之在蜀也
注+天寶十四載安祿山反, 明皇幸蜀.에 이 以辯學得幸
이러니 時
에 이 在鳳翔
하사 每命宰相
에 輒啓聞
이러시니
及
이 爲將
에 帝曰 非破賊才也
라 若
이 在
면 賊不足滅
이리라 至
하여 曰
라
因歷評十餘人 皆當
하시고 至
하여 曰 是子
가 妬賢疾能
이 無與比者
니라 士淹
이 曰 陛下
가 誠知之
신댄 何任之久
잇고 帝
가 默不應
하시다
16-7-가
당 명황唐 明皇(
현종玄宗)이
촉蜀에 있을 때
注+천보天寶 14년(755)에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 명황明皇이 촉蜀으로 파천播遷하였다. 급사중 배사엄給事中 裴士淹이 말재주와 학식으로 현종의 총애를 받았다. 이때
숙종肅宗이
봉상鳳翔에 있으면서
재상宰相을 임명할 때마다 현종에게 보고를 올렸는데,
방관房琯이 장군에 임명되어 그 보고가 올라오자 현종이 말하였다. “반적叛賊을 격파할 재목이 아니다. 만약 요숭姚崇이 살아 있었다면 반적은 토멸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송경宋璟에 대해 말이 나오자 현종이 말하였다. “그 사람은 정직함을 팔아 명성을 얻은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어서 10여 사람들에 대해 하나하나 평한 것이 모두 합당하였다. 이임보李林甫에 대해 말이 나오자 현종이 말하였다. “이자는 어진 사람을 시기하고 유능한 사람을 미워했던 것이 비길 자가 없다.” 배사엄이 말하였다. “폐하께서 정말로 그러한 줄 아셨다면 왜 그를 오래도록 임용하셨습니까?” 현종은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