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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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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3-7-나(按)
按 西漢儒者 惟一仲舒 其學 純乎孔孟이라 하니
蓋自七篇之後 未有及此者하니 使帝 置仲舒於左右承弼之地 必能以二帝三王之道 日陳於前하여 繩愆糾繆하여 格其非心하리니
安得有極意奢之失 窮兵之禍
故剟三策之言尤切者하여 著于此하여 以見武帝 雖有志于學而實不知所以學 爲可惜也하노이다


原注
3-7-나(按)
【臣按】 西漢의 儒者 중에 오직 董仲舒 한 사람만이 그 학문이 孔子와 孟子의 학문에 순일하였기에 임금에게 아뢸 때에도 반드시 堯임금과 舜임금을 예로 들었습니다.
《孟子》 7편 이후로 이를 언급한 사람이 없었으니, 만일 武帝가 동중서를 좌우의 보필하는 자리에 두었더라면, 필시 二帝와 三王의 도를 날마다 앞에서 개진하여 잘못을 고치고 오류를 바로잡아서 무제의 그릇된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찌 사치와 음행을 자신의 뜻대로 모두 행하는 잘못과 夷狄에게 무력을 소진하는 화가 있었겠습니까.
또 어찌 간사한 신하의 참소에 미혹되며 巫蠱의 옥을 일으켜서 아비와 자식이 단절되고 도성에 유혈이 낭자하는 참변이 초래되었겠습니까.
그러므로 동중서의 세 對策 중에서 더욱 절실한 것들을 따와 여기에 수록하여, 무제가 비록 학문에 뜻을 두기는 했으나 실제로는 학문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는 것을 보입니다.


역주
역주1 其告君亦必以堯舜 : 《漢書》 卷56 〈董仲舒傳〉에 “君子의 덕은 바람과 같고 小人의 덕은 풀과 같아서 풀에 바람이 불면 풀이 반드시 눕는다.[君子之德風也 小人之德草也 草上之風 必偃]”라는 孔子의 말이 인용된 뒤, “堯임금과 舜임금이 덕을 행하자 그 백성들이 어질고 장수하였으며, 桀王과 紂王이 폭정을 행하자 그 백성들이 비루하고 요절하였다.[堯舜行德 則民仁壽 桀紂行暴 則民鄙夭]”, “천하의 賢人을 두루 얻을 수 있다면 三王의 성대한 治世를 이루기 쉽고 堯임금과 舜임금의 명성을 따라갈 수 있다.[徧得天下之賢人則三王之盛易為而堯舜之名可及也]” 등의 동중서의 말이 보인다.
역주2 : 대전본에는 ‘𦁍’으로 되어 있다.
역주3 夷狄 : 사고본에는 ‘黷武’로 되어 있다.
역주4 又安……變哉 : 漢 武帝 征和 2년(기원전 91)에 일어난 巫蠱의 獄을 이른다. 당시 무제의 寵臣이었던 江充은 태자였던 戾太子 劉據와 알력이 있었는데, 무제 死後에 여태자가 즉위하면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여겨 병든 무제에게 여태자가 저주하여 병이 난 것이라고 무고하였다. 여태자는 당시 西北의 甘泉宮에서 병을 치료하고 있던 무제를 알현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해명하려 하였으나, 시도가 실패하자 武器庫의 병기를 꺼내고 長樂宮의 호위하는 병졸을 징발하여 江充을 참살하였다. 그러나 반란으로 오인되어 무제의 토벌을 받고 도성을 탈출했다가 사면을 받지 못하자 결국 자결하고 말았다.
역주5 : 대전본에는 ‘蒚’으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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