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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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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皇后兄 可侯라하여시늘 與丞相議하신대
亞夫 曰 高皇帝約 非劉氏不王이요 非有功不侯라하시니 今信 雖皇后兄이나 無功하니 侯之非約也니이다 默然止러시니
其後 匈奴王이어늘 帝欲侯之以勸後어시늘 亞夫
彼背其主降陛下하니 陛下 侯之하시면 何以責人臣不能守節者乎잇고
曰 丞相議 不可用이라하시고 하시니 亞夫 因謝病하다


16-5-가4
두태후竇太后가 황후의 오라비 왕신王信로 봉할 만하다고 하자 경제景帝가 승상과 논의하였는데,
주아부가 말하였다. “고황제高皇帝의 맹약에, 유씨劉氏가 아니면 왕이 되지 못하고 공이 있지 않으면 가 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왕신이 비록 황후의 오라비이지만 공이 없으니 로 삼는 것은 맹약에 어긋납니다.” 경제가 잠자코 그만두었다.
그 후에 흉노왕 서로匈奴王 徐盧 등 여섯 사람이 나라에 투항해오자, 경제는 그들을 로 삼아 훗날을 권면하고자 하였는데 주아부가 말하였다.
“저들은 제 주인을 배반하고 폐하께 항복하였으니, 폐하께서 저들을 로 삼으신다면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하고 절개를 지키지 못하는 자들을 어떻게 꾸짖겠습니까.”
경제가 말하였다. “승상의 의론을 채용할 수 없다.” 마침내 서로 등을 모두 봉하여 열후列侯로 삼으니, 주아부가 이 때문에 병을 핑계 삼아 사직하였다.


역주
역주1 16-5-가4 : 관련 내용이 《史記》 卷57 〈絳侯周勃世家 周亞夫〉, 《前漢書》 卷40 〈周勃傳 周亞夫〉, 《資治通鑑》 卷16 〈漢紀8 景帝 下〉 中元 3년(기원전 147) 9월 기사 등에 보인다. 중원 3년에 두태후가 경제에게 王信을 제후로 봉했으면 한다는 의사를 밝히자 경제가 완곡하게 반대 의사를 펴면서 승상 주아부와 상의를 해보겠다고 하였다. 결국 주아부의 반대에 부딪쳐 일이 무산되었다. 또한 匈奴의 왕 徐盧 등이 항복해 와 경제가 이들을 제후로 봉하려고 할 때 주아부가 또 반대하였음에도 이들을 제후로 봉하자, 이해에 주아부가 병을 핑계로 사직하였다.
역주2 竇太后 : ?~?. 이름은 猗房으로 淸河 觀津 사람이다. 어려서 아비를 잃어 집안이 가난했는데 입궁하여 呂后의 시중을 들다가 代王 劉恒(文帝)에게 보내져 총애를 받았다. 유항이 즉위하자 황후가 되었는데, 병 때문에 실명하였다. 아들인 景帝가 즉위하자 皇太后로 높여졌으며, 손자인 武帝가 즉위하자 太皇太后로 높여져 권력을 장악하였다. 黃老學을 좋아하여 경제와 竇氏 일족들이 그 영향을 받았으며 儒學에 우호적이었던 竇嬰‧田蚡‧趙綰‧王臧 등을 배척하였다. 《史記》에는 建元 6년(기원전 135)에 병사했다고 되어 있으며, 《漢書》에는 元光 6년(기원전 129)에 병사했다고 되어 있다.
역주3 : ?~?. 王信을 가리킨다. 자는 長君으로 槐里 사람이다. 景帝의 황후인 王皇后의 오라비이다. 술을 좋아하여 경제의 총애를 받았다. 경제가 제후로 삼으려고 했다가 周亞夫의 반대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주아부가 죽은 뒤인 中元 5년(기원전 145)에서야 蓋(갑)侯로 봉해졌다. 시호는 靖이다. 《史記》에는 元狩 2년(기원전 121)에 죽었다고 되어 있으며, 《前漢書》에는 元光 2년(기원전 133)에 죽었다고 되어 있다.
역주4 徐盧 : ?~기원전 141. 본래 匈奴의 왕이었으나 景帝 때 漢나라에 투항하여 中元 3년(기원전 147)에 容城侯로 봉해졌다. 시호는 携이다.
역주5 六人 : 徐盧 외에 賜‧陸彊‧僕䵣(달)‧范代‧邯鄲을 가리킨다. 《資治通鑑 卷16 漢紀8 景帝 下 胡三省注》
역주6 盡忠 : 대전본‧사고본에는 없다. 통행본 《전한서》에도 없다.
역주7 乃悉……列侯 : 이때 徐盧를 容城侯로, 賜를 桓侯로, 陸彊을 遒侯로, 僕䵣(달)을 易侯로, 范代를 范陽侯로, 邯鄲을 翕侯로 봉하였다. 《資治通鑑 卷16 漢紀8 景帝 下 胡三省注》
역주8 : 대전본에는 ‘死’로 되어 있으나, 오자이다.

대학연의(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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