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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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直而和하니 國人 說之러니 鄢將師 爲右領注+右領, 官名.하여比而惡之注+謂二人相比附, 而忌疾郤宛也.하더니
22-4-가
楚나라의 郤宛이 정직하면서도 온화하기에 國人들이 그를 좋아하였다. 鄢將師가 右領으로 있으면서注+‘右領’은 벼슬 이름이다. 費無極과 편당을 지어 극완을 미워하였는데,注+두 사람이 서로 편당을 지어 郤宛을 시기하고 질투했다는 것을 말한다.
令尹 賄而信讒이라 無極 譖郤宛焉하여 謂子常曰 子惡 欲飮子酒注+子惡, 郤宛字.라하고
令尹 子常이 뇌물을 받고 참언을 믿는 사람이었다. 비무극이 극완을 참소하고자 자상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子惡(郤宛)이 그대에게 술을 대접하고 싶어 합니다.”注+‘子惡’은 극완의 자이다.
又謂子惡호대 令尹 欲飮酒於라한대 子惡 曰 我 賤人也 不足以辱令尹이니
또 자악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영윤이 그대의 집에서 술을 얻어 마시고 싶어 합니다.” 자악이 말하였다. “나는 신분이 낮은 사람이라 영윤을 왕림하게 할 수 없습니다.
令尹 將必來辱이면 爲惠已甚이라 吾無以酬之 若何 無極 曰 令尹 好甲兵하니 出之하라 擇焉注+擇取以進子常也.호리라하고
영윤이 앞으로 꼭 왕림하겠다면 은혜가 너무 커서 내가 갚을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비무극이 말하였다. “영윤이 갑옷과 무기를 좋아하니 그대가 내오십시오. 내가 골라주겠습니다.”注+‘擇’은 골라 뽑아서 子常에게 바친다는 뜻이다.
取五甲‧五兵하여 曰 寘諸門하라 令尹 至必觀之 而從以酬之하라하여늘
비무극이 갑옷 다섯 벌과 무기 다섯 개를 고르고 말하였다. “이것들을 문에 두십시오. 영윤이 오면 반드시 구경할 테니 그에 따라 답례하십시오.”
하여 帷諸門左注+張帷, 陳甲兵其中.러니 無極 謂令尹曰 吾 幾禍子랏다 子惡 將爲子不利注+言欲害令尹也.하여 甲在門矣나니 子必無往하라
접대하는 날이 되어 子惡이 대문 왼편에 장막을 쳤는데注+장막을 치고서 그 안에 갑옷과 무기를 진열한 것이다. 비무극이 令尹에게 말하였다. “내가 하마터면 그대에게 화를 끼칠 뻔했소. 자악이 그대를 해치려고注+영윤을 해하려고 한다는 것을 말한다. 갑옷을 문에 두었으니 그대는 절대로 가지 마십시오.”
令尹 使視郤氏하니 則有甲焉이라 不往하고 召鄢將師而告之하여 遂攻郤氏하고 且爇之하니 子惡 自殺이어늘
영윤이 사람을 시켜 극완의 집을 살펴보게 하자 갑옷이 문에 있었다. 영윤이 극완의 집에 가지 않고 鄢將師를 불러 이 일을 알리고서 마침내 극완의 집을 공격하고 불까지 지르니 자악이 자살하였다.
盡滅郤氏之族黨하고與其弟完及佗注+令終, 子. 與晉陳及其子弟注+晉陳, 楚大夫, 皆郤氏之黨.하다
그러자 영윤이 郤氏의 族黨들을 멸족하고 陽令終과 그 아우인 陽完과 陽佗,注+‘令終’은 陽匄의 아들이다. 晉陳과 그 자제들을注+‘晉陳’은 楚나라의 大夫이니, 진진과 그 자제들 모두 郤氏의 黨與이다. 죽였다.
楚郤宛之難 國言 未已하여 莫不謗令尹注+進胙, 國中祭祀也. 謗, 詛也.이러니
楚나라 郤宛이 화를 당한 일에 國人의 비방이 끊이지 않아서 도성 내에서 제사를 지내고 고기를 바치는 사람 가운데 令尹을 비난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注+‘進胙’는 도성 내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謗’은 ‘비방하다’라는 뜻이다.
言於子常曰注+沈尹, 楚賢大夫. 夫左尹注+郤宛.與中廐尹注+陽令終. 莫知其罪어늘 而子 殺之하여 以興謗하여 至于今未止하니
沈尹戌이 子常에게 말하였다.注+‘沈尹戌’은 楚나라의 어진 大夫이다. “저 左尹(郤宛)과注+‘左尹’은 郤宛이다. 中廐尹(陽令終)은注+‘中廐尹’은 陽令終이다. 그들의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그대가 이들을 죽임으로써 비방을 초래하여 지금에 이르도록 그치지 않습니다.
夫無極 楚之讒人也 人莫不知하나니 喪太子建하며 殺連尹奢注+連尹, 官名, 卽伍奢也.하여 屛王之耳目하여 使不聰明注+屛, 蔽也.하니
저 비무극은 楚나라의 讒人이라 사람들이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太子 建을 잃게 하고 連尹 伍奢를 죽여注+‘連尹’은 벼슬 이름이니, 바로 伍奢이다. 왕의 귀와 눈을 가려서 밝게 듣고 밝게 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注+‘屛’은 ‘가리다’라는 뜻이다.
不然이면 平王之溫惠共儉 有過注+楚二先君.하여 無不及者로되 所以不獲諸侯 邇無極也注+邇, 親近之也.어늘
그렇지 않았다면 平王의 온화함과 은혜로움, 공손함과 검소함이 成王과 莊王을注+‘成’‧‘莊’은 초나라의 두 先君(成王‧莊王)이다. 능가하여 두 왕에 미치지 못할 것이 없는데, 제후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이유는 비무극을 가까이해서입니다.注+‘邇’는 가까이한다는 뜻이다.
今又殺三不辜하여 以興大謗하니 幾及子矣 子而不圖 將焉用之리오
그런데 지금 또 무고한 세 사람(郤宛‧陽令終‧晉陳)을 죽여 큰 비방을 불러일으켰으니, 아마도 그대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그대가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장차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新有君注+光新立也.하여日駭하니 楚國 若有 子其危哉인저
吳나라는 새로 임금이 즉위하여注+光(闔閭)이 이제 막 즉위한 것이다. 변경이 날마다 소란스러우니 초나라에 만약 큰일이 생기면 그대는 위태로울 것입니다.
知者 除讒以自安也어늘 今子 愛讒以自危也하니 甚矣 其惑也 子常 曰 是瓦之罪注+瓦, 子常名. 敢不良圖
지혜로운 사람은 참언을 없애 스스로를 평안하게 하는데 지금 그대는 참소하는 자를 좋아하여 스스로를 위태롭게 하니, 너무 심합니다. 그 어리석음이여.” 子常이 말하였다. “이는 저의 죄이니,注+‘瓦’는 子常의 이름이다. 감히 적절하게 대책을 강구하지 않겠습니까.”
하여 以說于國하니 謗言 乃止하다
9월에 자상이 費無極과 鄢將師를 주살하고 그들의 宗族을 멸족함으로써 國人에게 해명하자 비방하는 말이 마침내 그쳤다.
역주
역주1 22-4-가 : 《춘추좌씨전》 昭公 27년(기원전 515) 기사에 보인다.
역주2 郤宛 : ?~기원전 515. 춘추시대 楚나라의 대신이다. 자는 子惡으로 伯州犁(백주리)의 아들이다. 楚 昭王 때 左尹이 되었는데, 인품이 훌륭하여 國人들의 옹호를 받았다.
역주3 費無極 : 22-3-가 각주 ‘費無極’ 참조.
역주4 子常 : 생몰년은 자세하지 않다. 囊瓦(낭와)를 가리킨다. 子常은 낭와의 자이다. 楚 平王 10년(기원전 519)에 令尹이 되었으며, 楚 昭王 8년(기원전 508)에는 吳나라를 공격했다가 패했다. 2년 뒤에 오나라가 초나라를 쳐서 郢을 함락시키자 鄭나라로 달아났다.
역주5 子氏 : 竹添光鴻은 ‘子氏’가 《呂氏春秋》 〈愼行〉에 ‘子之家’로 되어 있다는 것에 근거하여 ‘氏’를 ‘집’으로 보았다. 楊伯峻은 《呂氏春秋》에서 《춘추좌씨전》을 인용하면서 당시에 쓰던 말로 바꾼 것으로 해석하였다. 《竹添光鴻, 左氏會箋, 成都:巴蜀書社, 2008, 2064쪽》 《楊伯峻, 春秋左傳注(修訂本), 北京:中華書局, 1990, 1485쪽》
역주6 : 대전본에는 ‘享’으로 되어 있다.
역주7 陽令終 : ?~기원전 515. 춘추시대 楚나라 사람으로, 中廐尹(중구윤)을 지냈다. 《春秋左氏傳注疏 27年 杜預注》
역주8 陽匄 : ?~기원전 519. 춘추시대 楚나라의 대신이다. 성은 羋(미)이고, 陽은 氏이며, 자는 子瑕(자하)이다. 楚 穆王의 증손이자 陽令終의 부친으로 벼슬이 令尹에 이르렀다. 平王 10년(기원전 519)에 오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원군을 이끌고 가다가 陣中에서 병사하였다. 《春秋左氏傳注疏 昭公 14年‧17年‧23年, 17年 杜預注》
역주9 進胙者 : 楊伯峻에 따르면, ‘胙’는 廟에 제사를 지냈던 고기로 膰 또는 燔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제후가 제사를 지낸 뒤에는 관련이 있는 경대부들에게 이 고기를 보냈는데, 여기에서 ‘進胙者’는 고기를 보낸 대상으로 보았다. 趙生群에 따르면 ‘進胙者’는 卿大夫를 가리킨다. 이들이 제사를 지낸 뒤에는 胙(제사 지낸 고기)를 임금에게 바친다. 《楊伯峻, 春秋左傳注, 北京:中華書局, 1995, 1487~1488쪽》 《趙生群, 春秋左傳新注, 西安:陝西人民出版社, 2008, 916쪽》
역주10 沈尹戌 : ?~기원전 506. 춘추시대 초나라 사람으로 楚 莊王의 증손이다. 일설에는 장왕의 손자라고도 한다. 벼슬은 左司馬에 이르렀다. 昭王 10년(기원전 506)에 오나라가 초나라를 침공했을 때 오나라 군대와 맞서 싸우다가 중상을 입고는 포로가 되기를 수치스러워하여 부하의 손을 빌려 자결하였다. 《中國歷史大辭典 先秦史卷編纂委員會 編, 中國歷史大辭典 先秦史, 上海辭書出版社, 1996, 268~269쪽》
역주11 : 저본‧대전본‧사고본에는 ‘戍’로 되어 있으나, 통행본 《춘추좌씨전》‧《史記》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역주12 : 저본‧사고본에는 ‘戍’로 되어 있으나, 통행본 《춘추좌씨전》‧《史記》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역주13 : 사고본에는 ‘毁’로 되어 있다.
역주14 : ?~기원전 626(재위 기원전 671~기원전 626). 楚 成王을 가리킨다. 춘추시대 楚나라의 20대 임금으로, 이름은 頵(군) 또는 惲(운)이며, 18대 임금인 文王의 아들이다. 형이자 19대 임금인 堵敖(도오)를 시해하고 즉위하였다. 즉위 이후에는 선정을 베풀고 국토를 개척하였으며, 기원전 650년 泓水(홍수) 전투에서는 宋나라 군대를 이겼다. 후에 기원전 644년에 벌어진 城濮(성복) 전투에서는 晉나라 군대에 패배를 당했다. 만년에는 商臣을 태자로 삼았다가 폐하려고 했을 때 상신이 군대를 이끌고 왕궁을 포위하자 목을 매어 자결했다.
역주15 : ?~기원전 591(재위 기원전 614~기원전 591). 楚 莊王을 가리킨다. 춘추시대 楚나라의 22대 임금으로, 이름은 侶(려) 또는 旅이며, 成王의 손자이자 穆王의 아들이다. 春秋五霸의 한 사람으로, 즉위 후에 孫叔敖(손숙오)와 같은 인재를 발탁하여 내정을 닦았으며, 夷狄들을 몰아내고 영토를 확장하였다. 기원전 606년에는 陸渾을 공격하고 雒邑(낙읍)에 이르렀는데, 이때 王孫滿에게 周나라 왕실에 있는 九鼎의 무게를 물어 천하를 엿볼 뜻을 내비치기도 하였다. 이후 陳나라, 鄭나라, 晉나라 등과 전쟁을 벌여 승리함으로써 중원의 제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역주16 : 대전본‧사고본에는 ‘埸(역)’으로 되어 있다.
역주17 大事 : 林堯叟에 따르면, ‘대사’는 다른 변고를 말한다. 《左傳杜林合注 卷42 昭公 28年 林堯叟注》
역주18 九月……其族 : 楚 昭王 1년(기원전 515) 9월 기미일(14일)의 일이다.

대학연의(4)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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