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擁朱爲主, 泚遂稱帝.이어늘 帝
가 出奉天
注+奉天, 城名.하시니 杞
가 從
이러라 이 自河北還
하여 數破賊
하니 泚
가 解去
러니
或
이 謂王翃‧趙贊
注+二人皆杞黨, 翃爲京兆尹, 贊.曰 聞懷光
이 嘗斥宰相
이 不能謀
하고 度支
가 賦歛重而京兆
가 刻軍賜
하니 宜誅之
하여 以謝天下
라하니
方懷光이 有功이라 上必聽用其言하시리니 公等이 殆矣라 二人이 以白杞한대
杞가 懼하여 卽譎帝曰 懷光이 勳在宗社라 賊이 憚之破膽하나니 今因其威하면 可一擧而定이니
若許來朝則犒賜留連
에 賊得裒整殘餘
하여 爲完守計
하리니 圖之實難
이라 不如
勝
平京師
가 破竹之勢也
니이다
帝
가 然之
하사 詔懷光無朝
하고 進屯
하신대 懷光
이 自以千里赴難
하여 有大功
호대 爲姦臣沮間
하여 不一見天子
라하여
內怏怏無所發
하여 遂
하여 因暴言杞等罪惡
한대 士議譁沸
하여 皆指目杞
어늘 帝
가 始悟
하사 하시다
20-11-가
경원涇原의 군대가 난을 일으키자
注+경원涇原의 군대가 난을 일으켜 궁궐을 범하고 주차朱泚를 옹립하여 원수로 삼자, 주자가 마침내 칭제稱帝하였다. 덕종德宗이 이를 피해
봉천奉天으로 나가니
注+봉천奉天은 성城의 이름이다. 노기盧杞가 수종하였다.
이회광李懷光이
하북河北에서 돌아와 누차 적을 격파하자
주차朱泚가 포위를 풀고 떠났다.
어떤 사람이
왕굉王翃과
조찬趙贊에게
注+두 사람은 모두 노기盧杞의 당여로, 왕굉王翃은 경조윤京兆尹이었고 조찬趙贊은 판탁지判度支였다. 말하였다. “듣자하니 이회광은 예전에, 재상(
노기盧杞)은 계모에 능하지 못하고
판탁지判度支(
조찬趙贊)는 세금을 무겁게 거두며
경조윤京兆尹(
왕굉王翃)은 군사들에게 내리는 상이 각박하니, 이들을 주벌하여 천하 사람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논척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회광이 공을 세웠기 때문에 폐하께서는 반드시 그의 말을 들어주실 것이니, 공들은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이 말을 노기盧杞에게 전하였다.
노기盧杞가 두려워서 즉시 덕종을 속여 말하였다. “이회광李懷光은 종묘사직宗廟社稷에 남을 공을 세웠습니다. 반란군이 두려워서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떨고 있으니 지금 그 위세를 이용한다면 일거에 난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회광이 조회 오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호궤犒饋하고 상을 내리느라 머물며 지체하는 사이에 반란군은 잔당을 모아 재정비하여 수비를 공고히 하는 계책을 세우게 될 것이니, 그렇게 되면 저들을 도모하기가 실로 어렵게 됩니다. 이 승기勝氣를 타고 경사京師를 평정하도록 하는 것이 파죽지세인 것만 못합니다.”
덕종이 옳다고 여겨서 이회광에게 조서를 내려 입조하지 말고 진군하여 편교便橋에 주둔하라고 하였다. 이회광은 자신이 난을 구원하러 천 리 길을 달려와 큰 공을 세웠는데 간신에게 저지되어 천자를 한 번 알현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안에 쌓인 불쾌한 심정을 분출할 곳이 없자 마침내 반란을 모의하고 이어서 노기 등의 죄악을 공공연하게 내놓고 말하였다. 사대부의 여론이 들끓어 모두들 노기를 지목하자, 덕종이 비로소 깨닫고 노기를 신주사마新州司馬로 좌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