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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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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太子申生하고 又娶二女於戎하여러니 하고 以驪姬歸하여 生奚齊하고 其娣 生卓子하다
21-7-가1
晉 獻公이 태자 申生을 낳았고, 또 戎에서 두 여자를 맞이하여 重耳와 夷吾를 낳았다. 晉나라가 驪戎을 치고 驪姬를 데리고 돌아와 奚齊를 낳고 여희의 동생이 卓子를 낳았다.
驪姬嬖하여 欲立其子하여 賂外嬖梁五 與東關嬖五注+梁, 姓也, 五, 名也, 在闥之外者. 東關嬖五, 別在關塞者, 亦名五. 皆大夫, 爲獻公所嬖幸.하여 使言於公曰
여희가 총애를 받아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세우고자 하여 헌공의 총애를 받는 신하인 梁五와 東關嬖五에게 뇌물을 주고서注+梁은 姓이고 五는 이름이니 閨闥의 밖에 있는 자이다. 東關嬖五는 따로 關塞에 있는 자이니 역시 이름이 五이다. 이들 모두 대부로, 獻公의 총애를 받는 자들이다. 헌공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도록 하였다.
曲沃 君之宗也注+曲沃, 晉先君宗廟所在. 蒲與注+蒲‧屈, 皆邑. 君之疆也 不可以無主 宗邑 無主則民不威하고 疆場 無主則啓戎心하나니
“曲沃은 군주의 宗廟가 있는 邑이고注+‘曲沃’은 晉나라 선대 임금들의 종묘가 있는 곳이다. 蒲와 두 屈은注+‘蒲’와 ‘屈’은 모두 邑名이다. 군주의 邊疆이니 주관하는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종묘가 있는 邑에 주관하는 사람이 없으면 백성에게 위엄이 서지 않고 변경에 주관하는 사람이 없으면 융적에게 침입할 야심을 갖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若使太子 主曲沃而重耳‧夷吾 主蒲與屈則可以威民而懼戎이요 且旌君伐注+旌, 章也. 伐, 功也.하리라
만약 태자에게 곡옥을 주관하게 하고 중이와 이오에게 포와 굴을 주관하게 한다면 백성에게 위엄을 세우고 戎狄을 두렵게 할 수 있으며, 게다가 군주의 공훈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注+‘旌’은 ‘드러내다’라는 뜻이다. ‘伐’은 ‘功勳’이라는 뜻이다.
使俱曰注+俱, 謂同聲而言. 狄之廣莫 於晉爲都注+蒲‧屈, 本狄地名, 遣二公子往都之. 晉之啓土 不亦宜乎注+啓, 開也.
또 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하도록 하였다.注+‘俱’는 한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이른다. “이렇게 하면 융적의 광활한 땅이 晉나라에 領地가 될 것입니다.注+‘蒲’와 ‘屈’은 본래 狄의 地名인데, 두 공자를 보내 가서 采地로 삼도록 한 것이다. 晉나라가 영토를 개척하는 것이니 이렇게 하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습니까.”注+‘啓’는 ‘개척하다’라는 뜻이다.
晉侯 說之하여 使太子 居曲沃하고 重耳 居蒲하고 夷吾 居屈하고 唯二姬子 在絳注+絳, 晉國都.이러니
진 헌공이 이를 기뻐하여 태자를 곡옥에, 중이를 포에, 이오를 굴에 거주하도록 하고 오직 여희의 아들과 여희의 동생의 아들만이 絳에 있었다.注+‘絳’은 晉나라의 國都이다.
二五 卒與驪姬 譖群公子而立奚齊하니 晉人 謂之二五耦注+言二人共墾傷晉室, 如耦耕之墾土.注+傳.라하더라
양오와 동관폐오가 마침내 여희와 함께 공자들을 참소하여 해제를 태자로 세우니 晉나라 사람들이 양오와 동관폐오를 ‘二五耦’라고 불렀다.注+‘二五耦’는 두 사람이 함께 晉나라 公室을 손상시키는 것이 두 사람이 나란히 하여 땅을 가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注+이상의 내용은 《春秋左氏傳》에 보인다.
역주
역주1 21-7-가1 : 《春秋左氏傳》 魯 莊公 28년(기원전 666) 조에 보인다.
역주2 晉獻……夷吾 : 태자 申生의 생모는 齊 桓公의 딸인 齊姜으로 본래 晉 武公의 첩이었는데 진 헌공이 간음하여 부인으로 삼았다. 제강은 일찍 죽었다. 공자 重耳의 생모는 大戎 狐姬이고, 공자 夷吾의 생모는 小戎子이다.
역주3 晉獻公 : ?~기원전 651(재위 기원전 676~기원전 651). 춘추시대 晉의 군주인 姬詭諸이다. 曲玉 武公 稱의 아들이다. 즉위 후에 公族인 晉 文侯의 자손을 모두 죽이고 絳으로 천도하여 君位를 공고히 하였다. 5년(기원전 672)에 驪戎을, 16년(기원전 661)에 耿나라‧霍나라‧魏나라를, 22년(기원전 655)에 荀息의 假道滅虢의 계책으로 虢나라와 虞나라를 멸망시키는 등 세력 확장을 이루었다. 향후 晉의 패권 수립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으나 嬖妾 驪姬를 총애하여 그의 소생인 奚齊를 후사로 삼아, 태자였던 申生을 죽이고 공자 重耳와 夷吾를 축출하여 사후에 君位 계승을 둘러싼 혼란을 야기하였다.
역주4 重耳 : 기원전 671?~기원전 628(재위 기원전 636~기원전 628). 춘추시대 晉의 군주인 文公으로, 春秋五霸 중 한 사람이다. 獻公의 次男이며, 秦 穆公의 부인인 穆姬는 동복 누나이다. 驪姬의 무함을 받아 실각하고 翟나라로 망명하였다. 헌공의 사후에 동생인 惠公 夷吾가 즉위하자 견제를 받아 귀국하지 못하고 鄭나라, 楚나라, 齊나라 등 각국을 떠돌며 19년간의 망명 생활을 지속하였다. 기원전 636년 秦 穆公의 지지를 받아 군사를 이끌고 귀국하여 晉 惠公의 아들인 懷公을 죽이고 즉위하였다. 狐偃, 先軫, 趙衰(조최) 등 어진 신하를 중용하고 三軍六卿制를 시행하여 국력을 증대시켰다. 子帶의 난을 평정하여 周 王室을 안정시켰고, 기원전 632년 城濮에서 楚나라 軍을 대파하고 踐土會盟의 盟主가 되었다.
역주5 夷吾 : ?~기원전 637(재위 기원전 650~기원전 637). 춘추시대 晉의 군주인 惠公이다. 晉 獻公의 三男이자, 文公의 이복동생이다. 驪姬의 참소를 당해 梁나라로 달아났다가 秦나라로 망명하였다. 헌공의 사후에 里克 등이 奚齊와 卓子를 죽이고 그를 맞이하자, 秦나라에 대한 河西의 할양과 이극 등의 생존 보장을 약조하고 秦 穆公의 지원을 받아 귀국하여 즉위하였다. 이후 이극 등을 살해하고 하서 할양을 이행하지 않고 기근이 든 秦나라의 식량 지원 요청을 거부하였다. 이로 인해 기원전 645년 秦나라와의 전쟁이 발발하여 韓原 전투에서 패하여 포로가 되었다가 穆公의 부인인 穆姬의 탄원으로 석방되었다.
역주6 晉伐……卓子 : 《사기》 권39 〈晉世家〉에 따르면, 晉 獻公 5년(기원전 672)에 驪戎을 정벌하고 驪姬와 여희의 여동생을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그리고 晉 獻公 12년(기원전 665)에 여희가 奚齊를 낳았고, 晉 獻公 25년(기원전 652)에 여희의 여동생이 卓子를 낳았다.
역주7 驪戎 : 驪戎은 중국 고대 戎族의 일족이다. 《춘추좌씨전》의 杜預 注에 따르면, 驪戎의 國君은 姬姓으로 男爵이다. 京兆 新豐縣에 있었다. 지금의 陝西省 臨潼縣 동쪽에 있는 驪戎城으로 비정된다. 顧頡剛의 《史林雜識》 〈麗戎不在驪山〉에는 山西省 析城과 王屋山 사이에 소재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역주8 : 사고본에는 ‘門’으로 되어 있다.
역주9 二屈 : 《춘추좌씨전》의 杜預 注에 따르면, 平陽 北屈縣이다. 곧 지금의 山西省 臨汾市 吉縣 麥城村으로 비정된다. ‘二屈’의 ‘二’가 ‘北’으로 되어야 한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韋昭의 《國語解》에는 ‘二屈’이 北屈과 南屈의 합칭이라고 하였고, 應劭는 南屈이 있기 때문에 ‘北’을 덧붙인 것이라고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水經注》 〈河水〉에는 汲郡 古文에 “翟章이 鄭을 구원하여 南屈에 이르렀다.[翟章救鄭 次于南屈]”라고 한 것을 인용한 바 있다.
역주10 : 대전본‧사고본에는 ‘名’으로 되어 있다.
역주11 : 대전본에는 이 앞에 ‘○’이 있고, 사고본에는 이 앞에 ‘見’ 1자가 있다.

대학연의(4)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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