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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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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25-7-나(按)
按 仲舒 以春秋之學으로 推明王者任德不任刑之意하니 可謂善矣어니와
25-7-나(按)
[臣按] 董仲舒가 《春秋》의 학문으로 王者는 덕에 맡기고 형벌만 중히 여기지 않는 뜻을 미루어 밝혔으니 훌륭하다고 할 만합니다.
然陽以生萬物하고 陰以成萬物하니 其功 一也 陰雖伏於大冬이나 乃所以爲造化之本이니
하지만 陽은 이것으로 만물을 낳고 陰은 이것으로 만물을 이루니 그 공이 같습니다. 음은 비록 한겨울에 잠복하여 있지만 바로 조화의 근본이 되는 것이니,
이면 無以爲元이요 이니 伏藏於冬而後 能發育於春하나니
대개 貞이 아니면 元이 될 수 없고 닫지 않으면 열릴 수 없습니다. 겨울에 잠복한 뒤에야 봄에 발육할 수 있습니다.
然則以陰居冬으로 爲積於空虛不用之地라하니 殆未然也니이다 然方武帝卽位之初 英武明斷하시니
그렇다면 음이 겨울에 머무는 것을 ‘텅 비어 작용하지 않는 곳에 쌓인다.’라고 하였으니 매우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武帝가 즉위한 초기에는 호전적이고 결단력이 있었습니다.
仲舒 逆慮其有任刑之失이라 故擧天道明王道하여 以啓其好生惡殺之心則仲舒之言 眞武帝之箴砭也로소이다
동중서는 무제가 형벌에 맡기는 나쁜 점이 있으리라는 것을 미리 헤아려 알았기 때문에 天道를 들어 王道를 밝힘으로써 살리기를 좋아하고 죽이기를 싫어하는 마음을 열어주었으니, 동중서의 말은 참으로 무제에 대한 따끔한 경계인 것입니다.
之徒 進而見知故縱之法하여 卒以任刑으로 流毒海內하니 인저
그 후에 張湯과 趙禹의 무리가 임용되어 타인의 범죄를 알고도 고의로 묵인하는 것을 처벌하는 법이 시행되어 끝내 형벌에 맡김으로써 천하에 해독을 끼쳤으니, 동중서는 아마도 말을 듣고 사람의 是非와 善惡을 잘 알았던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역주
역주1 非貞無以爲元 : 《周易》 〈乾卦 彖傳〉의 “시작과 끝을 크게 밝히면 六位가 때로 이루어지는 법이니, 때로 여섯 龍을 타고서 하늘을 날아다닌다.[大明終始 六位時成 時乘六龍 以御天]”에 대한 朱熹의 《本義》에 이르기를 “‘始’는 곧 ‘元’이고 ‘終’은 ‘貞’을 말한 것이다. 마치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고 貞이 아니면 元이 될 수 없다.[始則元也 終謂貞也 不終則无始 不貞則无以爲元也]”라고 하였다.
역주2 : 대전본에는 ‘正’으로 되어 있다.
역주3 不闔無以爲闢 : 《周易》 〈繫辭傳 上〉 제11장에 이르기를 “이런 까닭에 문을 닫는 것을 坤이라고 하고 문을 여는 것을 乾이라고 하니 한 번 열고 한 번 닫는 것을 變이라고 하고 끊임없이 오고 가는 것을 通이라고 한다.[是故闔戶謂之坤 闢戶謂之乾 一闔一闢謂之變 往來不窮謂之通]”라고 하였다.
역주4 其後……海內 : 《前漢書》 권23 〈刑法志〉에 따르면, 漢 武帝는 張湯과 趙禹에게 법령을 조목별로 編定하도록 하였는데, 장탕과 조우는 범죄를 알고도 고의로 묵인하고 풀어주는 관리를 처벌하는 見知故縱法과 휘하의 관원이 저지른 죄에 대해 연좌하여 처벌하는 監臨部主法을 제정하였다. 이에 따라 “백성에게 법 적용을 가혹하게 하거나 고의로 죄에 빠뜨린 관리에 대한 처벌은 관대하게 하고 죄상을 알고도 고의로 석방하거나 적발하지 않은 관리에 대한 처벌은 엄하게 하였다.[緩深故之罪 急縱出之誅]” 이후로 법 적용이 더욱 교묘해져서, “법망은 점점 치밀해졌고 율령은 번거롭고 가혹해져서[禁網寖密 律令煩苛]” “옥사에 관한 문건이 책상에 가득 쌓여 형옥을 담당한 관리가 이를 다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文書盈於几閣 典者不能徧睹]” 이 때문에 “죄목이 같아도 평결이 달라지거나[或罪同而論異]” “간악한 옥리들이 뇌물을 받고 처벌의 경중을 바꾸는[姦吏因緣爲市]” 상황이 초래되어 “살려주고자 하는 사람은 경감시켜 살려주는 議罪에 부치고 죄과에 빠뜨리고자 하는 사람은 죽이는 사례로 인정하여, 논하는 자들이 모두 원통하게 여기고 슬퍼하였다.[所欲活則傅生議 所欲陷則予死比 議者咸冤傷之]”라고 하였다.
역주5 張湯 : ?~기원전 115. 西漢의 관료이다. 杜陵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법률을 좋아하였다. 淮南王 劉安‧衡山王 劉賜‧江道王 劉建 등이 일으킨 모반 사건을 처리하면서 漢 武帝의 인정을 받았다. 전후로 太中大夫, 廷尉, 御史大夫 등을 역임하였다. 趙禹와 《越宮律》‧《朝律》을 論定하였다. 엄격한 법 적용을 주장하면서 항상 《춘추》의 의리로 부회하여 꾸몄으며 황제의 뜻을 옥사를 처결하는 준거로 삼아 판례로 명기하였다. 그리고 흉노 원정에 국고가 부족하자, 白金과 五銖錢을 발행하고 鹽鐵 專賣를 추진하고 告緡令을 시행하는 등 이를 지원하여 무제의 총애를 받았다. 승상의 직무를 많이 행하여 권세가 승상을 능가하였다. 元鼎 2년(기원전 115)에 어사중승 李文과 丞相長史 朱買臣 등의 무함을 받아 자결하였다. 《前漢書 卷59 張湯傳》
역주6 趙禹 : ?~기원전 100?. 西漢의 관료, 사법관이다. 斄縣(태현) 사람이다. 佐史로써 中都官이 되었고 景帝 3년(기원전 154)에 令史가 되어 太尉 周亞夫의 속관이 되었다. 경제 5년(기원전 152) 주아부가 승상이 되자 丞相史가 되었다. 府中에서 청렴하고 공평하다는 칭찬을 받았으나 일찍이 주아부는 “재능은 비할 데 없이 뛰어나지만 그의 법 집행은 지나치게 엄격하고 가혹하다.[才能無比 但他執法深重苛刻]”라고 평했다. 武帝 때 御史, 太中大夫를 역임하였다. 張湯과 《越宮律》‧《朝律》을 論定하고 見知故縱法과 監臨部主法 등을 만들었는데, 이 법으로 인해 관리들이 서로 감시하고 고발하는 것이 시작되었다. 廷尉, 少府, 燕國相 등을 역임했다.
역주7 仲舒其知言哉 : 董仲舒가 漢 武帝의 策問을 통해 무제가 장차 爲政의 방침을 ‘任刑’에 둘 것임을 미리 헤아려 안 것을 지적한 것이다. 《논어》 〈堯曰〉 제3장에 이르기를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바르게 설 수 없고,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라고 하였고, 《맹자》 〈公孫丑 上〉 제2장에서는 公孫丑가 맹자의 장점을 물은 데 대해 맹자가 대답하기를, “나는 말을 알며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르노라.[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라고 하였고, 또 공손추가 知言에 대해 묻자 맹자가 대답하기를 “편벽된 말에서 그 가린 바를 알며 방탕한 말에서 그 빠진 바를 알며 간사한 말에서 그 괴리된 바를 알며 도피하는 말에서 궁지에 몰린 바를 알 수 있으니 마음에서 생겨나 정사에 해를 끼치며 정사에서 나타나 그 일에 해를 끼치니 성인이 다시 나와도 반드시 내 말을 따를 것이다.[詖辭 知其所蔽 淫辭 知其所陷 邪辭 知其所離 遁辭 知其所窮 生於其心 害於其政 發於其政 害於其事 聖人復起 必從吾言矣]”라고 하였다.

대학연의(4)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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