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19-9-나(按)
臣
은 按 孟子
가 曰
라하니 明皇
이 一日
에 殺三子
하니 此何景也
而群臣
이 乃以幾致刑措
로 賀
하니 在昔
에 曷嘗有此邪
아 是直以帝
로 爲盲聾
하여 罔之以非其道也
라
明皇이 誠反而思之하사 吾有子호대 不能自保하여 使臣下로 得譖而殺之어늘 彼烏鵲은 乃安其巢하니
是는 以天子之子로 欲爲烏鵲이라도 不可得也라하시면 則必赫然震怒하여 罪群臣之欺罔者矣언마는
然林甫之輩가 敢於爲此者는 度帝之聰明이 已衰하여 方愛悅諛佞하니 必不能察其欺罔故也어늘
明皇이 果喜而賞之하시니 林甫가 於是時에 必自喜其謀之中而竊笑帝之易欺하여 姦諛蒙蔽가 愈無所忌矣라
故爲人君者가 必有以保養其聰明하여 使佞邪小人으로 不敢有所侮而動이니 不然이면 未有不爲其所玩者니이다
原注
19-9-나(안按)
[신안臣按] 맹자가 이르기를 “군자는 합당한 방법으로 속일 수는 있지만 합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속이기는 어렵다.”라고 하였습니다. 명황明皇이 하루아침에 세 황자를 죽였으니 이것이 어떤 상황입니까?
그런데도 신하들이 마침내 거의 형벌이 쓰이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경하를 올렸으니 옛날 주周나라 성왕成王과 강왕康王의 시대에 어찌 이런 일이 있었겠습니까. 이는 단지 현종을 눈멀고 귀먹은 사람으로 여겨 합당한 방법이 아닌 것으로 임금을 기망한 것일 뿐입니다.
현종玄宗이 진실로 이를 돌이켜 생각해보아 ‘내가 아들을 두었지만 스스로 보호하지 못하여 신하들로 하여금 참소하여 아들을 죽이게 만들었는데 저 오작烏鵲은 도리어 자신의 둥지를 편안하게 틀었다.
이는 세 황자들이 오작烏鵲처럼 되기를 원하여도 될 수 없는 것이다.’라고 여겼다면 반드시 발끈 진노하여 기망한 신하들을 처벌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임보의 무리가 감히 이런 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현종의 총명함이 이미 쇠퇴하여 한창 아첨하고 영합하는 것을 좋아하니 반드시 자신들의 속임수를 알아채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종이 과연 기뻐하고 그들에게 상을 주었으니 이임보가 이 당시에 필시 자신의 계책이 적중한 것을 스스로 기뻐하고 내심 현종이 쉽게 속는 것을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간사하고 아첨하며 진상을 숨기는 데 더욱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신이 앞서 석현石顯이 원제元帝를 헤아릴 때 하나라도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는 것을 논하였는데 이임보가 현종에 대해서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은 반드시 자신의 총명함을 길러서 아첨하고 간사한 소인이 감히 업신여겨 준동할 수 없게 해야 하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에게 놀아나지 않는 자가 되지 않을 자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