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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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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文帝 戒太子曰 卽有緩急인댄 周亞夫 眞可任將兵이라하더시니
16-5-가2
孝景帝 前元 2년(기원전 155)에 吳‧楚 등 7國이 모두 반란을 일으켰다. 당초에 文帝가 태자(景帝)에게 다음과 같이 훈계하였다. “만약 위급한 일이 생기면 周亞夫가 참으로 군대 통솔을 맡을 만하다.”
及七國 乃拜亞夫爲太尉하사 將三十六將軍하여 往擊吳‧楚하니 凡三月 皆破滅하다
7국이 반란을 일으키자 경제가 이에 주아부를 태위로 임명하여 36명의 장군을 이끌고 가서 오와 초를 공격하게 하니 총 3개월 만에 모두 격파하여 궤멸시켰다.
역주
역주1 16-5-가2 : 관련 내용이 《史記》 卷57 〈絳侯周勃世家 周亞夫〉, 《前漢書》 卷40 〈周勃傳 周亞夫〉, 《資治通鑑》 卷16 〈漢紀8 景帝 下〉 前元 3년(기원전 154) 기사 등에 보인다. 문제 後元 7년(기원전 157)에 문제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위급한 일이 생기면 周亞夫를 임용하라고 태자(景帝)에게 당부하였다. 문제가 죽자 경제는 주아부를 車騎將軍으로 임명하였다. 이후 경제 前元 3년(기원전 154) 정월에 吳‧楚 등 7國이 난을 일으키자 경제가 中尉 주아부를 太尉로 임명하여 난을 평정하게 하였다. 2월에 주아부가 반군을 크게 격파하고, 한 달 후에 東越이 吳王 劉濞의 목을 바침으로써 3개월 만에 난이 평정되었다.
역주2 孝景……皆反 : 《史記》‧《前漢書》‧《資治通鑑》에는 吳‧楚 7國의 난이 前元 3년(기원전 154)에 일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7국의 난은 吳王 劉濞가 주동이 되어 楚王 劉戊‧趙王 劉遂‧膠西王 劉卬‧膠東王 劉雄渠‧菑川王 劉賢‧濟南王 劉闢光 등이 함께 漢나라 중앙 정부를 타도하고자 난을 일으킨 사건이다. 文帝 때 오왕 유비의 아들이 당시 태자였던 景帝가 던진 바둑판에 맞아 죽었기 때문에 유비는 경제에게 늘 반감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난의 직접적인 원인은 諸侯王들의 봉지를 삭감하자는 晁錯의 削藩策이 경제 때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전원 3년 정월에 소금을 생산하던 會稽郡과 구리를 채굴하던 豫章郡을 삭감한다는 문서가 유비에게 하달되자 유비는 廣陵에서 군사를 일으키고 이민족인 東越의 군대까지 끌어들였다. 경제는 난을 무마하고자 袁盎의 제의에 따라 削藩을 주장한 조조를 棄市에 처하고 원앙을 유비에게 보냈으나, 유비가 원앙을 대면하지 않음으로써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太尉 周亞夫가 출병하여 반군의 군량 수송로를 타격함으로써 오‧초의 군대를 크게 패퇴시켰다. 유비는 동쪽으로 달아나 淮水를 건너 동월의 군대와 합세했으나 조정에서는 동월과 내통하여 그들이 유비를 살해하게 만들었다. 유비와 거병했던 나머지 왕들도 항복하거나 자살함으로써 난은 3개월 만에 평정되었다. 《資治通鑑 卷16 漢紀8 景帝 下 前元 3年》 《西嶋定生 저, 최덕경 외 역, 중국의 역사(진한사), 혜안, 2013, 159~166쪽》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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