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13-15-나(按)
[臣按] 한유의 글에서 불교와 도교를 깊이 배척하였으니, 유학의 道를 보위하는 데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대략을 발췌하여 이 책에 수록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한유가 이른바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전수하고, 순임금이 우왕에게 전수하고, 맹자가 죽자 그 전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라는 것은 또한 그 개략적인 것만 말했을 뿐 서로 전수한 내용은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서로 전수한 내용은 과연 무슨 道이겠습니까?
요임금‧순임금‧우왕‧탕왕의 ‘中’과 孔子‧顔子의 ‘仁’과 曾子의 ‘忠恕’와 子思의 ‘中’‧‘誠’과 맹자의 ‘仁義’가 이른바 서로 전수한 도입니다.
우리 유가의 성현들이 서로 전수한 내용이 바르다는 것을 안다면, 저 이단의 그릇됨을 변론하지 않고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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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몇 가지 가운데 中‧仁‧誠은 모두 道의 全體이니, 이 세 가지는 과연 하나이겠습니까? 둘이겠습니까?
신이 논해보건대, ‘중’이라는 것은 바른 천리로서 치우친 데가 없는 것이고, ‘인’이라는 것은 공변된 천리로서 사욕에 가려지지 않은 것이며,
‘성’이라는 것은 참된 천리로서 거짓이 섞이지 않은 것이니, 비록 설명하는 관점은 달라도 그 도는 하나일 뿐입니다.
《書經》 〈虞書〉에서 ‘중’은 말했으나 ‘인’은 언급하지 않았고 《論語》에서 ‘인’은 말했으나 ‘성’은 언급하지 않았으니, 그것이 어찌 한 가지에 치우쳐서이겠습니까. ‘중’하면 ‘인’하지 않음이 없고, ‘인’하면 ‘성’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 고원하여 공허에 빠져 있고 비루하여 功利에 매몰되어 있는 것에 어찌 이른바 ‘중’이 있겠으며, 잔혹하고 각박한 것에 어찌 이른바 ‘인’이 있겠으며, 기만하고 허탄한 것에 어찌 이른바 ‘성’이 있겠습니까.
이것으로 저것을 헤아려보건대, 이른바 ‘이적과 華夏의 구분[夷夏之分]’이며 ‘천양지차[霄壤之隔]’입니다. 임금이 두 가지의 분별에 대해 밝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