이다.
역주6 强生……之也 : 현존하는 蘇軾의 저작에서 이 말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 말은 《論語集註》 〈衛靈公〉 제3장에 보이며, 宋나라 蔡節의 《論語集說》에서도 이 말이 蘇軾의 말이라고 하였다.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