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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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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4-2-나(按)
4-2-나(按)
按 先儒 以爲顯宗事師之意 百千年 鮮有其儷하니 可謂人主之高致어늘
【臣按】 先儒 胡寅이 말하기를, “顯宗이 스승을 섬긴 뜻은 수백, 수천 년 동안에 견줄 사람이 드무니, 임금으로서 높은 경지라 할 수 있다.
惜乎
그러나 아쉽도다.
桓榮授經 專門章句 不知仲尼 修身治天下之微旨
桓榮이 경전을 전수한 것은 오로지 章句之學일 뿐, 자신을 수양하여 천하에 治世를 이룩하려 했던 孔子의 은미한 뜻은 몰랐다.
라하니 斯言 當矣어니와
그러므로 현종의 덕과 업적이 이러한 정도에서 그쳤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이 옳습니다.
抑臣
그러나 신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竊謂學者 所以治性情者也
학문이란 性情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故先漢名儒
有言
그러므로 西漢의 名儒 匡衡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治性之道 必審己之所有餘而强其所不足이라
“性을 다스리는 방법은, 반드시 자신의 넉넉한 점을 살피고 자신의 부족한 점에 힘쓰는 것이다.
戒於太暴하고 仁愛溫良者 戒於無斷하고 湛靜安舒者 戒於後時하고 廣心浩大者 戒於遺忘이라하니
그러므로 총명하고 통달한 사람은 지나치게 살피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견문이 부족한 사람은 꽉 막히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용맹하고 굳센 사람은 지나치게 포악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인자하고 온량한 사람은 결단력이 없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침착하고 느긋한 사람은 때에 뒤쳐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마음이 넓고 호탕한 사람은 빠뜨리거나 잊어버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若顯宗者 豈無所當戒者乎
그렇다면 현종과 같은 사람은 어찌 경계해야 할 것이 없겠습니까.
原注
옛 기록에 이르기를, 明帝는 성격이 편협하고 까다롭게 살펴서 염탐하여 비밀을 들추어내는 것을 가지고 명철하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하여, 公卿大臣이 자주 무함을 당하고 近臣인 尙書 이하가 명제가 던진 물건에 맞고 끌려가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嘗受書於師矣
명제는 일찍이 스승에게 《尙書》를 전수받았습니다.
書之稱堯曰이라하고 稱舜曰이라하고 稱文王曰이라하니 皆以恭爲貴也
《상서》에서 堯임금을 일컫기를 “允恭(진실로 공손하다)”이라 하였고, 舜임금을 일컫기를 “溫恭(온화하고 공손하였다)”이라 하였으며, 文王을 일컫기를 “徽柔懿恭(아름답고 유순하시며 훌륭하고 공손하였다)”이라 하였으니, 이는 모두 공손함을 귀하게 여긴 것입니다.
이라하고 又曰이라하니 又以寬爲貴也
그리고 《상서》에 “御衆以寬(사람들을 관대함으로 다스렸다)”이라 하였고, 또 “寬綽厥心(그 마음을 너그럽고 여유롭게 가졌다)”이라 하였으니, 이는 또 관대함을 귀하게 여긴 것입니다.
於二者 兩皆失之하여 旣無容人之度하고 又失遇下之禮하니 然則又何貴於學乎리오
명제는 공손함과 관대함에 대해 둘 다 잘못하여 남을 용납하는 도량이 없었는데 또 아랫사람을 대우하는 예까지 잃었으니, 그렇다면 또 어찌 학문을 귀하게 여겼겠습니까.
有言호대 未讀是書 猶是人也 旣讀是書 亦猶是人也 則爲不善讀矣라하니 其殆顯宗之謂邪인저
先儒가 말하기를, “책을 읽기 전이나 책을 읽고 난 다음이나 여전히 같은 사람이면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아마도 顯宗을 두고 한 말인 듯합니다.
역주
역주1 胡寅 : 1098~1156. 자는 明仲, 호는 致堂으로, 建寧 崇安 사람이다. 胡安國의 조카로, 楊時에게 수학하였다. 金나라에 대해서는 主戰論으로 일관하였으며, 정치적으로는 秦檜의 미움을 사 파직되었다가 진회 死後에 복직되었다. 저술에 《論語詳說》, 《讀史管見》, 《斐然集》 등이 있다. 시호는 文忠이다.
역주2 顯宗……而止 : 《致堂讀史管見》 卷4 〈孝明 漢紀〉에 보인다.
역주3 匡衡 : ?~?. 자는 稚圭로, 東海 承 사람이다. 后蒼에게 《齊詩》를 배우고 《詩經》을 잘 해설하였으며, 《論語》와 《孝經》을 숭상하였다. 宣帝 때 太常掌故, 平原 文學을 역임하고, 元帝 때에는 郎中, 博士, 給事中, 御史大夫 등을 거쳐 기원전 36년(建昭3)에는 丞相이 되었다. 師丹‧伏理‧滿昌 등에게 학문을 전수하였다.
역주4 : 대전본에는 ‘康’으로 되어 있으나 宋代의 避諱이다. 이하도 동일하다.
역주5 治性……遺忘 : 《前漢書》 卷81 〈匡衡傳〉에 보인다.
역주6 : 대전본‧사고본에는 ‘强’으로 되어 있다.
역주7 傳稱……提曳 : 이 내용이 《後漢書》 卷71 〈鍾離意傳〉에 보인다. 明帝가 한번은 노하여 郎官 藥崧을 몽둥이로 때렸는데, 약숭이 달아나 침상 밑으로 들어가자 더욱 노하여 빨리 나오라며 격하게 말하였다. 이에 약숭이 “‘천자는 장중하고 공경스러운 모습으로 있고 제후는 엄숙한 모습으로 있다.’라고 하였으니, 임금이 직접 낭관을 때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天子穆穆 諸侯皇皇 未聞人君自起撞郞]”라고 하자, 명제가 마침내 용서하였다고 한다. ‘天子穆穆 諸侯皇皇’은 《禮記》 〈曲禮〉에 보인다. ‘傳’은 ‘옛 기록’이라는 뜻이다. 《後漢書 卷71 鍾離意傳》 《資治通鑑 卷44 漢紀36 明帝 上》
역주8 以下 : 대전본‧사고본에는 없다.
역주9 提曳 : 《資治通鑑》 胡三省의 주에 이르기를 “提는 물건을 던져 加擊하는 것이다. 曳(예)는 拽(예)로 읽으며 ‘잡아끌다’, ‘끌어당기다’라는 뜻이다.[提 擲物以擊之也 曳 讀曰拽 拖也 引也]”라고 하였다. 《資治通鑑 卷44 漢紀36 明帝 上》
역주10 允恭 : 《書經》 〈虞書 堯典〉에 보인다.
역주11 溫恭 : 《書經》 〈虞書 舜典〉에 보인다.
역주12 徽柔懿恭 : 《書經》 〈周書 無逸〉에 보인다.
역주13 御衆以寬 : 《書經》 〈虞書 大禹謨〉에 보인다.
역주14 寬綽厥心 : 《書經》 〈周書 無逸〉에 보인다.
역주15 先儒 : 明나라 사람 夏良勝의 《中庸衍義》에 따르면 程頤를 가리킨다. 비슷한 내용이 《論語集註》 〈序說〉에 보인다. 《中庸衍義 卷8 達道之義》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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