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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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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14-1-나(按)
按 五覇 桓‧文 爲盛注+五覇者, , 皆春秋列國之君而覇於諸侯者也.이라 故宣王 欲聞其事也어늘
14-1-나(按)
[臣按] 五霸 가운데 齊 桓公과 晉 文公이 가장 강성하였기注+‘五覇’는 齊 桓公‧晉 文公‧秦 穆公‧楚 莊王‧宋 襄公인데, 모두 춘추시대 列國의 임금으로서 제후들에게 패자가 된 이들이다. 때문에 齊 宣王이 그들의 事績을 들어보려고 하였습니다.
孟子 直謂仲尼之徒 無道之者 所以深沮宣王羨慕覇功之志而欲其進於王道也
그런데 맹자가 다만 仲尼의 문도들 중에는 그것을 말하는 이가 없다고 한 것은 제 선왕이 霸者의 功業을 羨望하는 뜻을 강하게 저지하여 왕도로 나아가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王道 甚高而難이어늘 孟子 斷之以一言曰 保民而王이라하시니 保云者 愛護育養之意 書所謂 是也
세상 사람들은 왕도를 매우 高遠하여 행하기 어렵다고 여겼는데 맹자는 한마디로 단언하기를 “백성을 안정시키고서 왕도를 행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안정시키다[保]’라고 하는 것은 애호하고 양육한다는 뜻이니, 《書經》에 이른바 “갓난아이를 보호하듯이 하라.[若保赤子]”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王道 不外乎保民하고 而保民 又不外乎此心하니 卽宣王愛牛不忍殺之心하여 知其可以保民無難也니이다
왕도는 백성을 안정시키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고, 백성을 안정시키는 것은 또 이러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제 선왕이 소를 사랑하여 차마 죽이지 못하는 마음에 근거하여 그가 무난하게 백성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原注
或者 見宣王以羊易牛하고 謂其出於貪吝이로되 而孟子 獨曰 是心 足以王矣라하시니
어떤 이가, 제 선왕이 소를 양으로 바꾸는 것을 보고 그것이 탐욕과 인색함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맹자는 유독 “이러한 마음이 충분히 왕도를 행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으니,
所以警覺宣王하여 使知只此一心 便足以王天下 其所指示 亦精切矣어늘 而宣王 猶不悟本心之所以然也
제 선왕을 警覺시켜 오로지 이 한 마음이 바로 충분히 천하에 왕도를 행할 수 있음을 알게 한 것입니다. 맹자가 가르쳐준 것이 또한 정밀하고 절실하였는데 제 선왕은 여전히 본마음이 그러한 이유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於是 孟子 復曰 無傷也 是乃仁術也라하시니 是又警覺宣王하여 使知前日以羊易牛 是乃行仁之術이니
이에 맹자가 다시 말하기를,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仁을 행하는 要領입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또 제 선왕을 경각시켜 전날 소를 양으로 교체한 것이 바로 인을 행하는 요령이라는 것을 알게 한 것입니다.
謂法之巧者 蓋處事 不可無法이니 雖有此心이나 而無法以處之 則亦徒善而已
요령은 정교한 방법을 말합니다.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방법이 없어서는 안 되니, 비록 이러한 마음이 있더라도 마음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면 또한 그저 선하기만 한 것일 뿐입니다.
朱熹
同生而異類 故用之以禮 而不忍之心 施於見聞之所及이라
朱熹가 말하기를, “인간과 짐승이 생명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종류에 있어서는 다르다. 그러므로 인간이 짐승을 禮에 맞게 쓰면서도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은 시각과 청각이 닿는 영역에서 발휘된다.
其所以遠庖廚者 亦以預養此心而廣爲仁之術也라하니이다
군자가 푸줏간을 멀리하는 까닭은 또한 이러한 마음을 미리 키워서 인을 행하는 요령을 확대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原注
宣王 聞此하고 乃始悅孟子之知其心이나 而亦未知王道之不外乎是也어늘
제 선왕이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맹자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 것에 대해 기뻐하였으나 또한 왕도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孟子 復爲一羽‧輿薪之譬하여 以明愛物之難而仁民之易하시니 宣王 旣能爲其所難하고 乃不能爲其所易 何哉
그러자 맹자는 다시 깃털 하나를 못 든다는 비유와 수레에 가득 실은 땔나무를 못 본다는 비유를 들어 사물을 사랑하기는 어렵고 백성을 사랑하기는 쉽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제 선왕이 능히 어려운 일은 해내고서 도리어 쉬운 일을 못한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張栻의 다음과 같은 설명이 훌륭합니다. “제 선왕이 소를 보고서 차마 죽이지 못한 것은 가려진 것이 없었으므로 사물을 사랑하는 단서가 발현된 것이며,
其不能恩於民者 有以蔽之而仁民之理 不著也라하니 斯言也 足以中宣王之病矣로소이다
그가 백성들에게까지 은택을 미루어나가지 못한 것은 가려진 것이 있어 백성을 사랑하는 이치가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이 말이 제 선왕의 문제점을 충분히 짚어냈습니다.
原注
老老幼幼而下則告宣王以行仁之序也 聖人之視天下 莫不欲歸吾仁而其行則自近始
“나의 부형을 부형으로 공경하고 나의 자제를 자제로 사랑한다.[老老幼幼]”라는 말 이하는 제 선왕에게 仁을 실천하는 단계를 일러준 것입니다. 성인이 천하 사람들을 보는 데 있어서 나의 仁으로 귀의하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실행은 가까운 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故親親而仁民하고 仁民而愛物하나니 其序 不可紊也
그러므로 친족을 친히 하고서 백성을 사랑하며 백성을 사랑하고서 사물을 아끼는 것이니, 그 단계를 어지럽혀서는 안 됩니다.
敬吾父兄하며 慈吾子弟 所謂親親也 推之以及人之父兄子弟 所謂仁民也
나의 부형을 공경하며 나의 자제를 사랑하는 것은 이른바 ‘친족을 친히 하는 것[親親]’이며, 이를 미루어 남의 부형과 자제에게 미치는 것은 이른바 ‘백성을 사랑하는 것[仁民]’이니,
由是 達之於天下하여 雖昆蟲草木이나 無不被其澤者 不過擧此之心하여 加諸彼而已
이러한 단계에 따라 천하 사람들에게까지 펴나가서 비록 벌레와 초목이라 할지라도 그 은택을 입지 않는 게 없는 것은 이러한 마음을 들어 저기에 베푸는 데 불과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推恩足以保四海 此心 流行하여 雖遠必曁也 不推恩無以保妻子 此心 壅遏하여 雖近不周也
은택을 미루어나가면 충분히 천하를 보전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마음이 흘러가서 비록 멀더라도 반드시 도달하기 때문이며, 은택을 미루어나가지 못하면 처자식조차 보전하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마음이 막혀서 비록 가깝더라도 두루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由親以及民하고 由民以及物 古人之善推也 能及物而不能及民 宣王之不善推也
친족에서부터 백성에게 미치고 백성에서부터 사물에 미쳤던 것은 옛사람들이 잘 확대해나갔기 때문이며, 사물에는 능히 미치고도 백성에게 미치지 못했던 것은 제 선왕이 잘 미루어나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原注
發政施仁而下則告宣王以保民之實也 其目 不過於任賢하여 使士樂仕於朝하며
“훌륭한 정사를 펴고 인을 베푼다.[發政施仁]”라는 말 이하는 제 선왕에게 백성을 보호하는 실제를 일러준 것입니다. 그 조목은, 현인을 임용하여 선비들로 하여금 조정에서 벼슬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며,
薄其賦斂하여 使農樂耕于野하며 寬其征稅하여 使商賈樂藏於市하며 行旅樂出於塗 所謂王道者 蓋如此
賦稅를 가볍게 하여 농민들로 하여금 田野에서 경작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며, 세금 징수를 줄여 상인들이 시장에서 장사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며, 나그네들이 길에 다니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니, 이른바 왕도라는 것이 대체로 이러합니다.
豈有甚高難行者哉리오 惜宣王終不悟也로소이다
어찌 매우 高遠하여 행하기 어려운 것이 있겠습니까. 제 선왕이 끝내 깨닫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역주
역주1 齊桓 : 14-1-가의 ‘齊桓’ 주석 참조.
역주2 晉文 : 14-1-가의 ‘晉文’ 주석 참조.
역주3 秦穆 : ?~기원전 621. 재위 기원전 659~기원전 621. 춘추시대 秦나라의 제9대 임금으로 성은 嬴(영), 이름은 任好로, 穆은 시호이다. 穆은 문헌에 따라 ‘繆(목)’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秦 德公의 셋째 아들이자 成公의 동생으로, 즉위한 후 百里奚‧蹇叔 등과 같은 인재를 등용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다. 동으로는 河西 지역을 攻取하였으며 서로는 西戎의 12개 나라들을 공격하여 서융의 패자가 되었다. 기원전 650년에는 梁나라에서 망명 중이던 晉나라 公子 夷吾(晉 惠公)에게 병력을 파견하여 그의 즉위를 도왔으며, 14년 후에는 公子 重耳(晉 文公)의 즉위도 도왔다. 이듬해인 기원전 635년에는 진 문공과 함께 王子 帶가 일으킨 난을 평정하여 周 襄王이 복위하도록 하였다.
역주4 楚莊 : ?~기원전 591. 재위 기원전 613~기원전 591. 춘추시대 楚나라의 임금으로 성은 熊, 이름은 侶 또는 旅로, 莊은 시호이다. 楚 穆王의 아들로, 즉위한 뒤 伍擧‧蘇從‧孫叔敖 등과 같은 賢臣을 중용하여 내정을 정비하고 국력을 강화하였다. 庸나라와 若敖氏를 멸망시키고 宋‧舒‧陳‧鄭 등의 나라를 쳐서 패배시켰으며, 周나라 교외에서 閱兵을 하고 周나라 왕실에 있는 九鼎의 輕重을 물어보았다. 이로써 춘추시대의 패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역주5 宋襄 : ?~기원전 637. 재위 기원전 650~기원전 637. 춘추시대 宋나라의 임금으로 성은 子, 이름은 玆甫 또는 玆父로, 襄은 시호이다. 宋 桓公의 아들로 庶兄 目夷를 재상으로 삼았다. 기원전 643년 楚 成王과 孟 땅에 있으면서 맹주 자리를 다투다가 초나라 군대가 그를 잡아 송나라를 공격하였다. 그 후 성왕이 亳 땅에서 제후들과 회합할 때 풀려났다. 이듬해인 기원전 642년에 齊나라가 혼란하자 曹나라‧衛나라 등과 연합하여 齊나라를 정벌하여 안정시키고 齊 孝公을 즉위시켰다. 기원전 638년에 鄭나라를 공격하자 초나라가 정나라를 구원하였는데 초나라와 泓水에서 싸우다가 패배하여 부상을 입고 이듬해에 죽었다.
역주6 : 대전본에는 ‘之’로 되어 있고, 사고본에는 이 뒤에 ‘爲’가 있다.
역주7 : 사고본에는 없다.
역주8 : 대전본에는 없다.
역주9 若保赤子 : 《서경》 〈周書 康誥〉에 “병이 있는 것처럼 여겨 惡을 버리면 백성들이 모두 허물을 버릴 것이며, 갓난아이를 보호하듯이 하면 백성들이 편안히 다스려질 것이다.[若有疾 惟民其畢棄咎 若保赤子 惟民其康乂]”라는 내용이 보인다. 이 말은 周 武王이 아우인 康叔 封을 衛나라에 봉해주면서 한 말이다.
역주10 人與……術也 : 朱熹의 《孟子集註》 〈梁惠王 上〉 제7장에 보인다.
역주11 人與禽獸 : 통행본 《孟子集註》에는 ‘蓋人之於禽獸’로 되어 있다.
역주12 方其……著也 : 張栻의 《癸巳孟子說》 卷1에 보인다.
역주13 : 대전본‧사고본에는 ‘加’로 되어 있다.
역주14 : 사고본에는 없다.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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