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大學衍義(4)

대학연의(4)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대학연의(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原注
23-5-나(按)
按 魏 盡忠無隱하니 非姦邪小人之所便也 故設爲飛謗以間染之하니
23-5-나(按)
[臣按] 魏徵이 충성을 다하여 숨김이 없으니 간사한 소인에게는 유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때문에 소인들이 비방하는 말을 지어서 太宗에게 모함을 하였으니,
使太宗蓄之胸中하여 不爲辨白則疑 一萌 姦言 益乘之而入矣
만일 태종이 이 말을 가슴에 담아두고 분명히 분변하지 않았다면 의심이 한 번 싹틈에 간사한 말이 더욱 그 의심을 타고 들어갔을 것입니다.
然使之按驗者 或非其人하여 得任其事 必將組織以成其罪
그러나 보내어 조사하도록 한 사람이 혹여 적임자가 아니어서 權萬紀와 같은 무리가 그 일을 맡게 되었다면 틀림없이 날조하여 그 죄가 성립되도록 했을 것입니다.
惟帝之明 不以按驗으로 屬之小人而屬之彦博하시니 彦博 固非之倫이나 然亦當時之良臣也
생각건대 聖明한 태종이 그 조사를 소인에게 맡기지 않고 溫彦博에게 맡겼으니, 온언박은 진실로 王珪나 위징 같은 무리는 아니었으나 또한 당시의 훌륭한 신하였습니다.
故能直之枉하여 使帝不以浮言으로 罪賢者하니 其益 大矣
이 때문에 위징의 억울함을 바로잡아 태종으로 하여금 유언비어로 현자를 죄주게 하지 않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이니, 나라에 유익함이 컸습니다.
之枉 雖直而左右之爲讒者 不聞顯正其罪하니 是亦未爲盡善也
그러나 위징의 억울함은 비록 바로잡혔다 하나 참소했던 좌우 신하들에 대해 그 죄를 드러내어 바로잡았다는 말은 들리지 않으니, 이런 점에서 또한 지극히 훌륭했던 것은 아닙니다.
卽此一事而言컨대 太宗之得 有二 其失 有一이니 人主 可不鑒之哉잇가
이 한 가지 일에 나아가서 말한다면 태종이 잘한 것은 둘이고 잘못한 것은 하나이니 군주가 경계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역주
역주1 : 대전본에는 ‘證’으로 되어 있으나, 北宋 仁宗 趙禎을 피휘한 것이다.
역주2 : 사고본에는 ‘猜’로 되어 있다.
역주3 權萬紀 : ?~643. 唐 太宗의 셋째 아들 吳王 李恪(619~653)의 스승이다. 성정이 강직하고 직언을 잘하였다. 공적인 일로 房玄齡‧王珪‧溫彦博 등을 탄핵한 적이 있었는데, 태종이 이를 좋게 여겨 매우 예우하였다. 다만 〈大寶箴〉을 지어 태종에게 賞讚을 받았던 張蘊古(?~631)가 大理丞으로서, 미쳐서 요망한 말을 지껄이는 李好德이란 자의 사건을 맡아 이호덕이 미쳤다는 이유로 죄를 묻지 않은 일이 있었다. 당시 治書侍御史였던 권만기가 장온고의 고향이 相州이고 이호덕의 형이 相州刺史이기 때문에 이호덕을 비호한 것이라고 탄핵하여 장온고를 棄市刑에 처하도록 만들자, 魏徵이 “권만기 등 소인이 대체를 알지 못하여 고자질을 정직함으로 여기고 참소를 충성으로 여긴다.[萬紀等小人 不識大體 以訐爲直 以讒爲忠]”라고 간언하였다. 태종이 뉘우치고 이후로는 사형을 판결할 때 3번을 覆奏하도록 하였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지나친 면이 있었다. 권만기는 尙書左丞을 거쳐 태종의 다섯째 아들 齊王 李祐의 長史가 되었는데, 이우가 소인들과 어울리자 누차 간하였으나 그래도 듣지 않자 이를 태종에게 알렸다가 결국 이우에게 피살되었다. 시호는 敢이다. 25-12-가 참조. 《舊唐書 卷190上 文苑列傳上 張蘊古》 《新唐書 卷100 權萬紀列傳》 《資治通鑑 卷193 唐紀9 太宗 上之中 貞觀 5年》
역주4 王魏 : 王珪와 魏徵을 이른다. 王珪(571~639)는 당나라 초기의 명재상이다. 자는 叔玠이며 太原 祁 사람이다. 남조 梁나라의 명장 王僧辯(?~555)의 손자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성정이 담박하여 안빈낙도하였다. 당나라가 건립되자 태자 李建成의 中舍人이 되었으며, 태종 때에는 諫議大夫, 黃門侍郞, 侍中, 同州刺史, 禮部尙書 등을 역임하고 永寧郡公에 봉해졌다. 房玄齡‧李靖‧溫彦博‧魏徵 등과 함께 國政을 담당하여 남의 장점을 알아보고 직임을 맡기는 데 뛰어났다. 病死하였는데, 태종이 그의 부음을 듣고 소복을 입고서 오랫동안 애도하였다. 시호는 懿이다. ‘魏徵’은 23-5-가 ‘魏徵’ 주석 참조.
역주5 : 대전본에는 ‘證’으로 되어 있으나, 北宋 仁宗 趙禎을 피휘한 것이다.
역주6 : 대전본에는 ‘證’으로 되어 있으나, 北宋 仁宗 趙禎을 피휘한 것이다.

대학연의(4)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